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넷째 주 하늘 문을 여는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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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넷째 주 하늘 문을 여는 가정예배
  • 운영자
  • 승인 2024.08.23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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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기 목사/해뜨는교회
김창기 목사/해뜨는교회

예수님을 따르는 삶

마태복음 16:24~25
찬송: 323장

사람의 일의 영광을 생각하고 있었던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는 것은 자기 사역에 대한 영광을 포기하고 오히려 수치와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선지서를 보면 하나님 앞에 쓰임 받았던 참 선지자들은 하나같이 고난과 순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처럼 교회에서의 온갖 봉사와 섬김에 대한 영광을 이 땅에서 보고 누리기를 원합니다.
헬라어 ‘마르튀스’는 ‘증인’, ‘순교자’란 의미인데, 이 단어는 당시에 물에 돌을 던졌을 때 그것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파장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증인된다’, ‘순교한다’는 것은 살아서 내가 그 결과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후에 그 파장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전에 자기 사역의 결과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이 세상에서는 자기의 헌신이 부정당하는 모습입니다.
그러고 보면 교회에 시험이 올 때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 복이 될 수가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음을 통하여 혹시 내가 영광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나 돌아보는 하루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시험도 우리 삶에 복이 됨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 하루도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게 하소서!

 

박현욱 목사/창대교회
박현욱 목사/창대교회

예수님의 중보기도

누가복음 22:39~46
찬송: 303장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 제목을 주십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 유혹과 시험은 같은 의미입니다. 시험은 사탄이 부리는 술수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가 누리는 행복, 감사를 잃어버리도록 만듭니다. 한 마디로 함정입니다. 예수님은 시험이 올 것을 제자들에게 미리 말씀합니다. 사탄의 시험을 이길 방법도 알려 줍니다. 기도입니다. 그래서 깨어 기도할 것을 기도 제목으로 베드로에게 줍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깨어 기도하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영적 안전불감증입니다. 예수님이 이런 베드로의 모습을 안타까워합니다.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막 14:37) 이 일이 있고 얼마 후 베드로는 시험에 듭니다. 예수님을 3번 부인합니다. 성경은 베드로가 맹세하고 저주하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다고 기록합니다. 베드로는 처절히 무너집니다.
그런데 처절히 무너졌던 베드로가 회복합니다. 회복 정도가 아니라 위대한 사도가 됩니다. 그 이유를 성경은 예수님의 중보기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시몬아, 사탄이 너희를 밀까부르듯 하겠다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네 믿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였다”(눅 22:31~32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의 중보기도가 베드로에게 아름답게 열매 맺는 것처럼 우리의 중보기도도 반드시 열매 맺을 줄 믿습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중보기도가 아름답게 열매 맺게 하옵소서.

 

황빈 목사/강성교회
황빈 목사/강성교회

셀라 하마느곳(피할 바위)

사무엘상 24:1
찬송: 391장

사무엘상 23장은 사울과 다윗 사이에 펼쳐진 추격전을 묘사합니다. 다윗은 거의 잡힐 뻔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 침략 소식을 보고받은 사울이 급히 그 자리를 떠나면서 추격전은 중단되었습니다. 그곳의 이름은 ‘셀라 하마느곳’이 되었습니다(23:28). 분리하는 바위. 또는 피할 바위라는 뜻입니다. 다윗을 사울이라는 위험으로부터 분리시켜주는 바위. 다윗이 달려가 몸을 숨길 수 있는 피할 바위입니다.
급히 사울의 발길을 돌리게 만든 갑작스러운 블레셋의 침공. 우연이었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난 일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본문 1절에 따르면 사실 그날의 블레셋 침공은 그리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소소한 대치 상황은 있었는지 몰라도 어떤 대단한 전투가 펼쳐진 것 같지 않습니다. 말그대로 사울은 그저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왔던” 것입니다.
이날의 사건은 거의 잡힐 뻔했던 다윗을 사울의 손아귀에서 놓여 달아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은 ‘셀라 하마느곳’ (피할 바위) 되셔서 위태한 가운데 놓인 다윗을 그리고 우리를 그 모든 위험으로부터 분리 보호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보호하시며 피할 바위가 되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금까지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로 보호해 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주님을 의지합니다. 지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신성훈 목사/신일교회
신성훈 목사/신일교회

