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가 전도자로 변하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마지막 부분에 이름이 나타나 있는(눅6:12-19)시몬은, 베드로의 과거 이름과 동일하지만 열심당 소속이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구별된다. 십자가형에 처해진 예수님 대신에 감옥에서 석방된 바라바가 바로 열심당의 지도자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우리는 시몬이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급진적 신학자들이 말하는 대로 예수님은 과연 로마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하기 위해 이런 류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 혁명을 준비한 것일까. 옷 속에 칼을 차고 다녔던 일부 제자들의 습관을 두고 일부 학자는 그렇게 주장하고는 있다.
우리는 시몬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그려볼 필요가 있다. 제도적인 개혁과 눈에 보이는 제국주의의 몰락을 소망하는 한 열심있는 청년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의 마음 말이다. 확언컨대, 예수님은 그의 협소한 눈을 더 넓게 만들어 하나님의 궁극을 발견하도록 무척이나 애를 쓰신 것으로 보인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는 무분별한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던 그 열심당의 헌신을 하나님의 구속사역으로 전환하게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예수님은 상상만 해도 마음이 벅찼을 것이다.
우리는 또 시몬이 제자 속에 편입됐을 때 이미 제자로 부름받은 마태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로마에 기생하던 세리장이 마태. 민족을 압제하던 로마를 타도하고자 목숨을 걸고 투쟁한 시몬. 이 둘은 과연 제자 속에서 융합이 가능했을까. 하나님나라 건설에 동원될 만큼 조화와 화합을 이루었을까 말이다.
시몬과 마태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 안에 들어온 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조화와 협력의 기적을 이룬다는 사실을 또 한번 확인하게 된다. 모든 갈등과 상반된 이념의 중재자면서 조정자이신 예수님은 아직까지 목적을 위해 폭력을 정당화하는 모든 민족의 구태를 사랑으로 녹이시는 분임을 시몬을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된다.
시몬은 소아시아와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선교하다가 페르시아 폭도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