"하나님은 나보다 거리의 이웃을 더 사랑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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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나보다 거리의 이웃을 더 사랑하십니다"
  • 이현주
  • 승인 2005.03.23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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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찐빵`으로 거리의 천사 섬기는 곽광희 목사




모두들 깊은 잠에 빠진 시간 새벽 2시. 시장 인파가 휩쓸고 지나간 동대문운동장 한켠에서 천막을 치고 불을 지피며 다시금 새벽을 여는 분주한 사람들이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들고 팥앙금을 넣은 찐빵 빚길 두어 시간.

이내 찜통에선 모락모락 김이 솟아오른다. 어느새 찐방 냄사를 맡은 것일까. 부스스한 얼굴의 노숙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새벽 6시. 한 줄로 길게 늘어선 노숙자들의 대열은 따끈한 찐빵을 기다리고 있다.


‘사랑의 찐빵’. 그 이름만큼 맛있고 포근한 찐빵은 이른 아침 배고픈 노숙자들의 든든한 식사가 되어 찾아왔다. 건양복지재단이 동대문 지역 노숙자들에게 찐빵을 나누기 시작한 지 벌써 5년째.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사랑의 찐빵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건양복지재단을 이끄는 곽광희 목사(60. 효촌교회)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고 하나님 앞에 서원한 지 20여 년. 지금 그는 3개의 교회를 세우고 노숙자와 탑골공원 노인들에게 사랑의 찐방을 나눠주고 있다.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을 직접 자녀로 삼아 키우고 결혼시키며 거리의 아이들의 ‘엄마’를 자처했고 찬양단을 통해 나눔사역을 알리고 있다.

그뿐인가 지난 18일에는 사랑의 찐빵 공장을 설립하면서 사역의 확장을 선언했다. 이미 입소문난 찐빵을 매개로 청소년대안학교와 노인복지시설, 어린이동산 등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서슴없이 선보인 것이다.

한 가지 일만으로도 벅찰 나이 예순에 그는 남다른 열정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다. 하나님이 ‘그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 곽 목사는 사랑해서 쓰시는 것이 아니라 낮고 비천한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그들이 배고프지 않도록 외롭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저 곽 목사를 사용하고 계신하고 그는 굳게 믿고 있다.

피곤한 몸도 마다않고 새벽마다 밀가루를 지고 의정부에서 동대문까지 찾아오는 그녀의 열정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궁금함이 앞섰다.

사업가의 아내로 또 자신도 사업가로 살아왔던 화려한 과거 속에 하나님은 없었다. 본인도 그렇거니와 시댁 역시 기독교 신앙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큰 행사를 앞두고는 무당을 찾아가고 절에 시주하며 알 수 없는 미래를 점치곤 했다. 주변의 권유로 교회에 잠깐 나가보았지만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다시 외면했다.

그때 하나님이 처음 그녀를 불렀을 때 곁에 머물렀어야 했었다고 그녀는 회고했다. 앞으로 닥칠 하나님의 질책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직접 체험한 그로써는 수많은 채찍질 끝에 하나님의 품에 안주하는 어려운 신앙의 길을 걸어왔다.

“사업은 한창 번성했어요. 그런데 그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지더군요. 다른 기업에 빚보증을 서 준것이 발단이 되어 말 그대로 쪽박을 차고 거리로 나앉을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몇날 며칠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갑자기 닥칠 시련을 견딜 수 없던 곽 목사는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의 곁을 지킨 사람은 평소에 곽 목사를 하나님의 곁으로 인도하고자 애썼던 언니였다.

“친언니가 기절한 저를 붙들고 밤새 기도했어요. 눈물을 흘리면서 말이죠. 그래, 언니가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하나님을 나도 만나보자 그런 생각이 들었죠.”

그가 찾아간 곳은 압구정동 광림교회. 당시 주변은 허허벌판과도 같았다. 예배당에 들어서자 그의 눈에는 커다란 십자가만이 들어왔다. 그때부터 곽 목사는 자나 깨나 기도만 의지했다. 기도문이 열리고 하나님을 체험한 그는 삼각산에 올라가 기도할 때 수많은 사역을 약속했다. 그 즈음 너무도 가난한 개척 교회를 본 것도 충격이었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위해 살겠다는 약속이 터져나왔다. 기도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도 모른 채 그저 입술이 쏟아내는 대로 서원한 것이다.

“하나님, 교회를 세우겠습니다. 고아 박사를 100명 만들어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쉼터를 만들겠습니다. 찬양홀을 만들어 항상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그 이후 곽 목사의 삶은 180도로 달라져 있었다. 그의 눈에는 거리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들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갈 곳없는 아이들을 자녀삼았고 신학생들을 뒷바라지 하며 목회의 길로 인도했다. 하나님을 깊이 알고 싶어 시작한 신학공부도 16년이나 했다. 교도소를 찾아 재소자들을 위해 기도했다.

