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세포적인 행동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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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세포적인 행동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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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3.2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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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설 목사<문래동교회>


필자가 처음 목회를 시작한 곳은 서른다섯 가구가 모여서 배추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작은 산골 마을이었다. 내 자신이 시골 사람이기는 했지만 농사 경험은 없었다. 어린 시절 외가에 가서 느껴본 농촌의 경험이 전부였다. 어리기는 했지만 어려운 살림살이를 힘겹게 꾸려가는 어른들의 한숨소리를 필자는 지금도 기억한다. 자식을 시집보내고 장가보낼 때마다 팔려나가는 논과 밭뙈기를 보면서 아쉬워하셨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우울한 모습이 생각난다.

대학을 다닐 때 농촌 목회를 꿈꾸며 농민들의 어려운 현실을 이해하려고 마음으로 애쓰며 농촌 목회를 준비했다. 30대 초반의 젊음으로 농촌 목회 현장에서 경험한 농민들의 삶은 너무도 힘겨워 보였다. 20여 년이 지나 농촌 목회 현장에서 경험해 본 농민들의 고단한 삶은 더 나아지 않았다. 그들이 감당하기는 너무도 힘겨운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래서 젊은 목회자인 나는 농민을 속이거나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었다. 때로는 마을 지킴이로 투사가 되어 농민들의 소외된 삶을 대변하려는 격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어느 날 농촌 교회의 교통수단인 오토바이에 무거운 짐을 실고 비포장 길을 달려 마을에 도착했다. 그런데 앞서가던 승용차 안에서 쓰레기봉투가 밖으로 버려지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오토바이에 실린 짐이 땅에 떨어져 끌리는 것도 모른 체 승용차를 쫒아갔다. 승용차를 세운 뒤 그들이 버린 쓰레기를 주어서 운전자에게 돌려주었다. 필자는 “아저씨, 왜 쓰레기를 우리 마을에 버리십니까? 가자고 가세요”라고 하며 쓰레기봉지를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승용차에는 아이들도 함께 타고 있었다. 미안해하는 운전자의 표정을 보면서 고소하다는 생각과 함께 의기양양했다.

그가 자녀들에게 부끄러워했을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옳지 않은 행위만 지적하고 고치는데 생각이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그 쓰레기봉지는 부모들이 아닌 철없는 아이들이 버렸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어른들이 버린 것으로 간주하고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면 안 된다고 훈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을을 사랑하겠다는 생각은 옳았지만 관용있는 태도가 아니었다.

결국 성숙하지 못한 내 인격은 ‘옳은 일이냐, 그른 일이냐’만을 놓고 따졌던 단세포(單細胞) 적인 행동이었다. 그때 내가 조금 더 성숙한 마음이 있었다면, 그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그들이 지나간 뒤 조용히 쓰레기 봉지를 처리하면 됐을 일이었다. 더 우스운 것은 그것을 잘한 일이라고 주변 여러 사람들에게 자랑삼아 이야기 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기회 있을 때마다 무용담(武勇談)처럼 늘어놓았다.

세 살이 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의 행동을 보자.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에 집착하면 막무가내로 원하는 것을 소유해야 한다. 자신에게 필요하든지 필요 없든지 상관하지 않고 물건에 집착한다. 값 비싼 것인지 싼 것인지도 구별하지 않는다. 오직 소유해서 장난감으로 삼는 것이 목적이다.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얻기 위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투정한다. 그런데 그렇게 울며불며 소유하게 된 물건도 새로운 관심과 호기심을 끌만한 물건이 나타나면 그것을 얻기 위해 망설이지 않고 버린다. 그리고 새로운 물건에 이미 손이 가있는 경우를 경험한다.

일본은 우리의 영토인 독도를 강탈하려고 오랜 시간 자신들의 의도대로 침략 행위를 계획해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입장은 “이미 우리의 땅인 것을 애써 우리의 땅이라고 강조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대책을 마련에 소홀했던 느낌이 든다. 6.25가 끝난 지 수십 년 후가 되니 남쪽이 북침을 했다는 주장으로 설왕설래했던 경험이 있다. 우리의 땅인 독도가 지금 그런 상황 속으로 빠지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독도는 우리 땅이다’라는 신념에 찬 주장 하나로 사태 해결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 한반도 주변 현실은 너무도 어렵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이 있다. 누군가 한반도의 미래를 놓고 남북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모종의 밀약과 허위 과장된 주장들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누가 우리와 뜻을 같이하고 남북의 희망적인 미래를 위해 손을 들어줄 것인가? 우리 문제를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해서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이 서글프기만 한 이유가 여기 있다. 생각지 않은 변수에 가슴 쳐야 할 상황이 오지 않도록 정치와 경제 등 국제관계에 있어서 전 국민의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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