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무나
하박국 2:3~4
찬송: 212장
하박국 선지자가 불의가 난무한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믿음으로 살리라”가 히브리어로 ‘에무나’인데, 원래 이 단어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버티다, 견디다, 신실함, 성실함, 진실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출애굽기 17장 12절에는 기도하는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아니한지라”에 ‘에무나’가 사용되었습니다. 본문을 다시 해석하면 3절에 “하나님의 묵시가 더딜지라도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하나님을 믿는 자는 그 약속이 더디 성취될지라도 억울해하지 말고 그 약속의 말씀이 성취될 때까지 약속을 믿고 하루하루 버티며 살라는 뜻입니다.
역대상 9장 22절에는 “성전 문지기의 직분을 맡겼다”고 했는데, 직분을 맡겼다가 ‘에무나’입니다. 성전을 지키는 것도 버티며 견디는 믿음이 적용된 것입니다. 역대상 9장 31절에는 “성전에 전병을 굽는 일을 레위 사람 맛디댜가 맡았으며…”라고 나오는데 여기서도 맡았으며가 ‘에무나’입니다. 직분을 감당하는 것도 믿음으로 버티며 감당하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은 이해되지 않는 상황 가운데에서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주님 오실 때까지 버티며 견디며 살아내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이 하루도 버티며 견디는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 말씀 붙들고 버티고 견디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요한복음 3:16
찬송: 150장
성경에 31,039개의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바이블 게이트웨이에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무엇인지를 172개국의 구글 검색량으로 분석했습니다. 2016년, 2017년, 2022년 분석 결과,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성경 구절은 요한복음 3장 16절이었습니다. 사랑받는 이유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기독교인이 되는 것과 영생의 관계를 두루 담으면서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짧고 명확하게 요약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에서 세상은 ‘집단으로서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개인으로서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 한 사람을 사랑하사’입니다. “이처럼”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 한자로 ‘독생자(獨生子)’는 ‘아버지가 낳은 하나뿐인 아들’이란 뜻입니다. 헬라어로 ‘모노게네스’입니다. 이 말의 정확한 뜻은 ‘낳다’가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나온 유일한 자’라는 뜻입니다. “주셨으니”는 헬라어 ‘디도미’에서 온 말입니다. 이 말에는 기부, 기증(donation)의 의미가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인 나, 한 사람을 위하여 독생자의 목숨까지 기증할 만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며 하루하루 사는 우리가 되길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며 하루하루 살게 하옵소서.
1%의 수고와 99%의 섭리
사무엘상 30:18~25
찬송: 301장
블레셋 망명 생활을 하던 다윗은 아기스 왕을 도와 이스라엘과의 싸움에 참전할 뜻을 밝혔으나,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 일에 관여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사흘 만에 시글락에 돌아와 보니 아말렉이 쳐들어와 성읍은 불태우고 여자와 아이들은 사로잡아 갔습니다(1~3). 다윗은 600명의 용사들을 이끌고 아말렉을 쫓기 시작했는데, 브솔 시내에 이르러 힘이 빠진 200명을 거기서 쉬도록 배려합니다(10). 맹렬한 추격전 끝에 붙잡혀 갔던 사람들을 구출하고 전리품도 획득합니다(19~20).
문제는 전리품 분배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브솔 시내에 남아 쉬고 있던 200명에게는 전리품을 나누어주지 말자는 의견이 제기된 것입니다(22). 그때 다윗은 반대를 무릎 쓰고 모두에게 전리품을 공평히 나누게 합니다(24). 다윗이 왜 그랬을까요? 이 모든 일은 인간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의 은혜와 섭리로 말미암아 가능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23).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해 조금 수고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정죄하기 보다는 모든 일이 주의 은혜로 가능했음을 고백하며 겸손히 주님만 높이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오늘의 기도
모든 것은 주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인정하며, 모든 영광 돌리기 원합니다.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소서
하박국 3:1~2
찬송: 182장
하박국서는 구약 유다의 당시 암담한 현실 만에 대한 고백이나 묵시가 아닌 폭넓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묵시와 비전을 입체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말씀은 당시 구약 유다의 영적 쇄신을 바라는 강력한 부흥에의 열망이나 선포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부흥하게”란 ‘살리다’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부흥이란 사람이 하는 사람의 역사가 아닌 하나님만이 하시는 살리는 역사를 가리킵니다.
“주의 일”이란 하박국 3장 전체로 보면 주로 환난에 관한 일입니다. 역병, 땅의 진동에 이어 많은 부분은 전쟁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방 무리가 하나님 백성을 치러 올라오며 그날을 “환난날”이라 하였습니다.
“이 수년 내에”란 표현은 시간적 의미를 담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이 역사가 그분의 주권 안에서 이 수년 내에 펼쳐져 그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기를 구하는 담대한 간구를 말합니다.
“환난”과 인생사는 뗄 수 없습니다. 환난을 성경적으로 잘 이해하고 직시하며 신앙생활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원의 찬송이 이 장 끝에 나옵니다. 결국 주의 일이란 환난과 구원의 일입니다. 환난이 오히려 우리에게 구원이 되도록 슬기롭고 순결한 믿음을 고백하며 나가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만이 하시는 부흥의 역사를 따라 영혼 살리는 일을 잘하게 하옵소서.
취하여 가셔도
욥기 2:1~10
찬송: 393장
욥기는 많은 신앙적 주제들을 품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을 잘 섬기면 복을 받고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하면 징계를 받는 것에 관한 주제에 대해 다른 시선을 갖게 합니다.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욥이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것이라며 소유물과 건강을 지켜주시는 것이 이유라고 말합니다. 사탄의 도전에 하나님은 욥의 모든 것을 취하도록 허락하십니다. 결국 욥은 열 명의 자녀와 모든 재산과 건강을 잃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아무 이유 없이 잃었을 때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없어’ 하며 하나님을 부정하고 원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욥은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겨도 고난이 있고, 어려움이 있고, 가난하게 살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약함, 어려움, 고난도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참으로 놀라운 은혜가 넘치는 시대입니다. 이렇게 될 때까지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고난을 일상의 삶으로 여기며 순교의 제물로 드려지는 삶을 살았습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 18:8)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믿음의 사람으로 그분 앞에 설 수 있길 소망합니다.
•오늘의 기도
고난 중에도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순결한 신부로 서게 하소서.
소유된 백성
베드로전서 2:9
찬송: 191장
하나님은 말씀이십니다. 말씀은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성령님께 주목받으면 우리는 말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루스드라의 앉은뱅이는 그의 믿음을 보신 성령님의 능력으로 일어나 걷게 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은 어떤 분이시기에 이렇게 행하실 수 있을까요? 성령은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이십니다. 성령을 받아야 하나님 앞에 살 수 있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존귀한 사람이 됩니다. 또한 나에 대한 정체성을 분명히 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어둠 속에 갇혀있었습니다. 그렇게 갇힌 우리를 꺼내어 귀한 빛으로 인도하신 분은 이제 우리 삶의 주인이시며 우리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 보혈의 피가 우리를 귀한 생명의 빛으로 이끌어내셨습니다. 그분은 그 피의 값으로 나를 사셨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의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나에 대한 권리는 이제 그분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소유답게 살아야 하고, 우리의 삶으로 그분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바로 ‘그 이름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주인이 원하시는 뜻대로 살아가며 세상에 타협하지 않고, 분명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진 각 개인과 가정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나의 바른 정체를 알아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