다시 사업을 일으키고 선교 활동을 하면서 새 인생을 시작한지 10년 남짓 흘렀을까. 갑자기 그의 건강이 나빠지더니 병원에서 고혈압과 간암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정말 제가 하나님의 사명자가 되어야 한다면 나이 50에 사용해달라’는 서원을 그녀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 저혈압이었는데 갑자기 높아진 혈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가족들이 함께 기도해주었고 아이들이 저를 미국으로 데려갔습니다. 그사이 남편은 제 사업장을 없애버렸지요. 다시 귀국해 금식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금식기도 중에 만난 하나님은 꽃으로 만발한 강대상 앞으로 그녀를 데려가더니 까만 판에 금도장으로 ‘곽광희’라는 이름을 새겨 보여주셨다. 아름다운 환상이었지만 ‘왜 하필 까만판일까’ 궁금했다. 그녀는 더욱 기도에 매달렸다. 며칠 뒤 하나님은 이런 음성을 들려 주셨다.

“네가 닦아서 금판으로 만들어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응답을 들은 그녀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몇 개월 후 병원 검사를 받으러 가자 의사는 별말 없이 간수치가 정상이라고 설명했다. 암이 치유된 것이다. 간암이 나으면 사명자로 쓰시는줄 알겠다고 기도했던 곽목사는 다시 신학 공부를 시작했고 두려움 중에 안수까지 받았다.

97년 6월 효촌교회를 개척했다. 의정부 양주부근을 지나가다가 “참 아름다운 예배당 건물이다. 하나님 저에게도 저런 교회를 하나 주세요”라며 기도했는데 정말 기적처럼 시가 3억5천만원 상당의 교회를 2억원에 구입할 수 있게 됐다.

사업을 하는 남편을 졸라 대지까지 3천2백 평의 교회를 매입한 것이 지금은 6천7백 평으로 확장돼 그의 비전에 밑거름이 되어 주고 있다.

봉제공장을 하던 서울 창동 건물이 다시 성전이 되고 신학교가 되었다. 하나님께 약속한 일들이 하나하나 성취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신학생 한 명이 “하나님과 약속한 일이라면 돈 걱정하지 말고 일단 라면에 짠지라도 들고 거리로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그녀를 부추겼다. 맞는 말이었다. ‘거리의 천사’를 위해 살겠다는 약속을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자 신학생 중 또 한명이 자신에게 찐빵 기술이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 그녀의 어린 시절이 스쳐 지나갔다.

“학교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가 아랫목에서 부풀어 오른 반죽을 꺼내 맛있는 찐빵을 쪄주곤 했지요. 어머니가 만들어준 따뜻한 찐빵이야말로 그들에게 꼭 필요한 사랑이 될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곽광희 목사는 바로 실천에 옮겼다. 변변한 기계도 없이 손으로 반죽을 빚고 직접 쪄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찐빵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힘든 것도 잊을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그 자리에서 22개의 찐빵을 먹어치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 나를 위해 이 새벽에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들도 소중하게 대접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연히 지나친 탑골공원에서 자녀의 눈을 피해 나와 있는 노인들을 보면서 어른들을 대접하는 것도 그의 몫이 되어 버렸다. 6시 동대문에서 찐빵 나눔이 끝나면 탑골로 옮겨와 8시부터 노인들에게 찐빵을 또 나누어준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11월에는 노인잔치로 예배를 드리고 장애인들을 위해서는 정보화교육센터를 마련해 취업 기술을 가르치며 거리의 아이들을 데려다가 키우고 가르치는 대안학교까지 확대된 것이다.

곽광희 목사는 선교에 뚜렷한 원칙을 가지고 있다. 누구의 도움없이 자비량으로 해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한 달 동안 수만 개의 찐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4백만원의 돈이 들어간다. 그동안 남편 권오춘 장로의 도움을 받았지만 사역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자립 기반을 마련해야만 한다.

자비량 선교를 위해 시작한 것이 ‘사랑의 찐빵 공장’을 세우는 것이고 목사와 전도사 등 교회 가족들이 못과 망치를 들고 공장 짓기를 5개월. 세 번째 성전과 공장이 탄생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판로를 개척하는 일이다.

그녀의 기도 제목은 찐빵이 판매가 안되서 하나님의 사역을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내용이다. 지금, 사랑의 찐빵은 일본과 우즈베키스탄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더 이상 가난하고 외로운 이웃이 없는 세상, 그것은 그의 소망이자 하나님의 소망이다. 노숙자들의 거리 배식 5년 동안 단 한번도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까지도 하나님의 역사라고 굳게 믿고 있는 순수한 그의 신앙은 오직 하나님만을 향해 있다.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남은 인생을 헌신한 곽광희 목사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둥근 찐빵처럼 달콤하고 따뜻한 사랑만을 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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