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과 부흥의 길] 신학자는 신학생의, 목회자는 성도의 영혼을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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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과 부흥의 길] 신학자는 신학생의, 목회자는 성도의 영혼을 ‘살려야’ 한다
  • 권성수 목사
  • 승인 2024.05.2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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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수 목사와 함께 찾는 ‘한국교회 회복과 부흥의 길’ (15) 수술은 성공! 사람은 죽어?
권성수 목사/대구동신교회 원로목사
권성수 목사/대구동신교회 원로목사

백석의 설립자 장종현 총장의 수술 비유는 ‘신학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의사가 수술은 성공했는데, 환자는 죽었다’는 것입니다. 수술의 성패는 의사가 집도를 만족스럽게 했는지 여부에 달려 있지 않고 환자의 생명과 회복에 달려 있습니다. 신학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성패는 커리큘럼대로 교수들이 강의하고 학생들이 수업을 잘 들었는지 여부가 아니라 교육을 받고 배출된 목회자들이 성도들의 영혼을 살려내는지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수술은 성공했는데 환자가 죽었다면, 그것이 성공한 수술인가? 개혁주의 신학을 깊이 연구하고 성실하게 가르쳤는데 영혼들이 비실비실하다가 죽는다면, 신학교육이 성공한 것인가? 교수가 커리큘럼대로 강의하고 학생들은 수업을 잘 듣고 시험성적도 좋았지만 학생들이 영적으로 힘을 잃는다면, 그것이 제대로 된 신학교육인가? 신학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예수생명이 약화되고 예수생명을 전달하지 못한다면, 그런 신학을 왜 해야 하는가?

요즈음 신학교육이 정말 수술은 성공하는데 환자는 죽이는 것인가? 이것은 너무 심한 비유가 아닌가? 이런 반문을 할 수 있겠지만, 수술 비유를 다른 비유로 바꾸면 장종현 총장의 말이 좀 더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식사하고 있을 때 골프의 황제 타이거 우즈(Tiger Woods)와 골프의 여왕 애니카 소렌스탐(Annika Sorenstam)이 레스토랑으로 들어온다. 그들을 보고 “저기 보세요. 정말 골프를 ‘아는’ 두 사람이 저기 들어옵니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안다’는 말의 뜻이 무엇인가?

골프의 역사를 안다는 것인가? 골프의 규칙을 안다는 것인가? 물론 골프의 역사를 아는 것도 중요하고 골프 규칙을 아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골프를 ‘안다’는 것은 골프를 제대로 ‘할’ 줄을 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골프를 정말 잘한다는 것이다.

골프의 황제나 골프의 여왕이 되기 위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 수도 없이 훈련해서 골프를 ‘아는’ 것, 이것이 골프훈련의 목적이다. 골프 훈련은 성공했는데 공을 연못에만 빠뜨린다면, 골프 훈련이 정말 성공한 것인가?

구두 공장이 있다. 회장은 그 공장에 돈과 시간을 투입하고 직원들의 봉급을 꼬박꼬박 챙겨 준다. 자제 구입과 공장 수리에도 돈을 아끼지 않는다. 직공들이 기계를 풀로 가동하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공장의 활동만으로 보면 최상의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어느 날 회장이 생산부장에게 질문한다. “지금까지 구두를 몇 켤레나 생산했지요?” 생산부장은 “한 켤레도 생산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회장은 “한 켤레도 생산하지 않았다고요? 몇 년 동안 작업했습니까?”라고 묻는다. 부장은 “2년입니다”라고 대답한다. 회장은 “2년 작업했는데 구두 한 켤레도 생산하지 못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부장은 “그렇습니다. 구두는 생산하지 못했으나 열심히 일했습니다. 사실 너무 바빠서 직공들 모두 탈진한 상태입니다. 현장에서 다 열심히 뛰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 공장이 정상인가?

수술하면 반드시 환자를 살려야 한다. 골프훈련을 하면 골프를 제대로 할 줄 알아야 한다. 구두 생산공장에서 기계를 풀로 가동하고 직공들이 열심히 일한다면 목표량의 구두를 생산해야 한다. 요즈음 신학교육은 해도 영혼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지 못하는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이것은 수술은 해도 환자를 죽이는 꼴이다. 이것은 골프훈련을 해도 골프장에서 골프를 못하는 꼴이다. 이것은 공장에서 열심히 일해도 구두 한 켤레 생산하지 못하는 꼴이다.

왜 이런 비유가 필요한가? 사변신학에서 생명신학으로 돌이키도록 강력한 자극을 하기 위함이다. 수술하면 반드시 환자를 살리고, 훈련하면 반드시 골프를 잘하고, 가동하면 반드시 구두를 생산해야 한다. 신학교육도 반드시 교수와 학생과 교인 속에서 예수생명이 약동하고 밖으로 흘러가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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