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가 필요한 이유
신명기 8:2~4
찬송: 485장
광야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첫째, 광야는 길이 보이지 않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곳입니다. 인생도 때로는 이와 같습니다. 목표가 있는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것 보다 목표가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사막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광야는 나의 화려했던 과거 이력이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애굽에서 얻은 재물도 소용 없습니다. 광야는 내가 낮아지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셋째, 광야는 나의 능력을 증명하는 곳이 아닌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되심을 증명하는 곳입니다. 40년동안 의복이 해어지지 않고 하늘의 만나를 먹게 하심으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을 배우는 곳이었습니다.
말씀(따발)이라는 단어 어근이 광야(미드바르)에서 왔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곳입니다. 말씀을 받는다는 의미는 내 꿈,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제 나를 증명하는 삶이 아닌 하나님을 뜻을 받들어 나를 통해 하나님을 증명하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을 증명하다 하나같이 순교하였습니다. 광야가 있어야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 이루어지게 하소서!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겸손을 배우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하소서!
즐거움보다 기쁨을 추구하는 인생
데살로니가전서 5:16
찬송: 95장
하나님은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부탁이 아닙니다. 명령입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는 그리스도인이 준수해야 할 의무사항 중 하나입니다.
많은 사람이 ‘기뻐하라’와 ‘즐거워하라’를 혼용합니다. 이 둘은 의미가 다릅니다. 폴 틸리히(Paul Tillich) 교수는 『존재에의 용기(The Courage to Be)』에서 기쁨(Joy, 喜)과 즐거움(Pleasure, 樂)을 구분합니다. 기쁨은 고통스럽고 불편할 수도 있지만, 내면 깊숙이 차오르는 만족스러운 감정입니다. 예를 들면 출산 후 아이를 안은 엄마의 뺨에 흐르는 눈물에서 볼 수 있는 감정입니다. 우리는 이런 눈물을 즐거움의 눈물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기쁨의 눈물이라고 부릅니다.
즐거움은 고통과 불편을 거부하고 외적 자극에서 발생하는 일시적 쾌락적 감정입니다.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맛있는 음식을 먹기, 마음에 드는 물건 쇼핑하기 등에서 느끼는 감정입니다. 동물에게 즐거움은 있지만 기쁨은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감정이 기쁨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쁨보다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즐거움보다 기쁨을 추구하기를 바라십니다. 잠시 잠깐의 즐거움을 찾아 사는 인생이 아니라 의미 있고 보람 있는 기쁨을 찾아가는 인생 되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 명령하셨습니다.
•오늘의 기도
즐거움 추구하는 인생이 아니라 기쁨을 추구하는 인생 되게 하옵소서.
사무엘의 죽음, 다윗의 방황
사무엘상 25:1~13
찬송: 187장
다윗은 훌륭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완벽한 자는 아닙니다. 그는 사울의 목숨을 거둘 수도 있는 유리한 상황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뿐이 아닙니다. 두 번 연속 그랬습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은 자를 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삼상 24:6, 26:9). 다윗의 훌륭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 두 장 사이에 낀 오늘 본문 사무엘상 25장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다윗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갈멜에서 목축업을 하는 나발이라는 사람의 양 떼를 돌보아 준 일이 있습니다. 다윗은 자기 사람들이 베푼 호의에 대해 나발에게 적절한 보상을 요구했지만 묵살당합니다(10~11). 그러자 다윗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나발의 집안에 보복을 하려 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여러 차례 해치려 한 사울에게는 너그러우면서도, 나발의 배은망덕에는 지나칠 정도로 응징하려는 다윗의 모습에서 ‘무엇이 문제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1절. “사무엘이 죽으매” 본문은 다윗에게 사무엘의 있고 없음이 만들어 낸 차이를 나발 이야기를 통해 넌지시 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성령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의 임재를 느끼며 그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때 승리하지만, 그를 떠나 우리 고집대로 할 때 우리는 넘어질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 생각과 고집대로 살지 않게 하시며, 오직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살게 하옵소서.
