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러하듯 주차도, 운전도 예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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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러하듯 주차도, 운전도 예배다
  • 이의용 교수 사)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 승인 2024.09.0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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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용의 감사행전 (92)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교회에서 주차 안내를 하다 보면 속이 터진다. 교인들이 안내자의 지시를 따라주지 않아서다. 그렇다 보니 주차 안내 봉사를 서로 꺼린다. 한번은 남을 배려하지 않고 마구 주차해놓은 차들의 사진을 찍어 예배당 출입구에 붙여놓은 적이 있다. “주차도 예배입니다”라고 쓴 큼직한 문구와 함께. 주차가 왜 예배냐는 항의가 많았다. 이런 이들은 교회 주차장에서 나간 후에도  도로에서 다른 차들에게 폐를 끼칠 확률이 크다. 

도로는 경쟁 사회의 축소판이다. 그래서 서로 추월하고 끼어들기를 한다. 그러다 뜻대로 안 되면 경적을 울리고 하이빔을 켜고 위협을 한다. 비싼 차가 그렇지 않은 차를, 큰 차가 작은 차를 무시하는 것이 부자가 빈자를, 강자가 약자를 무시하는 사회와 꼭 닮았다. 그런 걸 예방하는 게 법이다. 도로에는 도로교통법이란 게 있다. 모든 운전자들은 그걸 공부하고 운전할 자격을 얻지만, 실제 운전에서는 그걸 잘 지키질 않는다. 오히려 법을 피하고 감시 카메라를 피하는 걸 운전 능력으로 평가한다.

그런가 하면 운전자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 받기도 한다. 음주운전차, 뺑소니 운전자를 추격해 위험을 예방하기도 하고 정신 잃은 운전자를 구조하기도 한다. 자신의 차로 달리는 차 앞에서 막아가며… 구급차 사이렌 소리에는 모든 차들이 홍해의 기적처럼 길을 열어준다. 법은 지켜야 한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법만 잘 지킨다고 해서 사고가 근절되지는 않는다. 양보가 더해져야 한다. 개인 간의 다툼은 승자와 패자를 만들지만, 운전 중의 다툼은 양쪽 모두를 패자로 만든다. 양쪽 운전자와 동승자가 사상(死傷)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전은 힘든 일이다. 기계 작동보다 화가 나고 욕이 나오기 때문이다. 운전은 수양의 과정인 것 같다. 

한번은 고속도로에서 미니버스 한 대가 1차로를 독점하고 천천히 달렸다. 다른 차들이 2차로로 비켜 그 차 앞으로 달려야 했다. 나도 비키든지 빨리 가든지 하라고 경적을 울리고 하이빔을 켜댔지만 여전했다. 차로를 변경하면서 보니 어느 교회 미니버스였다. 1차로는 추월선이어서 비워둬야 하는데 거길 막고 저속으로 달렸으니 얼마나 많은 차들이 불편했을까. 얼마나 많은 이들이 교회를 손가락질했을까. 그래서 나는 교회 차량에 교회 이름 붙이고 다니는 걸 반대한다. 개인 승용차 뒤에 기독교를 상징하는 물고기 표시나 성구 스티커를 붙인 것도 싫다. 한때 “네 탓이요”란 스티커를 차 뒤 번호판 위에 붙이고 다니는 차들이 많았다. 자신의 신앙적 각성을 촉구하는 표어를, 왜 자신이 보이지 않는 곳에 붙이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운전석 앞에 붙여야지. 교회 차든 개인 차든 차에 기독교를 표현하고 다니려면, 다른 차보다 교통법규를 잘 지키고, 손가락질을 당하지 않도록 모범적으로 운전할 각오를 해야 한다. 도로에서도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 

도로의 소금과 빛이 되는 5가지 운전 수칙
필자를 포함해 운전자들은 적어도 다음 몇 가지를 꼭 지키면 좋겠다. 첫째, 고속도로를 달릴 때 추월선을 독점하거나 저속으로 달리지 말자. 둘째, 깜빡이등을 적극 사용하자. 깜빡이등은 내 차의 방향을 예시해 뒤차가 준비하도록 돕는 배려 방법이다. 깜빡이등을 사용하지 않는 운전자가 30%를 넘는다. 심지어 끼어들기를 한 후에야 깜빡이등을 켜기도 한다. 넷째, 앞차와 안전거리를 지키자. 뒤차가 앞차를 바짝 따라올 때 앞차 운전자는 매우 불안해진다. 그러다 급정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 급한 사정이 있는 차에게는 기꺼이 양보를 해주자. 그래야 내가 급할 때 누군가 양보를 해줄 것 아닌가. 그리고 양보를 받았을 때에는 어떻게든 고마움을 표현하자.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어준다든지, 비상등을 켜준다든지….

얼마 전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는 뚜껑을 닫지 않고 출발했다. 도로에 차들이 끊이질 않아 진입을 기다리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기름을 넣고 내 뒤에서 기다리던 승용차 운전자가 차를 세우고 달려오더니 얼른 내 차 주유구 뚜껑을 닫아주고 가는 게 아닌가. 창문을 열고 엄치척을 해주며 고마움을 표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도로를 달리는 앞차, 뒤차, 옆차의 운전자와 승객은 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아닌가. 그들을 진정한 이웃으로 대접해야 나도 살고, 저들도 산다. 삶이 그러하듯 주차도, 운전도 그리스도인에게는 예배다.

(사)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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