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 공동체를 살린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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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를 열며] 공동체를 살린 한 사람
  • 김한호 목사(춘천동부교회 담임)
  • 승인 2023.05.30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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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호 목사.
김한호 목사.

이득춘이라는 사람이 늦게 시백이라는 아들을 얻었는데 박씨와 혼인을 하게 되었습니다. 혼례를 올리고 첫날밤을 보냈는데 이시백은 박씨의 얼굴을 보고 크게 실망합니다. 박씨가 천하의 박색이라 그 후로는 박씨를 전혀 돌보지 않습니다. 가족들도 박씨의 얼굴을 보고는 모두 비웃고 박대합니다. 그렇게 시집온 지 삼년이 되던 어느 날 박씨는 친정아버지의 도움으로 추녀 허물을 벗고 일순간에 절세미인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에 나온 ‘박씨전’이란 소설입니다. 비록 볼품없는 여인으로 집안에서 미움을 받았지만 결국 한 가문을 살린, 축복의 여인이라는 내용입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요셉은 17살에 남의 나라로 팔려 갑니다. 그는 살아온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일함으로 애굽에서 바로왕 다음의 자리인 총리가 됩니다. 7년 기근의 때에 찾아온 가족들과 재회하고 애굽의 고센 땅에 정착하게 만듭니다.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곳에서 번성하게 됩니다. 원치 않는 이주였지만 요셉이 머문 곳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땅에서 묵묵히 희생하며 성실한 삶을 살아낸 요셉으로 인해 기근에 처한 애굽과 인근 나라가 살아나고 깨어진 가정과 가문이 회복되어집니다.

총회 유지재단에서 베트남 ‘달랏’을 방문하였습니다. 그곳은 해발 1,500미터의 고원도시라 1년 평균 기온이 15~25도로 선선한 지역입니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베트남에서는 유명한 관광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도시에 들어서며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도시 입구부터 끝없이 펼쳐진 엄청난 수의 비닐하우스와 ‘Kim’으로 시작하는 수많은 간판들이었습니다. 따뜻한 나라 베트남에서 그렇게 많은 비닐하우스를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인구 45만 명의 이 도시에 ‘파파 김(金)’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이분은 김진국 교수입니다.

1992년 12월 22일,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를 맺었습니다. 가장 큰 관심은 과거사였습니다. 수교하기 전 과거사를 정리해야 했지만 정치인 누구도 책임 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그 상황에서 김진국 교수는 베트남으로 건너갑니다. 베트남으로 가게 된 계기는 1992년 일본에서 열린 난(蘭) 연구세미나에서 베트남 대학의 한 교수로부터 자기 나라에 난이 자라기 좋은 지역을 소개를 받게 되고 난을 연구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베트남으로 향했습니다.

처음에는 연구가 목적이었지만 그곳의 가난한 농민들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빚진 것(베트남전)을 조금이라도 갚을 기회가 생겼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는 이 지역에 맞는 농업을 연구합니다. 사람들의 냉대 속에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그의 진심을 보고 마음을 열어 준 라이따이한 10여 명과 함께 농사를 시작하였습니다. 1996년 장미, 국화, 안개꽃을 수확합니다. 꽃의 크기나 품질이 좋아서 일반 꽃보다 10배 더 비싼 가격으로 판매하게 되었습니다. 김 교수의 비닐하우스는 2모작밖에 못하던 농사를 4모작이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지역 사람들이 찾아와 김 교수에게 비닐하우스 기술을 배워갑니다. 2004년도에는 달랏대학교에 한국어학과가 개설되었습니다. 지금은 베트남을 대표하는 3대 도시 중 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섬김과 헌신을 통해 한 지역이 살아난 것입니다.

박씨나 요셉, 김진국 교수 모두가 개인의 희생과 노력, 헌신으로 공동체를 살린 사람들입니다. 위기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신앙과 지조를 지키며 섬김의 삶을 살아낸 이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과 속해 있는 직장, 공동체가 우리를 통해 축복을 받고 살아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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