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급 직원 보호, 전횡 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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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급 직원 보호, 전횡 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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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1.18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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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토론>

‘기독 노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찬성 - 황규학 목사 / 에큐메니칼연구소, 교회법연구원

한국의 노동운동은 전두한 정권의 말기인 1987년 민주화 투쟁과 더불어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조직적인 노동조합의 투쟁과 과업으로 이제는 사측의 기업과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막강한 이익 집단이자 압력 단체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와중에 기독 노조의 탄생은 보수적인 기독교계에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광성교회 부목사들의 노조 가입은 언론이나 매스컴을 타기에 충분하다.

그들이 속한 교단(통합)에서도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전까지는 기독인의 일반 노조 가입 문제의 여부가 쟁점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교회 직원 및 교역자의 노조 가입이 큰 이슈가 된 것이다. 이에 대해 기독 노조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은 교회는 이익 단체가 아니라 봉사기관이므로 사와 노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교회의 주인은 사람(목사)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사용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교회가 이윤 추구의 장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교회의 문제는 교회나 교단을 통해서 해야지 외부 기관으로 가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기독노조위원장인 이길원 목사는 원칙적인 입장보다 국가법을 가지고 현실적으로 접근한다. 교회의 그러한 신학적이고 관념론적인 원칙보다도 임금을 받고 일하는 모든 이들은 근로자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교회라고 할지라도 인간의 이기심은 끝이 없어 교회의 근로자에게 더 많은 요구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교회 내 유급 직원들에 대한 인권과 권익 보호

그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기득권자들은 스스로 기득권을 내놓은 예가 없기 때문에 기독 노조는 자본주의의 보완하는 기능으로서, 국가가 정해 놓은 최저 생계비도 안 되는 상태에서 신앙이나 하나님의 천직이라는 미명하에 장시간의 노동을 강요당하며 인권적 억압을 받게 되는 교회 내 사찰집사, 부교역자 들의 부당한 노동 행위 강요의 사슬을 끊고, 사용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서게 함으로 자본주의의 한 축으로서 당당하게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노동 3권은 기독 노조가 아니라 국가 헌법이 보장한 것이기에 합법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기독 노조는 국가법을 안고 교회에 들어왔기 때문에 기독 노조의 존재 여부와 신학적 정당성의 여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신학적으로 비성서적이고 이단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은 국가법을 등에 지고 과감하게 교회 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도 최저 생계비조차 보장이 안 되며, 무단 해고당하는 교회의 유급 직원들과 부목사들 8인이 가입한 상태이다.

그러면 현실적으로 기독 노조는 기독교의 어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기독 노조는 한국교회 개혁에 여러 면에 있어서 개혁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교회 내 담임목사를 제외한 유급 직원의 인권과 권익 보호일 것이다. 이제까지 주로 가입한 노조원은 사찰집사나 운전기사 등 교회 내에서 제대로 물질뿐만 아니라 인권적 대접도 못 받는 우리의 눈에 사각지대에 있었던 약자들이다. 그래서 기독노조는 예수님처럼 약자를 위한 친구로서 그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이번 광성교회 사건에서 보듯이, 노회의 허락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담임목사(사용자) 마음대로 부교역자들을 해임하고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사례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담임목사의 나라` 아닌 `하나님의 나라` 만들어야

현재 기독 노조는 광성교회 사태를 통해서 교단의 데뷔를 위한 실험대 위에 올라와 있다. 기독 노조가 성경적인 입장에서 약자를 위한 신앙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지나친 권익을 추구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느니 보다 신앙적인 차원에서 국가법의 둘 안에서 대화로서 일을 풀어나간다면 담임목사의 횡포로 인해서 말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는 많은 여성 교역자들을 비롯한 남성 부교역자들과, 인간적 대우도 못 받는 사찰집사, 때로 인격의 모멸감까지 느끼면서 운전해야 하는 교회 차량기사 들도 많이 가입하여 인간다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즉 교회 안에 ‘담임목사의 나라’가 아니라 ‘약자들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진정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은 하나님이 주신 천직으로서 신성한 것이다. 이 신성한 노동이 기득권자가 아니라 약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게 하는데 기독 노조는 긍정적 기능으로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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