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순서 중 하나인 기도는 매우 중요하다. 기독교의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간구하는 일이기에 더욱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사실 기도는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개혁주의 기독교에서는 대표적인 기도문은 ‘주기도문’으로 표준 된 기도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는 기도를 받는 절대자 또는 초월자에 대한 존재론적 정직성을 기도 행위의 조건으로 해야지 사색이나 한 국가의 전통 예법에 지배되지 않아야 바른 기도를 하게 되며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는 기도가 될 것이다.
물론 타 종교에서도 기도를 한다. 무속 신앙에서는 무당을 통하여 치성(致誠)드리는 행위가 그러한 기도 중 하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한국의 기독교에서 기도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 무속 신앙의 기도처럼 치성을 드리는 모습이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기도가 정형화된 것은 유교적인 관습과 미신, 점 보는 일 등 여러 삶의 궤적에서 함께 했던 전통적인 모습이 그대로 노출된 까닭인 것도 같다.
잘못된 기도의 면면을 일일이 기록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부터라도 기도의 표준을 각 교단별로 연구해서 기독교 단체에서 모든 성도가 각 교회를 통해 교육이 되었으면 좋겠다.
『교회에서 쓰는 말 바로잡기』(이복규 지음, 새물결플러스) 58쪽에 보면 8장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사람을 높이는 말 쓰기’에서 저자는 “우리말 어법에서는 듣는 사람이 최상위자일 경우 다른 어떤 인물에게도 존대어를 쓰지 않는다. 이른바 압존법이 있기 때문에 더 높은 분 앞에서는 낮추어 표현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점을 짚고 넘어갔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대표 기도자가 기도할 때 설교자나 담임목사를 위한 기도를 하게 될 때 기도자의 나이가 적든 많든 꼭 ‘님’자를 붙이는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시골에서 부모를 모시고 사는 둘째 아들이 외지에서 생활하는 형이 돌아왔을 때 방에 계시는 아버지를 향하여 ‘아버지 큰형님이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옳지 않은 것이다.
이 원리를 적용해 보면 우리가 예배든 어떤 모임이든지 간에 우리 기도를 듣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최상위자이시므로 다른 어떤 사람도 높일 수 없는 것이다. 교회에서도 교육 시켜봤지만 잘 지켜지지 않아서 지면을 통해서 읽는 이들이 한 번쯤 이 문제를 생각하면서 바른 용어로 기도하길 기대해본다.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사용해 왔기 때문에 목사로 기도를 요청해 오면 기도하다가 습관적으로 나이 드신 장로님이나 권사님을 위해서 기도할 때 ‘님’ 자를 자연스럽게 붙이는 것을 경험하고 고치기가 쉽지 않구나 생각을 하면서 기도용어뿐 아니라 다른 쪽에서도 고쳐야 할 곳이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얼마 전 충북노회에서 교역자 모임에서 앞서 말했던 책 『교회에서 쓰는 말 바로잡기』를 선물로 주면서 교육을 받았는데, 그 후에 본인도 의도적으로 고치려고 노력하니 지금은 비교적 실수하지 않고 하나님께 바르게 기도용어를 선택하려 노력하게 됨을 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잠언 3장 3~4절 말씀처럼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하심 같이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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