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슈사쿠(Endō Shūsaku, 1923~1996)의 소설 <침묵>은 일본의 가톨릭 박해사의 한 면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소설인데 2016년 거장 마틴 스콜세이지(Martin Scorsese)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침묵>은 1966년에 쓰인 소설인데 이 소설로 엔도 슈사쿠는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하였다.
“인간이 이렇게도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나 파랗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소설 <침묵>을 읽은 것은 꽤나 오래 전이었던 것 같다. 가슴이 먹먹했고 아팠다. 그래서 <사일런스>라는 이름으로 개봉된 영화를 보는 데 상당한 마음의 주저함을 가지고 있었고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에는 영화를 보았는데 다행히 소설에서의 경험보다는 다소 그 충격이 덜하였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 가운데 있는데도 불구하고 침묵하신다. 이 하나님의 침묵을 가장 절절하게 확인하게 되는 장면은 예수님의 골고다 언덕 십자가 지실 때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그 시간에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절절하다 못해 처절한 예수님의 외침은 성부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절규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리는가? 때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이 느껴져 고통을 겪곤 한다. 소설가 박완서의 <한 말씀만 하소서>는 아들을 먼저 보내고 참척의 고통을 겪으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 내용을 담고 있다. 왜 내 아들을 데려가셨느냐? 하나님께 그 이유나 알고 싶다. 두 말씀이 필요하지 않다. 딱 한 말씀, 그것이면 족한데 그 한 말씀이 들리지 않으니 고통스러운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여종 하갈을 통하여 자녀를 얻으라는 아내 사라의 권면에 휘둘려 아들 이스마엘을 얻게 되었다. 그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86세였다.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이 말씀은 창세기 16장 맨 마지막 절이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창세기 17장 1절은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다. 일종의 시간적인 공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13년의 기간 동안 아브라함 편에서는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하지 않았을까?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여 그 말씀이 잘 들리지 않는 때가 있다. 그것은 신자 개인의 삶에도 그러하고 어느 시대 전체가 그런 때일 수도 있다. 바로 사무엘이 자신의 사역을 막 시작하려고 하던 때가 바로 그런 시대였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삼상 3:1). 사사 시대의 암흑기 끝자락 마지막 사사의 모습으로 사무엘은 등장하여 선지자로서 왕정 시대를 연 사람이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이다. 살아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침묵을 지키고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 그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그래서 선지자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날을 이 땅에 보낼 것을 예언하고 있다. “보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
시편 74편의 아삽의 시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 예루살렘 성전은 황무하여 버려져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던 곳에서는 원수의 고함 소리가 들려오고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위해 일어서려고 하신다는 암시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시간이 언제 끝이 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으니 아무런 빛도 보이지 않고 주변은 캄캄하기만 하다. “우리의 표적은 보이지 아니하며 선지자도 더 이상 없으며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랠는지 우리 중에 아는 자도 없나이다”(시 74:9)
선지자는 시대의 잔소리꾼이다.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들이 선지자들이다. 그런데 더 이상 선지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절망의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왜 중요할까?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 29:18). 그러므로 오늘 우리 시대, 외치는 자는 많지만 생명수가 말라가는 이 시대를 향한 우리의 기도 중에 가장 중요한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게 해달라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 침묵하지 마시고 말씀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