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목회자와 신학생 사이에 ‘뭘 해도 안 된다. 안 해 본 것이 없는데 되는 게 없다.’는 말이 유행한다. 좌절과 패배의식이 급성/만성 전염병처럼 번져 있는 느낌이다. ‘안 된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공감하고 자기를 정당화한다. 해마다 4월 마지막 주간 2박 3일 시행하는 생명사역컨퍼런스에 참석하는 목회자들도 거의 다 이런 문제를 안고 있다.
개혁주의생명사역을 하고자 할 때 가장 큰 문제가 태도인 것 같다. ‘아, 역시 태도야, 태도! 태도가 가장 중요한 거야! 참가자들의 태도를 어떻게 고쳐 줄까?’ 이것이 보통 과제가 아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NIV는 이렇게 되어 있다. “너희의 태도가 그리스도 예수의 것과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 (Your attitude should be the same as that of Christ Jesus).
지그 지글러(Zig Ziglar)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기유발 강사는 “당신의 능력(aptitude)이 아니라, 당신의 태도(attitude)가 당신의 고도(altitude)를 결정한다”고 했다.
태도는 마음의 표현이다.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표정이나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난다. ‘말투’라는 것이 있는데 말을 통해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태도는 표정이나 말이나 행동의 ‘투’라고 보면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태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말 표정 행동으로 표현된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동등 됨을 거머쥐지 않으시고 풀어 주셨다. 자신을 다 비워 다 내어 주셨다. 예수께서 하나님으로서 ‘주님’이지만 ‘인간’으로, 인간 중에 ‘종’으로, 종보다 더 낮은 ‘십자형 죄수’로 자신을 다 낮추셨다. 성자 하나님께서 다 비우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더 이상 높을 수 없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더 이상 낮을 수 없는 자리까지 내려가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더 이상 높을 수 없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높이셨다.
비행기가 코를 위로 들면 창공으로 올라가지만, 코를 아래로 내리면 바닥으로 추락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태도를 끌어올리면 믿음의 창공을 날아가지만,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 태도를 끌어내리면 세상의 시궁창으로 떨어진다.
태도(attitude)는 진짜 모습 ‘앞에 서 있는 사람’이다. 진짜 모습인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태도는 보인다. 태도는 말보다 더 정직하고 말보다 더 일관성이 있다. 태도는 최선의 친구도 되지만 최악의 적도 될 수 있다. 태도는 사람들을 끌기도 하지만, 사람들을 몰아내기도 한다. 태도는 과거의 기록이고, 현재의 대변인이고, 미래의 예언자이다 (존 맥스웰).
태도에는 ABC가 들어 있다. A는 정서적 요소(Affective component)이다. 가령 ‘나는 거미들이 무섭다’는 것이다. B는 행동적 요소(Behavioral component)이다. 가령 ‘나는 거미를 보면 피하면서 소리친다’는 것이다. C는 인지적 요소(Cognitive component)이다. 가령 ‘나는 거미는 위험하다고 믿는다’는 사고방식이다. 생각이 감정으로, 감정이 행동으로 나타난다.
태도는 실력이나 경험이나 성장을 대치할 수 없지만, 당장 생활방식과 대인관계와 문제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가령 늘 그늘진 태도를 밝게 하면 당장 대인관계가 달라진다. 걱정과 근심이 가득한 눈빛과 표정으로 교인들을 대하면 교인들은 그런 목회자에게 지도받는 것을 싫어한다. 자신도 고민이 많은데 목회자의 고민까지 전염 받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개혁주의생사역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나는 못해. 요즈음 되는 게 없어. 좋은 프로그램을 다 해 봐도 안 되더라.’ 이런 것인가? 태도는 프로그램이나 기교가 아니다. 마음을 고치기 위한 사전작업이다. 태도를 고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면 목회고도가 올라간다. 태도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올리면 인생고도가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