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을 하시는 장로님이 하신 이야기이다. 어느 날, 일하다가 실수로 소금 가마니를 바다에 빠뜨렸다가 바로 건졌는데, 커다란 가마니 속 소금이 모두 녹아버리는 것을 보면서 소금은 바다로부터 취한 것이기에 바닷물을 만나면 금세 옛 모습으로 돌아가 버린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취한 소금과 같아 세상과 섞이기 시작하면 금세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마는 속성이 있다. 이것은 오래 묵은 소금이나 금방 수확한 소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세속화되는 것은 금방이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온갖 세상 유혹들을 경계해야 한다. 조심스럽게 자신을 살피며, 구별됨을 유지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름표를 하나 붙여 주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다.’ 창고 안의 소금이 아니다. 됫박 안의 빛이 아니다. 세상의 소금이다. 세상의 빛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주 무대가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라는 것이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드러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 역삼투압 현상이 심하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맛을 내고, 빛을 비추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세상의 맛을 내고, 세상 어두움을 닮아가고 있다. 그래서 마치 미운 오리 새끼가 오리들 사이에서도 구박받는 것처럼 헤매고 있다. 왜 그럴까? 하나님의 말씀을 놓쳤기 때문이다. 겸손을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챘기 때문이다. 세상 것으로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주님이 부르신 ‘정체성과 사명’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돌이켜야 한다.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뒤뚱뒤뚱 땅을 헤매는 오리가 아니라, 창공을 수놓고 물 위를 우아하게 헤엄치는 백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이고, 구별됨을 추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신앙생활은 예배당 문을 나서면서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가 예배당에 모이는 것은 흩어지기 위해 모이는 것이다. 은혜받고, 능력받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다.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세상을 무서워하거나, 세상이 더럽다고 회피하지 않았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 자로 살았다. 그 힘의 근원은 하나님이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말하지만 다니엘은 달랐다. 그의 도덕성은 뛰어났다. 다니엘은 왕이 바뀌고, 나라가 바뀌어도 여전히 필요한 사람이었다.(단 6:4)
다니엘은 법을 어기면 사자굴 속에 던져져서 죽게 될 것을 알았다. 30일 동안 마음속으로만 기도해도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타협하지 않았다. 도전을 피하지 않았다. 만약 피하였다면 다니엘을 해하려는 자들은 다른 방법을 동원했을 것이다. 결국 다니엘이 승리한다. 해하려 했던 모든 사람들이 사자굴에 던져진다. 그 일로 인해 다니엘이 섬기던 하나님이 바벨론 도에서 높임과 찬양을 받으신다. 우리도 다니엘처럼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 실력을 키우고, 흠 없는 도덕성을 갖추고, 맡겨진 일에 충성하고, 세상의 도전에 믿음으로 응수하라. 세상의 소금이 되자. 세상의 빛이 되자. 세상이 우리를 기다린다. 세상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
신나는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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