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7주 : 기독언론의 현재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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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17주 : 기독언론의 현재와 미래
  • 윤영호
  • 승인 2005.02.0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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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시대 속 교회흐름을 주도할 인재양성 시급"

1897년 기독교계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죠선그리스도인회보`와 `그리스도신문`<좌측>은 선교사들의 사역 행적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며 복음전파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본지는 1988년 한글전용 가로쓰기를 처음으로 도입하며 초교파 신문으로 창간, 교회정체성 회복과 지도자들의 노력을 객관적으로 다루고 있다.


영혼을 각성시키는 하나님의 커뮤니케이션  


기독교철학의 세계적인 인물인 폴 마샬박사(풀러신학교 기독교학문연구소)는 그의 저서 ‘Heaven is not my home’에서 이렇게 썼다.


“(사도 바울은)여행하면서 자기가 활용할 수 있는 최선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었던 말하기와 글쓰기를 사용하였다. 그는 회당뿐만 아니라 시장과 도시의 광장과 그 어느 곳에서든지 말하고 인용하고 주장하고 논쟁하였다. 그는 소식이 가장 잘 전달되었을 사업도로를 따라서 여행하였다. 그는 의견을 형성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던 주요 중심지를 공격하였다…그는 주요 미디어를 사용하였다.”


주후 1세기경 복음을 전파하던 사도 바울의 방법에 주목하던 폴 마샬박사가 여기서 내린 결론은 ‘세상 미디어의 적극적인 활용이 복음전도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었다. 그가 이같은 결론에 다다른 이유에는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중에서 가장 주도적인 수단으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키고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폴 마샬박사는 지난 90년대 최고의 전도자를 ‘스필버그 감독’이라고 소개한다. 스필버그가 실제로 기독교를 전파한 전도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삶의 궁극적인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이 믿는 바에 도전하고 그것을 형성해 주는 사람이었다는 뜻에서 폴 마샬은 그를 전도자로 표현했다.


폴 마샬의 결론은 우리나라 기독언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세상과 동떨어진 콘텐츠,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헤아리지 못하는 ‘우리들만의 관심’을 말하는 기독언론의 현실은, 세상의 주도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과 괴리되는 기독언론의 한계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기독언론’이 보여주는 시대 속의 한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변하는 교회에 둔감하다. 둘째,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 셋째, 전문인력 양성에 투자하지 않는다.



변화하는 교회와 기독언론

우리나라 선교 2세기를 향하는 한국기독교는 그동안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일제시대의 신사참배 논쟁에 이어 한국전쟁을 치르는 가운데 불거진 이념논쟁, 그리고 근대화운동에서 보여준 성령운동과 민주화운동, 이제 영성운동으로 진행되는 현대의 한국기독교 역사는 세상의 관심을 그대로 대변하면서도 초월적인 입장을 견지한 ‘격동의 역사’라고 할만하다.


이 가운데 에큐메니칼 논쟁과 신신학 논쟁으로 나타난 기득권다툼이 잇따라 이어지면서 교계는 분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현재에 이르게 된다.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별도로 세계교회들도 이 시기 비슷한 변화를 겪는다. 소위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이루어진 자유주의 신학의 퇴조가 그것이다. 성선설을 믿으며 인간에 대해 낭만적인 평가를 내렸던 자유주의가 엄청난 살생을 저질렀던 세계대전을 치루며 급격히 몰락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 우리가 주목할 점은 작은 소리에 만족했던 복음주의권이 대각성을 시작하며 그토록 비판했던 사회복음화 경향을 보였다는 사실이며 특히 이에대한 기독교 언론의 해설부분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티모시 스미스는 세계대전 이후 복음주의권의 도약변화를 일컬어 ‘대역전’(Great Reversal)이라고 말했고, 미국 크리스챠너티 투데이 지(紙)의 설립자인 칼 헨리는 “복음주의자들은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재빠르게 강조했다. 몰락한 자유주의를 바라보며 몸 둘 바를 몰라 했던 복음주의권 교회에 직격탄을 가한 것이 바로 기독교언론이었다.