꿈꾸는 사람, 야곱
로마서 1:15~17, 8:1~17
찬송: 331장
은혜의 본질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의 영광에 접하는 것입니다. 벧엘에서 야곱이 꿈을 꾸었던 그곳은 하나님의 꿈과 계획과 최초로 만난 현장이며 지금까지 마이웨이로 달려왔던 발걸음이 멈추고 그의 길로 코스를 바꾸는 거룩한 현장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데 그 위에 하나님께서 “나는 여호와라” 말씀하십니다.
거룩한 꿈과 환상은 거룩한 임재의 자각으로 이어집니다. “여호와께서 여기 계신다” 그 꿈꾸었던 장소 벧엘이나 루스에 계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신앙인이 고통도 참아가며 꿈을 안고 모든 순간 소망을 새롭게 하며 전진하는 현장, 여기에 여호와께서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거룩한 믿음과 소망의 꿈을 꾸며 말없이 묵묵히 전진하는 사람 곁 여기에 계십니다.
거룩한 꿈은 거룩한 서원으로 나아갑니다. 지금까지 내 식대로 살아오던 삶의 내용들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하에 야곱은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확인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은 믿음과 찬양과 경배와 충성의 고백이고 ‘이 돌들은 하나님의 집’에서 야곱은 이미 성전 공동체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십분의 일은 반드시 하나님께’는 믿음의 기본 척도 ‘십일조’를 말합니다. ‘반드시’란 ‘정확하고 온전히’란 뜻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꿈과 임재의 자각과 거룩한 결단의 서원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거룩한 임재의 자각과 거룩한 서원으로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간절하면
예레미야 33:1~3
찬송: 364장
예레미야의 기도와 마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좋은 것들이 너무 많고 유익한 것들이 풍성합니다. 하지만 영적인 빈곤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영적인 어두움이 점점 깊어가는 모습입니다. 계시록에 계시된 세상 끝날의 시대는 혼란과 어두움, 죄악이 관영하여 배교가 일어나고, 실족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시대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시대의 어두움을 보며 정죄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나 거룩한 짐을 지고 하나님 앞에 서서 울부짖는 사람들은 적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끔은 부르짖으며 통성으로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에 대해 무슨 무당 굿하는 것 같은 논조를 가지고 비난하거나 또는 신사적이지 못한 천한 기독교의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면 간절한 기도가 드려질 수 밖에 없고, 간절한 기도를 드리다 보면 큰소리로 기도할 수 있고, 또는 슬퍼 콧물 눈물 범벅이 되어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를 바라보며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하는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향하여 믿음의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사람을 찾고 있다 여겨집니다.
기도에 이런 모습, 저런 모습, 무엇이 옳고 그름보다 더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헤아려 하나님 앞에 간절함으로 가까이 나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기도가 간절하게 드려지게 하소서.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6~10
찬송: 496장
하나님은 말씀이시고, 그 말씀은 우리의 삶에 능력으로 나타나고, 우리는 그 말씀의 증인들입니다.
내가 행한 일에는 반드시 그 열매가 있고, 우리는 이를 거두게 됩니다. 이 말씀이 우리의 가슴속 뼛속에도 깊이 새겨지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최고의 열매, 아름다운 열매, 극상품의 열매를 맺고 싶어 합니다. 내가 거두는 것도 좋지만 우리의 자녀들도 이를 거둘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극상품의 열매를 거두려면 심기 전에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밭의 상태가 어떠한가를 봐야 합니다. 옥토에 심어야 극상품을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마음의 밭이 충만한 은혜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우리의 입에서 말이 되어 나오는데 주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우리를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이 우리를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말을 뿌리고 심는 것이 또한 우리의 마음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일 것입니다. 용기를 주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말을 심읍시다.
아름다운 교회, 아름다운 가정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아름다운 마음, 아름다운 말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말을 심어 아름답고 멋진 교회, 아름답고 멋진 가정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아름다운 마음 밭에 사랑을 심어 극상품을 거두는 증거를 가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