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일 2부 예배 때엔 S장로가 대표기도를 했다. 교우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내용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기에 참 은혜로웠다. 기도에 은혜를 받게 되면 하나님께로 향한 마음 문이 활짝 열리고 설교 말씀이 마음 밭에 잘 심겨진다. 그는 영문학을 전공한 교수로 나와 띠 동갑인데도 형제같이 지낸다. 너그러운 마음에 이해심이 깊으며 유머가 풍부하여 평소 그와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나눈다.
예배가 끝나고 그와 같이 식사하러 가는 길에 오늘 그의 기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국어 선생의 끼를 발동하여 아래와 같이 몇 가지 지적을 했다.
설교하시는 목사님에 대한 기도는 기도의 끝부분쯤에 하면 좋겠다는 것, ‘우리나라에 대한 기도를 드립니다’라는 말을 굳이 하지 말고 바로 나라에 대한 기도를 드리면 어떨까 하는 것, 맨 끝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는 ‘기도드립니다’로 하기 등이다. 그가 다른 것은 쉽게 수긍을 했는데, 맨 끝의 것은 의문을 표시했다.
‘기도드렸습니다’라는 말의 문제점은 이렇다. 논리적으로 볼 때 기도를 끝내는 시점에서 1초라도 이전에 발설된 말은 모두 과거형이 되기는 하지만 기도는 예배 중에 하는 것이며, 예배는 시작하여 마치는 순간까지 모두 현존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인간의 현재적 행위이다. 그러므로 과거형 어미를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기도드립니다’ 같은 현재형 어미를 쓰는 게 적절하다. 영어에서도 현재 시제로 ‘In Jesus’name we pray'라고 표현한다.
그밖에 우리 교회 몇 분의 장로님들 기도를 떠올리며 기도할 때 유의할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표기도란 한 명이 회중을 대표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다. 따라서 기도 하는 분은 회중 모두가 기도의 주체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기도의 성격과 내용이 개인에 관계된 기도 내용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 기도는 시작, 찬양, 자백, 감사, 간구, 마침의 일반적인 형식을 갖추면 좋을 것이다.
‘할렐루야’로 기도를 시작하는 분도 있다. ‘할렐루야’는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사람끼리 권유할 때 쓰는 말이기 때문에 이 말로 기도를 시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기도하기 전에 성경 구절을 읽거나 외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그 성구는 대개 교훈적인 내용이 많은데, 그것을 빌어서 회중을 교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인데 그분 앞에서 그분(하나님) 말씀을 들려드릴 필요가 없지 않은가. 대표기도시간에 드려지는 사죄의 기도는 빼야 한다. 이것은 예배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주일 1~2부 예배의 경우, 이미 예배 인도자가 참회의 고백과 사죄의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는 기도 마무리 단계에서 “지금은 예배를 시작하는 시간이오니”라고 말하곤 한다. 이미 묵도에서 시작하여 예배가 진행된 지 한참 지났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앞에 진행한 찬양, 참회기도, 신앙 고백, 교독문 낭독 등은 예배 순서가 아닌가? 그래서 이 말도 부적절한 표현이다.
기도문은 미리 작성해서 기도시간에 읽는 것이 좋다.
즉흥적 기도는 중언부언할 위험이 있다. 기도문에 미사여구나 지나친 문학적인 수식어를 쓰지 않은 게 좋다. 기도 시간도 문제다. 중언부언하며 길게 하면 자장가가 될 수도 있다. 부산의 S목사님은 장로가 대표 기도를 할 때 3분을 넘기면 그 다음부터는 기도를 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교회 주보의 ‘예배위원 안내’란에 다음 주 기도자로 내 이름이 오르면 우리 어머니는 ‘아들이 기도를 잘할 수 있게 해 주십사’하고 한 주 내내 기도하시고, 당일 예배 시간엔 상당히 긴장된다고 하셨다. 기도하는 나보다도 더 긴장된 한 주간을 보내신다. 나는 수요일까지 다음 주 기도문을 완성하고 아침저녁으로 읽어보며 수정을 거듭하고 띄어 읽기까지 표시를 해 둔다. 그리고나서도 막상 단상에 오르면 긴장된 채 읽는다.
기도! 부담감 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날이 오긴 오겠지.
천안 백석대학교회 원로장로
전 백석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