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은 줄 알았는데, 그 노숙인의 모습이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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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은 줄 알았는데, 그 노숙인의 모습이 보이더군요”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4.08.28 1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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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강남노회장 두재영 목사(꿈을이루는교회·사랑실천공동체)

50대 예수님 만나 목회자로 부르심에 순종
퇴직 후 노숙인 사역, 이젠 노인 사역으로

서울지하철 역사에서 노숙인들을 내쫓던 50대 역장이 예수님을 만났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는 주님 말씀이 가슴팍에 날아들면서, 추운 어느 겨울날 한 노숙인의 모습이 스친다. 컵라면을 먹으며, 밥과 김치를 술에 말아먹고 있던 노숙인을 잘 타일러 역사 밖으로 내보냈던 기억,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두재영 목사는 부역장으로 근무하던 당시 일주일째 보이지 않던 노숙인 행방을 수소문한 끝에 동부시립병원에서 운명했음을 확인했다.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일이지만 두 목사는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돈다”며 마음의 빚을 고백한다. 이제는 목회자로 세워져 노숙인과 노인을 위한 돌봄 사역을 하고 있는 두 목사의 ‘다시 사명’을 들여다본다.

두재영 목사는 서울 지하철공사를 정년퇴직 후 본격적으로 노숙인들을 위한 사역을 펼쳐오고 있다.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따라 살겠다는 각오로 노인 사역에 대한 비전을 세워가고 있다.
두재영 목사는 서울 지하철공사를 정년퇴직 후 본격적으로 노숙인들을 위한 사역을 펼쳐오고 있다.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따라 살겠다는 각오로 노인 사역에 대한 비전을 세워가고 있다.

밑져야 본전이란 마음으로
전북 부안 두 씨 집성촌에서 태어나 유교적 문화에서 자란 두재영 목사에게 ‘예수님’, ‘교회’, 같은 단어는 가당찮은 것이었다. 공무원 아버지의 박봉에 어머니의 밭농사로는 5남매 양육은 빠듯했다. ‘아리랑 화가’로 잘 알려진 큰형 두시영 화백은 일찍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지만, 동생 두재영은 진로가 막연했다. 

“밑에 여동생 3명이나 있어 무작정 대학에 갈 수도 없어 어머니에게 받아든 만원만 들고 상경했습니다. 형님의 지하 월세방에 6개월만 머물기로 하고 아버지처럼 공무원이 되려고 공부를 시작했어요. 절박한 심정으로 밤낮없이 공부한 끝에 서울시 지하철본부에 합격했습니다. 경험 삼아 본 시험이라 형님이 확인해보라고 하지 않았다면 합격한 줄도 모르고 지나갈 뻔했었지요. 정말 기뻤습니다."

그렇게 지하철과 인연을 맺었고 33년을 근무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난 건 50대 초반에 들어서면서였다. 

실은 아내가 먼저 아이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걸 일찍부터 알았지만, 굳이 반대할 필요는 없었다. 자신과 교회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여기던 차 아내가 다니던 교회에 나간 계기가 생겼다. 거금을 들여 비디오카메라를 구입해 촬영하는 취미가 있었는데, 목사님이 성탄절 칸타타 촬영을 부탁한 것이었다. 촬영이 필요하면 연중행사로 교회에 가곤 했다.

“결정적인 건 2000년도였을 거에요. 알코올 중독이던 사촌 형이 술병에 든 빙초산을 마시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교회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들었던 천국과 지옥 간증이 떠올랐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한 겁니다.”

작은 교회면 할 일이 있겠다 싶어 아내가 운영하던 미용실 건물에 있는 교회로 나갔다. 1987년 세례를 받은 적이 있었다고 하니, 직분도 주어지면서 믿음은 커갔다. 

“교회에 나가고 2~3년이 지나니 성경 말씀이 너무도 달콤했습니다. 성경에 대해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이야기에 우리 목사님이 백석에서 신학공부를 해보라고 추천해주셨어요. 그냥 성경공부를 하는 줄 알고 입학했는데, 지금은 안수받고 목사까지 되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노숙인 위해
백석에서 뒤늦게 신학을 공부하면서 말씀은 더 깊이 다가왔고, 자연스럽게 지하철에 있는 노숙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날 노숙인 한 사람을 가만히 보는데, 그때 죽은 노숙인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잊은 줄 알았는데, 소자였던 그 노숙인을 생각하게 되면서 예전처럼 쫓아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나눠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역장이 된 두재영 목사는 저녁마다 사복 차림으로 야간 점검을 나와 역사 내 노숙인들에게 빵과 음료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낮에는 제복을 입고 있어 몰라봤던 역장을 노숙인들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누군가 민원을 넣으면 직장에서 잘린다고 단속해 가면서 노숙인들과 교감을 이루어갔다. 지하철공사 신우회에서 돕겠다고 나섰지만 혼자서도 할 만해서 처음엔 고사했다. 그러다 두 목사와 가까운 지하철 직원, 신대원 동기, 학교 동문이 ‘사랑실천노숙인센터’에 참여하면서 사역은 발전하게 됐다. 