열 두 돌의 언약, 길갈

여호수아 4:19~24
찬송: 331장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첫발을 들여놓습니다.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는 동안 여호수아는 요단 가운데 서 있는 제사장들의 발밑에서 돌 한 개씩을 취하게 하여 그날 백성들이 유숙할 곳으로 가져가게 했습니다. 이 돌들은 나중 길갈에 기념석으로 세웠고, 다시 세운 돌 열둘은 요단 가운데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기념석으로 세웠습니다. 길갈의 열두 돌은 하나님의 언약에 관해 중요한 교훈을 상기하게 해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하나님은 영원불변하셔서 동일하시므로 그 언약도, 능력도 동일합니다.
어제의 일을 기억하는 것은 오늘과 내일을 위해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 하신 곳은 새 일을 행하신다는 전제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중요한 섭리와 그 언약적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길갈의 돌들이 주는 또 하나의 언약적 교훈으로 하나님의 손의 강하심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이전 위기의 때에 도우시던 하나님의 손의 능력이 지금도 여전히 강력하심을 온전히 신뢰하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언약을 주시는 하나님은 강한 손을 가지신 하나님, 항상 오직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경외해야 할 주이십니다. 하나님을 떠나거나 배반하여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가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와 가정과 교회를 하나님께 부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지혜와 평강을 누리게 하소서.

 

김영수 목사/소풍교회
김영수 목사/소풍교회

기도의 응답이다!

사무엘상 24:1~7
찬송: 400장

종종 본문의 장면을 묵상하며 ‘내가 다윗의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칼을 들어 사울을 베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원수를 내 손에 넘겨주신다고 말씀하신 바가 있고, 사울만 없으면 너무 좋은 것이 사실이고, 또한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으니 자신이 왕이 되어 평안을 누릴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기도의 응답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다윗은 사울의 옷깃을 베는 것조차 마음에 찔려하며 행하였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생명을 해치지 않은 이유는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세우셨고, 하나님이 그를 폐위 시킬 때까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고난에 순종한 것입니다.
다윗을 통해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묵상해 봅니다. 우리가 헤아려 보아야 할 것이 나의 좋음, 나의 유익, 나의 만족을 위한 기도의 응답이라면 다시 헤아려 하나님이 좋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기도의 응답을 기다려야 합니다. 조금 더 어렵고 힘든 고난의 삶을 살게 되더라도, 응답된 일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헤아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의 삶이 되길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내가 원하는 응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응답을 붙잡게 하소서.

 

피은혜 목사/새창원은혜교회
피은혜 목사/새창원은혜교회

‘믿음의 증거’

스가랴 10:1
찬송: 546장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먼저 “때를 분별하라”입니다. 1절에 “봄비가 올 때에” 이렇게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비는 축복의 상징입니다. ‘봄비의 때’란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의 때, 하늘 문을 여시고 은혜를 부으시는 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때를 잘 분별하고 잡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볼 것은 구름을 일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비가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름이 있어야 합니다. 이 구름을 만드시는 이도 다름 아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일의 주권을 가지십니다. 나에게 은혜의 비를 주시려고, 구름을 먼저 일으켜 주시는 하나님을 철저히 깨닫고 인정해야 합니다. 저 구름이 구름으로 머물지 않고, 나에게 은혜의 비가 되기를, 주권자 되신 하나님께 구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부요하신 분이란 것입니다. 구름을 만드시는 하나님께 비를 구하면 가랑비가 아니라 소낙비를 주시는 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어, 나만이 아니라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까지 축복이 흘러가게 하십니다. “각 사람에게 채소를 주시리라”
이 말씀을 붙들고 밤마다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제 믿음에 대한 증거들을 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제게 주신 은혜가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믿음의 증거를 가지는 가정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삶의 소낙비의 증거를 가지는 은혜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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