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섬, ‘소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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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섬, ‘소록도’
  • 최순호 장로(원천교회)
  • 승인 2023.05.16 2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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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함께하는 행복한 성지순례 6. 소록도교회 김정복 목사(1)

한국의 대표적인 한센병 환자들의 거주지인 소록도를 향해 아침 일찍 어머니와 함께 지리산을 출발했다. 섬의 모양이 아기 사슴을 닮았다고 ‘소록도(小麓島)’라 불린다. 유자로 유명한 전남 고흥 녹동항을 지나 육지와 섬을 연결한 연육교인 소록대교에 들어서면 좌우로 시원한 남해바다가 펼쳐진다.

눈물의 섬 소록도를 마주하며 바다를 가로질러 소록도에 들어섰다. 지리산에서 3시간 동안 달려온 소록도는 아직도 코로나 팬데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나이든 노모의 처지를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소록도는 일제강점기인 1916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한센병 환장 전문치료소인 자혜의원이 소록도에 문을 열면서 치료소에서 정착지로 변해오면서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됐다. 한센병이 전염된다는 잘못된 의식의 출발이 이들을 소록도에 집단 감금하게 됐고 수많은 노동력 착취, 인권유린, 종교적 박해가 자행됐다. 해방 전 거주민의 숫자가 6천여 명에 달하기도 했다.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는 육지로 나가 부모 형제를 만날 수 없었던 눈물의 섬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 외부에 개방이 시작됐다. 2009년 소록대교가 개통되면서 중앙공원을 비롯한 일부 시설이 일반인에게 공개되면서 잘 알려진 명소가 되었다. 신앙으로 버티던 한센병 환자들이 6개의 교회를 세웠다. 눈물로 세운 교회가 어디 소록도뿐만은 아니겠지만 살이 썩어 문드러지는 손으로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아 올린 교회는 전국에 유일할 것이다.

개신교인은 아니지만 오스트리아 가톡릭수도회에서 파견되었던 마리안느 스퇴거, 마가렛 피사렉 수녀의 헌신적인 봉사와 사랑은 눈물겹다. 1966년 소록도에 들어와 40여 년의 세월을 한센인의 친구로 헌신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와 책이 있다. 국민 가왕 조용필이 2011년 소록도를 찾아 이들의 손을 잡아주면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소록도 전경.
소록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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