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 박사의 영화 읽기]주체성을 상실한 자들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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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 박사의 영화 읽기]주체성을 상실한 자들의 종말
  • 최성수 박사(문화선교연구원 칼럼니스트, 캄보디아 선교사)
  • 승인 2023.05.3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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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곡성](나흥진, 미스터리/스릴러/드라마, 15세, 2016)

<곡성>은 관객들의 궁금증과 논쟁을 동시에 불러일으킨 영화였다. 내용 자체가 잘 이해되지 않고, 캐릭터가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말이 많았다. 이 정도 평가면 웬만한 영화들은 스토리텔링에 문제가 있다고 하여 꼬리를 내리게 되는데, <곡성>은 오히려 더 많은 관객의 관심을 받았다. 무엇 때문일까?

영화 <곡성> 포스터.

경찰관 종구(곽도원)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화의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어느 시골 마을에 의문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원인은 정신착란과 피부병을 유발할 수 있는 버섯 때문이라고 밝혀졌다. 종구는 처음에는 수사 결과를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같은 패턴의 사건(피부병, 살인, 굿의 흔적 등)이 반복적으로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딸에게 일어난 범상치 않은 일을 경험하면서부터 태도가 급변한다. 그리고 외지인인 일본인이 머무는 집에서 발견한 이상한 물건들 때문에 종구는 일본인이 사건의 배후라는 확신에 이른다.

종구는 아버지로서 딸에게 나타난 증상이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과 전혀 무관하지 않음을 직감했다. 딸의 몸에서 발견된 피부병과 딸의 노트에서 발견된 이상한 그림들은 딸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강한 확신을 불러일으켰기 때문.

이런 정황에서 마을에 등장한 낯선 외지인 일본인은 희생양으로 적격한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종구는 일본인이 거주하는 곳을 찾아갔는데, 그가 그곳에서 본 것은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기에 충분했다. 그 후 종구는 일본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믿고 싶은 것을 믿었을 뿐, 사실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더 이상 가질 수 없었다. 그의 확신은 거의 종교적인 신념에 가까웠다. 의심만 했던 때에는 마을을 떠나라고 위협만 했지만, 종교적 신념을 가지면서부터 종구는 그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욕망에 사로잡히면, 진실보다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자신이 확신하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 일어난다는 현상을 폭로하는 영화로 이해된다. 일종의 ‘라쇼몽 효과’(같은 사건을 두고도 각자의 입장에 따라 사실을 달리 해석하는 현상)를 말하는 것일까? 중세의 마녀사냥을 연상케 하는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아무튼 영화의 내용은 이렇게 정리할 수는 있어도 이야기가 시원하게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다.

인간의 지각에 따라 변형되는 캐릭터를 염두에 두고 영화를 다시 보게 되면서 필자는 영화이해에 도움이 되는 통찰을 얻어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곡성>은 우리의 문제를 보고 또 해결하는 데 있어서 주체적인 능력을 포기한 채 남 탓만 하고 지내다 결국 서로에 대한 반목과 갈등을 반복하면서 결국 연쇄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우리 자신의 자화상을 드러낸다. 어쩌면 합리적이지 못하고 초월적인 힘에만 의지하려는 삶과 문제 해결 과정에서 주체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삶이 맞이하게 될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묵시록은 아닐까?

오늘날 한국 사회와 겹치는 묘한 느낌을 받는다. 특히 악마와 예수와 동일시되는 마지막 장면은 이런 비주체적인 삶에서 기독교가 차지하는 역할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정도임을 폭로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최성수 박사
최성수 박사(칼럼니스트, 캄보디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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