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으로 살아간 『성서 속 2인자들』 22명 조명
“신‧구약 구원 드라마 속 주인공은 한분 하나님”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무한 경쟁사회 속에서 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꼬집는 요즘 청년들의 자조적인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주인공이 아니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것이 ‘2인자’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성서 속에서 ‘2인자’로 살아간 인물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주인공을 향한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인생의 억울함과 허탈감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으로 온전히 채워진 성경 속 ‘2인자’들을 주목해보자. 세상 속에서 ‘주인공’으로 평가받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이들이 오히려 오늘날 평범한 크리스천들에게 위로와 용기가 될 수 있다.
성경 속 주인공의 이야기에 몰입하다가 놓친 배경 정도로 여겼던, 2인자들의 삶을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 발간됐다. 백소영 교수(강남대학교 기독교학과)가 펴낸 도서 『성서 속 2인자들(도서출판KMC)』은 성서 속 주인공이 아닌, 오히려 조연으로 여겨지는 인물 22명을 조명한다. 하갈, 에서, 라반, 유다, 미리암, 바락, 야엘, 입다, 요나단, 아비가엘, 다말….
먼저 세례 요한을 떠올려보자.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푸는 세례요한을 우러러보는 이들에게 자신은 그저 “광야에서 외치는 사람의 소리”라는 고백을 내놓는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조연임을 깨달았던 그는 철저히 겸손한 모습으로 자신을 낮춘다.
성경 속에서 주인공인 것 같은 인물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실은 각자 하나님이 주인공인 이야기에 조연의 역할에 충실했음을 깨닫게 된다. 아비가일이나 다말, 와스디와 목자들, 시므온과 안드레는 남들의 욕망에 동조하거나 주변의 폭압적인 시선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 삶을 지키며 살아간 인물들이다.
성경의 흐름 속에 누군가는 주인공처럼 누군가는 조연처럼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은 한 분 하나님뿐이다. 어느 대목에서 누군가는 주인공처럼 돋보일지라도 하나님에게는 주인공과 조연이 구분될 수 없다. 그분의 부르심 앞에 응답하여 그의 영광을 드러내는 조연으로 충실하면 그만이다.
책에 대해 백소영 교수는 “대한민국의 치열한 경쟁 분위기 속에 최종 승리자에게 모든 명예와 지위, 부를 몰아준다. 이러한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성경 인물들마저 그런 시선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특히 그는 “달리 보면, 2인자라는 말은 세상이 주는 욕망을 훨씬 더 내면화하기 쉬운 것 같다. 한 사람만 제끼면 ‘1인자’가 될 수 있다 보니 더 억울하고 안달이 날 수도 있다. 성서 속 인물 중에서도 그런 인물은 없을까. 혹은 우리가 그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은 아닌지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의도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우리는 성경에서 주인공인 것처럼 보이는 1인자 사라와 야곱, 마리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느라 하갈, 에서, 라반과 마르다 같은 인물의 호소와 속내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들 역시 우리의 신앙의 선배로서 우리 삶에 나타난 하나님을 증언할 수 있는 데도 말이다.
책에 등장하는 ‘2인자’가 모두 성경적 관점에서 바람직한 삶을 살아간 이들은 아니다.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비극을 겪거나 노골적인 욕망을 드러냄으로 반면교사 삼아야 할 인물들도 다뤘다.
야곱의 외삼촌 라반은 어떠했는가. 야곱을 통해 복 주시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면서도 한 번도 라반은 ‘야곱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야곱을 통해 늘어나는 재산을 보며 그를 경쟁하고 시샘했을 뿐이다. 그러나 모든 천지만물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넉넉히 주고 풍성하게 나누는 은혜가 임한다.
백 교수는 “성서 속 2인자의 삶을 보며, 우리 안에 여전히 수직적인 평가 기준을 버리지 못한 모습이 없는지 되돌아봤으면 한다”며 “알게 모르게 나만의 바벨탑을 쌓아가고 있었던 크리스천들이 서로의 고유성을 발견해주고 서로를 발견하고 인정해주는 문화를 일궈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창조주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셨음을 기억한다면, 수직적 사고에서 벗어나 수평적 관계를 향해 나아갈 필요가 있다.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부자와 빈자 등 모든 막힌 담을 허물고 서로를 바라볼 때 관계적인 혁명을 이뤄갈 수 있다.
끝으로 백 교수는 “책을 통해 이 세상에서 누가 어떻게 평가하든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인생을 성실하고 진지하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며, “더 달릴 수 있는데 조금 더 경쟁해서 1등을 할 수 있음에도 기꺼이 2인자의 자리를 선택하며, 그만큼의 확보한 시간과 에너지를 주변 이웃에게 나누는 ‘관계적 선택’이 우리에게 있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