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권력·쾌락’ 따르는 세상에서 ‘소망의 이유’를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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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권력·쾌락’ 따르는 세상에서 ‘소망의 이유’를 외치다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4.06.05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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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잔 ‘대위임령 현황 보고서’ 해설 (2) 소망의 근원은 무엇인가

10년이면 강산이 달라진다. 100년이면 그야말로 천지개벽이다. 기술의 발전과 인식의 변화, 문화의 확장은 정치·경제 전반은 물론 우리의 일상까지도 뒤바꿔놨다. 교회와 선교도 예외는 아니다. 약 2천년 전 로마가 닦아놓은 길을 따라 전해졌던 복음은 마차와 범선, 기차와 비행기에 몸을 싣더니 이제는 전 세계에 연결된 인터넷망을 타고 단 몇초만에 전달된다.

달라진 세상에서 교회의 모습과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 2천년 전과 같을 수는 없다. 국제 로잔운동은 오는 9월 한국에서 열리는 제4차 로잔대회를 앞두고 오늘날 세계 기독교의 현실과 그에 맞는 선교 전략을 고민한 ‘대위임령 현황 보고서(The State of the Great Commission Report)’를 발표했다. 전 세계 최고의 선교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작성한 보고서는 10가지 질문을 통해 교회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그에 맞춘 대안을 제시한다. 본지는 이번 호부터 10회에 걸쳐 로잔운동이 고민한 10가지 질문의 포장을 풀어 소개한다. <편집자 주>

누구나 밝은 미래를 원한다. 지독한 비관론자조차도 가슴 한구석에서는 희망을 꿈꾼다. 아니 오히려 누구보다 간절히 희망을 바랐기에 실망감에 지쳐 ‘이따위 세상은 망해버려라’고 되뇌고 있는지도 모른다.

복음은 온 인류를 위한 유일한 희망의 메시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사람이 이 진리를 기꺼이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대신 사람들은 복음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기 나름의 희망을 갈구한다. 이를테면 돈과 스포츠, 영화, 인간관계와 같은 것들이다. 이곳에 소망이 있다고 외치는 다른 종교, 내 한 몸 편하고 즐거운 것이 곧 소망이라는 세속적인 야망과 쾌락도 기독교의 자리를 위협한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유일한 소망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것인가. 인류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계승되어 내려오는 질문, ‘소망의 근원은 무엇인가’(What is the Source of Hope?)를 묻는 물음에 답할 의무가 그리스도인에게는 있다. 로잔운동은 오늘날 팽배한 ‘급진적 정치’와 ‘세속주의’, 그리고 다른 종교들 사이에서 우리가 믿는 소망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지 찾는다.

 

자극적 관심사에 밀린 ‘종교’

세계인의 관심사를 엿보고 싶다면 ‘구글 트렌드’를 들여다보면 된다. 지난해인 2023년 구글 트렌드를 기반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검색한 키워드를 조사한 결과, 1위를 차지한 항목은 다름 아닌 ‘포르노’로 나타났다. 2000년대 초까지는 1위 자리를 지켰던 ‘영화’ 항목은 근소한 차이로 2위를 기록했고 ‘축구’ 항목은 월드컵 등 대규모 대회가 개최되는 해마다 관심이 치솟으며 널뛰었다. ‘예수님’이나 ‘기독교’에 대한 관심은 ‘돈’의 인기에도 미치지 못하고 바닥을 기었다. 다른 종교와 비교해도 이슬람에 1위 자리를 내주고 2위로 밀려난 모습을 보였다.

돈과 성, 스포츠와 같은 자극적인 키워드와의 비교는 다소 억울하다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번엔 180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출판물의 주요 관심사를 비교해봤다. 1800년 당시 압도적인 차이로 1위를 차지했던 ‘종교’라는 주제는 2000년대에 이르러 5위로 밀려났다. 빈자리는 ‘과학’과 ‘음악’, ‘기술’과 ‘정치’가 채웠다. 1위를 차지한 항목이 ‘종교’에서 ‘과학’으로 바뀌었다는 점은 ‘종교의 시대’가 저물고 ‘세속주의’가 대두됐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지표다.

그래도 종교라는 범주 안에서라면 선방하는 모양새다. 1900년대에 세계 종교의 34.5%를 차지했던 기독교는 2020년대 들어 32.2%로 근소하게 감소했다. 의외로 2050년을 바라보는 전망은 밝다. 아프리카 등 비서구권에서 기독교가 가파르게 성장함에 따라 34.3% 선을 회복하리라는 분석이다. 같은 기간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인 것은 이슬람으로 1900년대 12.4%에서 2020년대 24.2%로 성장했다.

