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잔정신 계승하면서 성적지향·전쟁과 갈등·기술 문제 언급해
로잔운동은 문서운동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1974년 태동으로부터 5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로잔언약, 마닐라선언, 케이프타운서약이라는 세 기둥이 로잔의 정신과 복음주의 선교 운동을 지탱했다.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교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대위임령의 성취란 무엇이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위대한 발걸음에 어떻게 동참해야 하는지가 세 개의 문서에 고스란히 수록됐다.
제4차 로잔대회 역시 시대를 관통하는 복음주의 정신을 ‘서울선언’에 담아낸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선교학자들이 머리를 맞댄 국제로잔 신학위원회가 이미 서울선언의 초안을 정리해 영문으로 발표했다. 선언문은 대회 기간 중 토의와 채택 과정을 거친 후 발표돼 한국교회 성도들도 회람할 수 있게 될 예정이다. 서울선언의 핵심 내용을 간략히 기사로 소개한다.
흔들리지 않는 복음의 중심성
서울선언은 이전에 발표된 로잔의 세 개 문서의 계승자임을 분명히 한다. 로잔 문서들의 중심에는 ‘복음의 중심성’,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선언은 복음주의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이 대원칙들을 흔들림 없이 고수할 것을 천명한다.
독특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선언은 기독교 신앙의 뿌리에 대해 집념이 느껴질 만큼 자세히 되짚고 있다는 사실이다. 선언문을 접한 전 인터서브 대표 조샘 선교사가 “아이들을 위한 교리서처럼 느껴진다”고 표현할 정도다.
선언문은 먼저 복음이란 도대체 무엇인지를 태초로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설명한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가장 위대한 작품이었던 인간이 타락하는 과정,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의 죽음으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사망을 이기신 놀라운 구원의 역사, 고대하고 갈망하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며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음 단계는 ‘우리가 읽고 순종하는 성경’이다. 성경은 신적 영감과 하나님의 숨결이 담긴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언하면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모으고 다스리는 권위가 있으며 신앙생활에 있어 유일한 기준이라고 정의한다. 다만 성경의 권위가 지나친 문자주의로 흘러가는 것은 경계하고 있다. 성경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문화적, 상황적 맥락을 고려해야 함을 놓치지 않는다.
선교의 주체가 되는 교회
로잔의 다음 관심사는 교회로 넘어간다. 사실 복음과 성경에 대한 분명한 정립이 필요했을 뿐 4차 로잔대회는 선교의 주체로서 교회에 대해 관심이 깊다. 주제에서부터 ‘교회여! 함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나타내자’며 교회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선언문은 교회가 할 일에 대해 주목한다. 주제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는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선포하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면, 나타내는 것은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을 삶으로 실천하는 일, 다른 말로는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 하겠다.
다만 로잔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제자화’의 과정으로 풀어낸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나타내도록 부름을 받았으며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주님의 뜻에 순종한다. 우리는 좋은 소식을 전하지 않고서는 제자 삼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제자화의 결과로 그리스도인의 실천이 나타나야 한다고 로잔은 설명하고 있다.
선언문은 선교의 기본 단위를 교회로 파악한다. 지역교회를 가리켜 선교의 수단이자 목적이라고 표현한다. 대위임령은 복음의 메시지를 믿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순조을 가르침으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는 명령이다. 이 일에 부름을 받은 곳이 바로 교회다.
창조질서에 대한 분명한 선언
‘섹슈얼리티’, 성정체성에 대한 서술은 어쩌면 선언문에서 가장 이목이 집중될 대목이다. 직전 대회가 열린 2010년만해도 성정체성과 동성애가 이토록 중요한 문제로 거론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 특히 교회 안에서는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로잔은 서울선언을 통해 동성애 문제에 대해 복음주의 입장에서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성경은 인간이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성으로 명확하게 창조되었다고 증언함을 로잔은 지적한다. 선언문은 성적지향에 대한 왜곡을 개탄하면서 자신의 성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개념을 단호히 거부한다. 동성 성관계에 대해서도 ‘성경의 모든 언급은 동성애를 창조주의 선한 설계를 왜곡하는 것으로 간주하므로 그것이 죄악이라는 피할 수 없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동성애만이 유일한 성적 타락은 아니며 이성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성적 거룩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혼의 범위를 벗어난 성관계, 일명 혼전순결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창조주의 설계와 의도를 벗어나는 죄악’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성의 거룩함을 지키려는 단호함이 엿보인다. 선언문은 태어날 때부터 성이 명확하지 않은 사람들, 소위 ‘인터섹스’로 통칭되는 이들에 처한 곤경에 대해서도 인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평화의 사도이자 기술의 청지기
로잔은 전쟁과 갈등으로 고통받는 전 세계 형제 자매들에 대한 관심을 잊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가자지구의 전쟁으로 시작해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100건이 넘는 무력 분쟁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한다. 비교적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시리아, 미얀마, 수단, 에티오피아의 상황에도 렌즈를 돌린다.
선언문은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위해 분쟁과 전쟁을 조장하는 이들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높인다. 배타적 태도를 유도하는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 대해서도 우려의 시선을 던진다. 고무적인 것은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잊혀진 전쟁’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로잔은 언젠가 남북한 국민이 하나가 되기를 계속 기도하고 있다며 교회가 평화의 사도가 돼야 함을 강조한다.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기술에 대한 관점도 제시한다. 근본적으로 기술의 혁신은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는 일이다. 기술 활동은 인간의 창조적 능력으로 창조주께 영광을 돌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종종 인간의 죄는 기술을 그릇된 방향으로 인도한다. 그런 점에서 선언문은 ‘기독교인은 기술을 예언자적으로 비판하고 관여하도록 부름을 받았다’고 정의한다.
일상 곳곳에 스며들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에 대해선 기독교인의 방식으로 분별할 것을 권면한다. 동시에 기술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는 것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전례 없는 기회로 연결될 수 있음을 놓치지 않고 있다. 창조세계의 청지기로 부름 받은 우리는 응당 그 열매인 기술의 청지기 또한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