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 결국엔 사랑만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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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를 열며] 결국엔 사랑만 남습니다
  • 이상갑 목사(청년사역연구소 소장)
  • 승인 2023.05.2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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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갑 목사(출처:이상갑 목사 페이스북)
이상갑 목사
청년사역연구소 소장

최근에 제가 좋아한 목회자 팀 켈러를 비롯한 세분이 하나님께로 떠났습니다. 갑자기 질문이 생겼습니다. 인생이 지나간 자리에 뭐가 남을까? 하나님 앞에 서는 날에 우리를 판단하는 영성의 척도는 뭘까?

우리는 영성을 너무 고상한 수준만 생각합니다. 어떤 신비한 현상을 영성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성경통독 횟수나 기도 시간을 영성의 척도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영성가들이 사막에서 광야에서 보낸 수도자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인에게 영성을 찾는다면 사막이나 광야가 아닌 일상과 일터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특별한 시간과 장소가 아니라 일상과 일터가 우리 영성의 수준을 보고 듣고 경험하는 현장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영성이 교회에서의 모습에 국한 한다면 그리 힘겹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에서만 잘하면 될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회에서는 천사같은데 집에만 가면 악마로 바뀌는 지킬박사와 하이드형의 신앙과 삶이 곳곳에서 곪아서 터지면서 교회도 가정도 만신창이 되었습니다. 신앙과 삶의 분리는 심각한 이중성, 위선이라는 질병이 생기게 했고 점차적으로 이중 인격이란 중병을 낳았습니다. 그 질병이 깊어지면서 교회에서는 참 좋은 사람인데 가정과 일터에서는 참 나쁜 사람으로 비춰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앙과 삶은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결코 분리 될 수 없습니다. 분리된다면 신앙이 아니라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힌 짝퉁일 뿐입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진짜는 아닙니다. 신앙과 삶은 분리 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함께 갑니다. 그래서 영성이 깊어지면 신앙이 삶으로 표현되고 드러납니다. 진정한 영성은 일상과 일터에서 사랑과 섬김의 실천으로 드러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1절)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2절)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3절)” 방언, 천사의 말처럼 신비적이고 체험적 영적 언어도 사랑이 빠지면 소음입니다. 신학박사학위를 가지고 있고 성경을 많이 읽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많고 기적의 역사가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빈털터리 인생입니다. 아무리 헌신과 희생을 해도 아무리 많은 교회 봉사를 한다고 해도 사랑이 없다면 조금의 유익도 없습니다.

사랑의 특징을 깊이 들여다보면 일상과 일터에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부분들입니다. 사랑이 뭔지를 하늘의 소리를 땅의 언어로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4절)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5절)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6절)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7절)” (고전 13:4~7)

이러한 사랑이 영성의 척도입니다. 잘 믿는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영성이 있다는 것은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시작도 과정도 결국도 사랑입니다. 사랑이 빠진 신앙은 허구이며 허상입니다. 사랑이 빠진 신앙적 감정은 허영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결국엔 사랑만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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