“처음에 신학공부 할 때는 목사가 되는지도 몰랐는데, 다른 동료들은 개척한다고 할 때 저는 노숙인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주변에서 ‘역장님은 목사님이 되면 어쩔 수 없이 노숙인을 돕는 사역을 할 것’이라고 알려져 있었어요.”

그는 2012년 정년퇴직했다. 그보다 앞서 자회사에 근무하며 2009년 목사안수를 받았고 노숙인 센터를 만들어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했다.

다시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지하철공사 재직 때부터 노숙인 사역자들을 지원해온 두재영 목사에게는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서울역 주변 사역 단체들이 우후죽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체계가 필요했다. 

“신대원 시절 노숙인 사역을 잘하는 분을 찾던 중 기독교연합신문 1면에서 김원일 목사님 기사를 봤습니다. 이후 김 목사님을 찾아가 멘토로 삼고 많이 배웠습니다. 서울역 직원들과 연결해주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노숙인 사역이 되도록 곁에서 도와드리기도 했습니다.”

두재영 목사가 노숙인 사역에 뛰어들기 시작하던 2009년 서울역광장 주변에는 14개 기독교 단체들이 노숙인 무료급식 등 활동을 하고 있었다. 두 목사는 사역단체 목회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 “각자도생하지 말자”는 제안을 내놓으며, 서울시 재정을 활용한 공동 사역 가능성을 제시했다. 

한번은 서울시청역장으로 근무하던 중 평소 품에 지니고 다니던 사혈침으로 응급환자를 살려낸 적이 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서울시청 한 공무원이 애로사항이 있으면 찾아오라며 명함을 주고 갔다. 신앙을 가진 서울시장 비서실장이었다. 두 목사는 서울역 노숙인 사역이 어수선한 상황을 보고 직접 찾아가 서울시 차원의 정책을 묻던 중 노숙인들을 위해 묵혀 있는 예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두재영 목사는 단체들과 뜻을 모아 당시 ‘서울역노숙인선교연합회’을 결성했고, 서울시 예산 20억원을 배정받아 서울역 바로 인근에 무료급식소 문을 열었다. 지금도 수많은 사역단체들이 연대해 매 끼니 무료 급식을 진행하고 있는 ‘따스한채움터’가 그곳이다. 광장에서 음식을 나누어주지 않아도 되고, 정기 급식이 진행되니 노숙인들은 폭식하지 않게 되고 과거보다 다툼도 크게 줄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부터 두재영 목사를 지하철 역사에서 근무하게 하셔서 경험을 쌓게 하시고, 노숙인들을 향한 돌봄을 준비하게 하신 듯하다. 

두재영 목사는 뒤늦게 신앙생활을 하다 목회자가 되어서 노숙인들을 위한 사명을 발견했다. 이제 목회 정년 2년 반 정도 남은 두 목사는 다시 한번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찾아내 가능성을 다른 목회자들에게도 도전하고 있다. 바로 ‘노인 사역’이다. 

2017년 대한노인회 기독신우회 발족을 도운 것을 계기로, 노인 목회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인천 검단과 경기 일산에 노인요양원을 개원하고 그곳에서 노인들이 마음껏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목회하고 있다. 

두재영 목사는 “천만 노인시대에 공백처럼 남아 있는 어르신들을 위한 사역은 새로운 가능성이다. 우리 총회의 정체성 개혁주의생명신학의 나눔운동의 가치에 따라 노인시설을 선교 전진기지로 삼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다른 목회자들을 향해서도 동기를 부여 하고 있다. 

두재영 목사는 목회 정년을 마친 이후에도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노숙인과 노인들을 위한 섬김은 계속 감당하겠다는 각오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지하철 역장이 되게 하시고, 백석에 신학공부를 하게 하신 이유이니까요. 내 머리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때마다 주시는 지혜로 걸어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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