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청소년 44.5% 가정폭력 경험, 가출은 72.1%에 육박
일반 청소년 3배에 달하는 자살 시도율…정서불안 심각
학교 밖으로 혹은 가정 밖으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몰린 청소년들이 있다. 때로는 가정폭력을 피해서, 때로는 언어폭력이나 과도한 입시부담을 피해서 차가운 길거리로 도망쳐 나온다. 많은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날라리’, ‘양아치’ 등으로 그들을 향해 따가운 시선을 보내지만, 그들도 역시 귀중한 우리의 다음세대다.
2022년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위기 상황에 놓인 아이들은 아동·청소년(0세에서 24세) 1,201만 3,082명 중 9.6%, 114만 9,835명이다. 거의 경기도 수원시 인구에 맞먹는 청소년들이 현재 위기 상황에 빠져있는 것이다.
위기청소년은 누구인가
우리가 쉽게 ‘위기청소년’이라 부르는 그들에 대해 정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그 정확한 의미와 범위를 설정하지 못했다.
청소년복지 지원법에서 이야기하는 ‘위기청소년’은 ‘가정 문제가 있거나 학업 수행 또는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등 조화롭고 건강한 성장과 생활에 필요한 여건을 갖추지 못한 청소년’을 말한다.
실제 현장에서는 어떻게 정의할까. ‘일진캠프’를 개최해 위기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위키코리아 대표 임귀복 목사는 위기청소년에 대해 “생계를 책임질 힘이 없는 청소년이 집을 나온 상태”라고 정의했다.
또한, 조이코리아선교회 이사이자 『청소년, 기도많이 걱정조금』의 저자인 정석원 목사는 “한 명의 성인으로 독립하고 자립하기 위한 성장 여정 중 길을 잃은 청소년들”이라며 “즉 ‘제도권에서 벗어나 방황하고 있는 아이들’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종합해 보자면, 보호가 필요한 청소년이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정이나 학교 등 제도권 밖으로 내몰린 상태라고 정리할 수 있다.
자녀를 밖으로 내모는 가정
우리 사회의 미래가 되어야 할 청소년들이 위기 상태로 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가부의 조사와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그 이유를 ‘가정’이라고 지적한다.
여가부의 조사에 따르면 위기청소년의 44.4%가 가정에서 신체적 폭력을 당했으며, 언어폭력을 경험한 비율도 46.0%나 된다. 가출 위기청소년의 69.5%가 ‘가족 간의 갈등’으로 가출했다고 응답했으며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44.3%)’, ‘가정폭력(28%)’이 그 뒤를 이었다. 특히, 조사 대상 중 청소년쉼터 및 청소년자립지원관 등을 이용한 청소년들은 신체 폭력 72.1%, 언어폭력 72.9%의 피해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청소년 보호시설을 이용한 아이들은 부모와의 관계에 대한 긍정 응답률이 40~50%로 낮게 나타났으며 부모 혹은 보호자로부터의 방임·방치 경험도 가장 높게 나타났다. 가정이 아이들의 쉼터가 되어주지 못한 것이다.
정석원 목사 역시 위기청소년들에게는 집이 진정한 의미의 ‘집’이 아니라고 꼬집었다.
“가정의 불화가 아이들을 위기에 빠뜨립니다. 높은 이혼율, 저출산 문제 등으로 달라져 가는 가정의 형태 때문에 아이들이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상승하기 시작하면서 집에서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해 위기 상태에 빠진 아이들이 굉장히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원인이 가정불화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는 부모의 과잉보호나 과도한 기대 때문에 아이들이 엇나가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기대하고 압력을 주다 보면 못 버티는 아이들은 결국엔 탈선의 길에 오르게 됩니다.”
임귀복 목사 역시 늘어난 한부모 가정과 가정에서의 위기가 위기청소년을 양산한다고 전했으며 △빈곤가정 △학교생활 부적응 △학교폭력 가·피해자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등도 위기청소년 발생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청소년들을 향한 유혹
보호 없이 내몰린 위기청소년들에겐 다양한 유혹이 따른다. 위기청소년들은 △범죄행위 △폭력 △약물 △성매매 △자해·자살시도 △성·게임 등 중독 △불법 도박 △술이나 담배 등의 유혹에 노출돼 있으며 쉽게 굴복한다. 특히나 가정에서도, 가정 밖에서도 마음 둘 곳이 없는 아이들은 심리적·정서적 위험에 직면한다. 암울한 현실은 이들의 정신을 파괴한다. 위기청소년 중 자해 시도자는 18.7%, 자살 시도자는 10%에 육박했다. 자살 시도의 경우 일반 청소년의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정석원 목사는 위기청소년들이 자신을 망가뜨릴 수 있는 유혹들에 쉽게 넘어가는 것은 막막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도피하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비롯한다고 설명한다.
“가정이 쉴 곳이 못 되어 주는 현실이 아이들을 위기로 내몹니다. 가정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과 케어를 받지 못하다 보니 공허함을 느끼고 정서에 균열이 갑니다. 공허함을 채우려다 보니 이성에 집착하거나 도박이나 약물 등 쾌락에 빠져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성·술·담배·도박·게임 같은 쾌락은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공허가 극단에 다다르면 자살이나 자해까지 선택지 안에 포함돼 버립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가정에서 버림받고 사회로부터 배척받는 아이들은 결국 자신들끼리 뭉친다. 조사 결과 위기청소년들의 3분의 1인 32.6%는 가출을 선택했다. 이들은 ‘친구나 선·후배 집(62%)’에 머물거나 심지어 ‘건물이나 길거리 노숙(29.8%)’을 하는 등 위험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곳으로 향한다.
안전하지 못한 집에서 낙원을 찾아 떠난 그곳에서 위기청소년들은 또 다른 좌절을 맛본다. 15.9%가 친구나 선후배에게 폭행당했으며, 여성 청소년의 경우 6.9%가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
이뿐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도 이들을 맞이한다. 가정 밖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으로 ‘생활비 부족(54.0%)’과 ‘갈 곳·쉴 곳이 없음(42.4%)’, ‘우울·불안(33.3%)’이란 결과가 나왔다. 이 때문에 범죄에 가담하기도 한다. 특히 SNS의 발달로 온라인 범죄에 가담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매매나 사기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임귀복 목사는 위기청소년들이 겪는 문제 해결을 위해 먼저 우리 사회와 교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위기청소년들은 가해자로 몰리지만, 사실은 그들도 피해자입니다. 1차적으로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았고, 여러 이유로 인해 학교나 가정 밖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하다못해 반려동물들도 사랑받지 못하면 사나워집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오죽하겠습니까? 위기청소년들이 겪는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사회로부터 범죄자 내지는 예비 범죄자로 낙인이 찍혀버립니다. 정서적으로 완벽하게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이런 상황은 어려움으로 다가옵니다. 물론 범죄행위에 가담하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아이들도 있지만, 위기청소년 문제의 본질은 사랑받을 기회와 신뢰받을 기회를 잃은 아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사회도 노력을 해야 하지만, 교회가 먼저 사랑하고 포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책무를 다할 때 아이들은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