 

2004년부터 2023년까지 구글 트렌드 분석. 인간적 쾌락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예수님’과 ‘기독교’는 뒷전으로 밀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소망의 근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2004년부터 2023년까지 구글 트렌드 분석. 인간적 쾌락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예수님’과 ‘기독교’는 뒷전으로 밀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소망의 근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대두되는 ‘급진적 정치’

90년대 초 소련의 붕괴를 바라본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을 선언했다. 지난했던 이데올로기 경쟁은 종식됐고 모두 함께 경제 성장에 대한 방법만을 고민할 것이란 희망찬 전망이었다. 하지만 낙관론은 보기 좋게 무너졌다. 우리는 여전히 민족과 종교, 돈과 권력, 전통과 혁신이 격렬하게 부딪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이를 배경으로 한 ‘급진적 정치 이념’이 위세를 떨치는 것을 목격한다.

급진적 정치는 주로 전통 정치 제도에 대한 반작용에서 기인한다. 기존의 성장 지향적인 경제 구조가 국민들을 착취하고 있다는 발상이다. 비단 경제 구조뿐만 아니라 낡은 관행과 폭력, 가부장제 등의 문화에도 맞선다.

이쯤에서 급진적 정치와 기독교, 특히 선교가 무슨 관련이 있느냐 궁금할 수 있다. 그에 대한 답은 ‘교회는 세상 속에 존재한다’는 문장으로 정리된다.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 파송 받은 이상 정치적 참여와 사회 정의 추구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 기독교 가치관이 급진적 정치의 타도 대상으로 지목되기도 하고 때로는 인권운동과 같은 급진 정치 이념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도 정치와 종교는 무관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로잔운동은 예수님의 대위임령이 개인뿐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제자화도 명하고 있음을 주목한다. ‘국가를 제자화한다는 것’은 사회의 구조와 제도에 그리스도인이 참여하고 구성원들이 그리스도께로 돌이키게 한다는 의미다. 다만 ‘기독교 민족주의’를 주창하자는 것과는 궤를 달리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 시대를 분별하고 사회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공동체를 이루어 가야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국가의 제자화에 있어 미디어의 중요성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대 사회에서 ‘집단 무의식’, 즉 사회 저변의 문화와 인식을 형성하는 데 있어 미디어와 시장은 교회는 물론 교육기관까지도 대체한다. 교회는 진리를 외치는 미디어로서 시대에 맞는 콘텐츠를 생산하고 사회와 소통할 필요가 있다.

 

세속주의 사회에서 선교하기

전 세계, 특히 서구 사회에서 급격히 확산되는 세속주의는 선교의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다. 이번 주제에 대입해보자면 세속주의란 더 이상 종교에서 ‘소망의 근원’을 찾지 않는 것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다. 영국인의 53%가 비종교인으로 확인됐고 전통의 기독교 국가로 인식되던 미국에서도 약 30%가 자신의 종교가 없다고 답했다. 우리나라 역시 최근 통계에서 무종교인의 비율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다.

캐나다의 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자신의 저서에서 ‘세속주의’에 대한 세 가지 정의를 제시한다. 첫째는 종교 활동이 공적 생활에서 사적 영역으로 철수되는 것, 둘째는 개인의 종교 활동 참여가 감소하거나 종교적 신념이 약화되는 것, 셋째는 ‘신을 믿지 않는 것이 불가능했던’ 사회에서 신을 믿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나 문화로의 전환이다.

이 중에서도 세 번째 정의는 특히 주의 깊게 볼만하다. 이전까지 기독교가 주류를 이룬 ‘크리스텐덤 사회’였던 서구 국가들은 교회에 다니는 것이 평범한 시민의 모습이었다. 비교적 최근 기독교가 들어온 동양사회에서도 ‘신의 존재’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런 당연한 패러다임이 뒤집혔다. 이제 복음을 전하는 일은 ‘종교와 신’의 존재, 그리고 존재 이유에 대한 근원적인 설득에서부터 출발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세속주의의 확산은 ‘복음의 상황화’를 더 절실히 요구한다. 복음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동시에 각 문화적 상황에 섬세하게 이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 이상 신을 믿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 지금의 사회에서는 복음을 전하려는 대상에 대한 경제적, 사회적, 철학적, 이념적, 종교적 관심사를 다양하게 고려해야 한다. 로잔은 문화와 삶에 대한 풍부한 이해가 없이는 아무리 진리의 메시지라고 할지라도 무력하게 전달될 우려가 있다고 경고한다.

또 교회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세속주의 사회에서는 ‘모이고 흩어지는’ 교회의 본질에 더 집중해야 한다. 교회에 높은 담을 두르고 우리끼리 누리는 은혜에만 취해 있다면 교회는 점점 고립되고 만다. 교회는 모이는 공동체로 기능하는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에 흩어져 선한 영향력을 발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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