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시작은 상실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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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의 시작은 상실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 곽혜신 애도상담사(각당복지재단)
  • 승인 2023.05.16 2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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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을 생각하다⑩

마스크 없는 일상의 현장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 살짝 어색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코로나19는 우리들의 일상의 삶에 크고 작은 변화들을 가져왔다. 2년 전 마스크를 쓰고 상담실에서 부모사별자 50대 남성을 상담하게 된 것은 코로나19와도 무관하지 않았다. 그분은 당시 기준으로 6개월 전에 코로나 예방백신 부작용으로 80대의 어머니를 갑작스럽게 사별한 분이었다.
 
애도상담의 대표적 학자인 윌리엄 워든 박사는 애도의 네 가지 과업을 제시했는데 상실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상실의 감정을 표현하기, 고인이 없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정서적 재배치가 그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고 어머니와 애착이 매우 강했던 이 50대 남성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병치레 한번 없이 건강하고 정정하신 분이었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는 죄책감과 억울함이 가득했다. 

평소 건강한 분이셨기에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떠들썩하고 매일 예방백신 접종에 대한 뉴스가 나올 때도 자신은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래서 어머니가 덜컥 예방접종을 받으시고 부작용으로 열흘 만에 돌아가셨다고 자책했다. 그는 자신의 무관심으로 예방접종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후회감, 억울함, 무력함 등의 부정적 감정들과 슬픔의 반응들을 토로했다.

이러한 심한 자책감과 후회감으로 애도의 네 가지 과업 중 첫 번째 과업인 상실의 현실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조금만 어머니의 백신 접종에 주의를 기울였더라도 지금쯤 어머니랑 늘 하던 대로 일상을 누렸을 텐데 어머니를 지켜드리지 못한 자신이 너무 괴로워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아무것도 할 의욕이 없다고 수없이 반복되는 말은 그리움을 담은 깊은 사모곡으로 들려왔다. 

애도는 상실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된다. 정상적인 죽음, 예견된 죽음이라 하더라도 사별자는 심리적 충격을 받는다. 그만큼 상실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기에 그는 복잡한 슬픔의 반응을 더 겪고 있었다. 

비탄의 과정 없이 애도는 없다. 누군가는 상실의 현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죽음이었느냐에 따라 상실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비탄의 터널에 갇혀버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그를 지켜보는 마음이 내내 안타까웠다. 그만큼 어머니와의 각별한 애착 관계였기에 더욱 받아들이기 힘든 사별이었으리라.
 
애도상담은 ‘손톱만큼의 안정’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는 어느 사별자의 글을 본 적이 있다. 갑작스레 어머니와 사별한 50대의 아들 또한 손톱만큼의 안정을 바라며 상담실 문을 두드렸을 것이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상실의 현실은 얼마나 더 받아들이셨을지, 오랫동안 갇혀있던 비탄의 터널을 지나 지금은 어느 애도과업을 하고 계실지, 손톱만큼의 안정을 발견하는 시간은 찾아왔을지, 부디 더 나은 평온을 찾으셨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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