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과 올해에 걸쳐 우리 교회에서는 유난히 아픈 환자들이 많이 나왔다. 시무장로 중에 암에 걸려 조기 은퇴한 이가 생기는가 하면, 부인 되는 권사님이 암으로 몇 달째 고생하는 경우가 원로 장로 가정에서는 물론, 젊은 시무 장로 가정에서도 생겨났다. 거기다가 올해 은퇴한 원로 장로 중에는 사십대 초반의 외동아들이 갑자기 척추신경 속에 무슨 균이 들어가는 바람에 쓰러져서 여러 달이 지나도록 제 몸도 가누지 못하게 된 나머지 간병에 여념 없는 경우도 생겼다.
올해 3월 마지막 주인 ‘고난주간’에 우리 교회에서는 외부 강사를 모시고 5일 동안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회>를 가졌는데, 그 초청한 외부강사도 바로 댁내 우환을 지닌 분이셨다. 다름 아니라 경기도 A지역에서 P교회를 개척하시고 33년간 목회하시다 이번에 은퇴하신다는 홍성국 목사님이다. 이 분은 외모로는 별 고생 없이 살아오신 50대의 평범한 신사로만 보였다. 그러나 첫날, 당신이 살아온 생애를 소개하시는데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빈농의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죄로 중학교만 나와 농사만 지었단다. 그러다가 어느 부흥 집회에서 거듭남의 큰 체험과 함께 목회자의 비전을 품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 고학으로 그 비전을 꼭 10년만에 이뤄내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기도 평촌에 교회를 개척해서 가까스로 자리잡힐 만하니까, 이번에는 사모님이 갑자기 쓰러지셔서 식물인간이 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외아들과 함께 온갖 집안일과 더불어 사모님의 대소변은 물론, 제반 병수발까지 감당해오고 계시는 중이라는 것이다. 그런 고난을 지금까지 겪어오신 분이라고 생각하니, 새삼 기독인이 겪는 고난에 대해 하시는 그분의 말씀들 하나하나가 무게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중 가장 크게 다가오는 말씀은 욥기에 나오는 바, 욥의 세 가지 신앙 순례에 대한 것이었다. 곧 처음 욥은 하나님 말씀 지키기를 의무화하는 교리적 신앙 수준에서 자신의 부족을 깨달음으로 자기 생일마저 저주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다가 그 유명한 욥기 23장 10절에서처럼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는 데서 보이는 바,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 수준으로 진일보한다. 그러나 이 속에 담긴 자기중심적인 영적 교만이라는 한계를, 하나님은 욥기 37장 이후부터 창조론적, 생태론적 질문을 계속 집중적으로 드러내심으로써 다시 하나님 말씀을 경청하는 신앙 경지로까지 욥의 신앙을 끌어올리셨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욥의 신앙 순례를 마무리 짓는 42장 1~6절의 결구에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 42:6)라고 하며 회개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강사 목사님은 바로 이 회개야말로 하나님 말씀을 경청하는 영성훈련의 최고의 단계에 이르게 하는 첩경이라고 하면서, 우리의 영적 경지가 하나님을 영적 눈으로 뵙는 최고의 단계에 이르게 하는데 있어 고난이 불러오는 바 회개의 의의를 강조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말미에 고난이 갖는 특성 내지, 우리 삶 가운데 주는 의의로 다음 세 가지를 여러 예와 함께 들어주셨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곧, 고난은 하나님의 선하신 사랑에 끊을 수 없는 애착과 신뢰감을 깊게 해준다는 점, 또 고난은 영성 훈련의 핵심으로서 수동적인 정화의 시간을 갖게 해준다는 점, 그리고 작은 고난들을 통해 우리 존재를 보다 나은 긍정적인 변화로 향상시킴으로써 고난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또 다른 방식이란 점을 언젠가는 깨닫게 해준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강사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문득 우리 교회의 가내우환으로 고생하는 여러 교우들에게 제대로 위로해드릴 말씀을 얻은 것 같다. 또 믿지 않는 이들이 힐난조로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행복하게 살기는커녕 고난으로 더 불행해지는 이유가 뭐냐고 따져들 경우에도 그에 충분히 대응할 말씀을 얻은 것도 같아 새삼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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