크리스챠너티 투데이는 교회의 민감한 변화를 직시하며 복음주의 지평을 ‘사회’로 넓히도록 촉구했다. 이 주장이 실린 때는 1947년으로, 로잔국제 세계복음화대회가 열린 1974년보다 27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복음주의권은 이후 1982년 로잔위원회와 세계복음주의협의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의 관계 협의회’를 거치며 사회참여와 복음사역이 분리될 수 없는 것임을 재확인하고 있다. 미국 기독언론은 이렇게 시대에 민감했던 것이다.



◆ 세상의 변화속도와 기독언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나타난 복음주의권의 ‘대역전’현상은 교회가 세상의 변화와 무관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즐거운 일이건 슬픈 일이건 교회는 세상의 질문에 응답해야하는 종말론적인 사명을 가진 존재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한국교회가 과연 시대의 질문에 적절한 응답을 하고 있는지 생각할 일이다. 최근 가해지는 사회로부터의 비판은 결국 시대의 질문에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교회에 대한 질타이거나 아니면 부적절한 응답을 고집하는 교회의 무사안일을 꼬집는 현상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점은, 사회로부터 비판받는 ‘교회의 참상’과 ‘기독언론의 관계’문제다. 교회가 이렇게 되기까지 언론이 한 일은 무엇인가라고 되물었을 때 명확한 답변이 궁색한 것이 사실이다. 교회가 교회되도록 파수군 역할도 못하면서 대사회 예언자적 기능도 충실히 감당하지 못한 한계를 맛보는 현실이다.


미국교회의 예를 통해서 우리는 시대변화에 민첩하게 반응하는 복음주의권 교회의 새 부대 만들기 노력이 궁극적으로 복음전파와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을 간파했던 곳이 바로 크리스챠너티 투데이였다.


한국기독언론이 추구하는 최근 경향이 복음전파에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지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성은 바로 교회의 참상이 기독언론의 부실한 책임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앞으로 복음전달의 수단으로서의 매체확보에 전력질주를 다해야할 것이다.



◆ 전문인력 배출과 기독언론

한국기독교의 최초 언론으로는 1897년의 ‘죠선그리스도인회보’와 ‘그리스도신문’이 손꼽힌다. 선교사들의 행적을 소개하고 서양문물을 소개하는 정도로 시작된 이들 신문은, 갑오 동학농민전쟁과 갑오경장이 이루어졌던 시기로부터 불과 3년 후에 창간을 맞았다.


당대에 존경받는 선각자들이 참여함으로써 당시 기독언론은, 단지 특정종교를 홍보하는 기관지의 역할을 넘어 민족을 일깨우고 시대의 흐름을 알려 광활한 세계의 움직임에 주목하도록 만든 기능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한글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한 독립협회가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운영됐다고 하면 초창기 한국근대화에서 기독교인물이 끼친 영향력은 가히 폭발적이라고 하겠다.


문광부에 등록된 기독교계 언론 수는 어림잡아 80여종.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정기간행물법률이 바뀐 이래 교계의 언론사 수는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기독언론의 대사회 영향력은 솔직히 미미하다. 이것은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기독언론을 주도할 전문인력 양성 배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


여기서 전문인력이라고 했을 때 기독교인 언론인, 기독언론사의 종사자 모두가 포함되지만 구체적으로 말해서 ‘기독교세계관을 가진 기독언론 종사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


일반 언론사가 적용하는 대로 언론인으로서 자질과 인격을 갖춘 ‘대기자’나 특정분야의 지식과 취재경로에 익숙한 ‘전문기자’제도 도입을 고려할 만큼 인재양성에 목말라하는 풍토가 빈약한 상황이다. 세계를 하나님의 구원행동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보는 언론인 양성에 교계가 머리를 맞대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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