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대놓고 화내기’라고도 한다. 이런 ‘대화’를 한자로 ‘平火’라고나 할까. 우리가 아는 ‘平和’와는 정반대의 뜻이다. 감사도 중요하고, 배려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폐를 끼치지 않는 게 배려의 첫걸음이다. 그 중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의 화를 돋우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 ‘平和’가 온다.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는 ‘平和’ 대신 ‘平火’가 끊이질 않고 있다. 영토, 인종, 종교, 경제 무역, 이념 등을 놓고 나라와 나라, 개인과 개인이 다투고 있다. 남북 간에는 물론이고, 나라 안에서도 ‘平火’의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진영, 젠더, 불평등, 세대, 일터 등의 이슈를 놓고… 좀 지난 통계이기는 하나, 우리의 갈등 지수는 OECD 3위이지만 그걸 관리하는 갈등관리지수는 27위라고 한다. 불은 크게 번지는데 소방시설은 취약하다는 얘기다. 이러한 현상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져, 언론에서는 우리나라를 ‘갈등 공화국’이라고도 부른다.
갈등은 ‘다름’에서 비롯된다.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없으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갈등은 불가피하다. 단지 갈등을 해소하며 살아가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우리 기독교 음악의 강점은 4부 합창에 있다. 합창은 여러 다른 음들의 조화(和音, harmony)로 이뤄진다. 다른 음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소음(騷音, noise)이 되고 만다. 평화는 단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음들이 이뤄내는 화음이고 하모니다.
2024년 파리올림픽 여자 비치발리볼 브라질과 캐나다 경기 중 선수 간에 험악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때 지혜로운 장내 방송 진행자가 비틀즈의 ‘이매진(Imagine)’이라는 음악을 틀어주었다. 그러자 관중들이 이 노래를 떼창했고, 선수들도 화를 가라앉히고 웃음 속에서 게임을 마쳤다. 이 노래는 존 레논이 작곡한 것으로 정치, 종교, 인종 차별에서 벗어나 평화를 이루자는 내용이다. 영화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실화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영국군과 독일군이 전투 중이었다. 이때 독일군 전선에서 성탄절 캐롤이 울려 퍼졌다. 그러자 영국군도 총을 내려놓고 캐럴을 부른다. 이어 양쪽 군인들이 만나 성탄절을 축하하며, 사망자들을 묻어주고 선물도 교환한다. 그리고 운동경기도 한다. 이게 평화다.
상대방을 존중(尊重)하고 인정할 때 평화(平和)가 온다. 상대방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높게, 무겁게 여기면 평화(平和)의 언어가 나온다. 그러나 상대방을 낮게, 가볍게 여기면 무시하고 차별하고 혐오하는 평화(平火)의 언어가 나온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사회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치는 평화(平火)의 언어가 난무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수많은 갈등의 벽과 깊은 혐오의 강이 만들어지고 있다.
죽이는 병살타 언어보다,
살리는 2루타 언어를!
어느 병원에 이런 글이 붙어 있다고 한다. “개에 물려 다친 사람은 반나절 만에 치료를 마치고 돌아갔습니다. 말(馬)에서 떨어져 다친 사람은 3일 만에 치료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말(言)에 다친 사람은 지금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이끄는 정치인, 연예인, 방송인, 종교인들이 병살타 언어가 아니라 2루타 언어를 많이 사용했으면 한다. 병살타 언어는 나도 죽고 다른 이도 죽게 한다.
그러나 2루타 언어는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게 한다. 아파하는 이를 위로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을 격려하고, 못 하는 사람을 더 잘하게 해주고, 잘 한 사람을 더 잘하게 해주고, 절망한 사람에게 용기를 갖게 해주고, 죽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평화의 나라는 평화의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며...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삶의 현장에서 수없이 읊조리며 실천해야 할 기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