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 관련 기사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이단의 강한 반발이다. 지난주 기사 이후 천부교에서는 “박태선 회장님은 처음부터 감람나무가 내리는 이슬은혜를 받아 사람들의 죄가 없어져야 구원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며 “누구의 영향을 받아 세우고 다른 종교 집단에 전승할 수도 없는 종교”라고 밝혀왔다. 자신들의 감람나무 교리를 내세우면서 기독교와 다른 신흥종교, 혹은 이교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기독교계의 시각은 다르다. 독자적 교리이건 아니건 성경에서 벗어났다면 이단이다. 특히 기독언론에서는 정통 기독교 교단의 교리와 총회 결의에 따라 이단을 판단한다. 본지는 기독교 언론으로 정통 교단들이 결의한 이단에 대해서는 이단으로 지칭하며 그 출발이 교회 혹은 성경에서 비롯됐다면 성경을 왜곡하고 교리를 악용한 이단에 대해서는 이단으로 밝힐 수밖에 없음을 밝힌다. 이번 주는 지난주 다룬 한국교회 초기 이단 유명화와 김성도에 이어 통일교에 사상을 전수한 김백문에 대해 다룬다. <편집자 주>
기독언론, 정통 교단의 이단 규정에 근거해 판단
김백문과 문선명의 만남 이후 ‘원리’ 사상 체계화
선악과 사건을 성적 타락으로 바라보며 성경 왜곡
백석대 이상규 교수는 ‘한국 교회사에 나타난 거짓 계시운동’에서 “거짓 계시는 주로 종말론에 집중되어 있고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대한 예언과 계시가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분석했다. 초기 이단들의 신비주의사상은 소위 말하는 ‘접신’의 형태로 시작되는 경향을 띄었다. 그리고 자신을 재림주로 지칭하며 교주로 군림한다. 예언과 계시, 혹은 신유까지 행하면서 신자들을 미혹한다. 하지만 신비의 체험만으로 세력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면서 나름의 교리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김백문이다.
김백문은 경기도 파주에 이스라엘 수도원을 세우고 서울 상도동에서 지교회를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백문이 이단의 계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그가 펴낸 ‘기독교근본원리’ 때문이다. 통일교 학자가 쓴 ‘통일교회 기원에 관한 고찰’에서 김백문은 원산 신학산에서 백남주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된 후 “1946년 3월 2일 영적으로 주님을 만났고 그날을 개천철이라 하여 기념하고 있다”고 했다. 1954년에는 ‘성신신학’이라는 성경해설서를, 1958년에는 ‘기독교근본원리’라는 방대한 교리서를 펴냈다. 문선명과 김백문의 만남을 ‘통일교회 기원에 관한 고찰’에서 이렇게 소개한다.
“1945년 8월 15일 한국이 일본의 합정으로부터 해방되자 종교계도 활기를 띠었고, 특히 기독교는 폭발적인 힘으로 뻗어 나갔으며, 많은 열성신자 가운데서는 재림주가 강림하신다는 계시설과 함께 그 대망의 소리가 높았다. 이러한 그해 10월에 문선명 목사는 김백문 씨를 만나 그가 이끄는 이스라엘 수도원에 몸 담았다. 그 목적은 새로운 신앙운동의 활동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통일교 측은 김백문이 문선명에게 자신이 받은 계시를 간접적으로 전했고, ‘이제부터 문 선생을 따르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언급한다. 다만 통일교는 김백문과 문선명은 신앙체계와 교리 사이에서 상충하다 결별했으며, 통일교의 <원리강론>은 김백문의 <기독교근본원리>를 표절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교리는 독자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김백문의 이스라엘 수도원에 몸담은 것과 김백문의 계시를 받은 것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역사로 기술하고 있다.
통일교 핵심교리를 누가 먼저 정리했느냐의 문제는 부차적이다. 통일교가 김백문의 영향을 받았거나 그가 운영하는 이스라엘 수도원 출신이라는 것에서 이미 연결점은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김백문은 어떠한 이단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단의 아버지로 불리는 것일까?
김백문의 핵심 주장은 성적타락원리와 피가름의 원리에 있다. 김흥수 교수가 쓴 ‘한국교회사의 이단문제’에서 국내 이단들의 주장하는 피가름의 시작을 이렇게 언급한다.
“1947년 초반 정득은이라는 여인이 김백문을 찾아왔다. 그녀는 평양에 거주하던 신령파였는데, 월남하여 서울에 도착한 후 서울역 앞에서 20여명의 신도와 함께 집회를 가지면서 김백문의 집회에도 가끔 참석하곤 했다. 그 무렵의 어느 날 그녀가 독방에서 기도하는데, ‘손을 잘라 그 피를 김선생에게 먹여라’는 계시를 받는다. 그녀는 면도칼을 구하여 김백문의 방으로 가서 그 계시 내용을 이야기하고 막 손가락을 자르려고 하는데 김백문이 만류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남한사회에서는 이른바 성혈 전수(피가름)의 의례가 이렇게 전수되고 있었는데...”
계시를 받았다는 정득은은 피를 먹이려 하는 행위를 직접 시도했다. 인간의 몸에 흐르는 사탄의 피를 바꿔야 한다는 것. 이후 정득은은 동정녀와 특별한 의식을 거치면 거룩한 피로 바꿀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것이 혼음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그녀는 스스로 ‘동정녀’라고 주장하며 이미 재림한 메시아가 동정녀(자신)를 통해 피가름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정득은도 교리책을 썼는데 그는 1958년 ‘생의원리’라는 계시서를 통해 선악과 사건을 성적 타락으로 정의하고 피가름을 주장한다.
계시를 받았다는 말로 시작된 피가름은 사탄의 피를 거룩한 피로 교환하는 의식처럼 여겨지며 신학적 체계화를 시도한다. 김백문은 ‘기독교근본원리’에서 선악과를 단순한 과실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뱀이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였는데 그것은 과실이 아니고 처녀의 정조를 빼앗은 것이며 인류는 그로부터 뱀의 혈통을 받은 가인의 자손이라고 주장한다. 이단 전문 언론 ‘기독교포털뉴스’의 보도 중에 김백문의 <기독교근본원리> 486페이지를 인용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가인은 과연 해와가 사신의 악령체로 성욕을 전감받은 범죄결과요 인간본성의 사랑으로 된 번식이 아닌 것을 의미하는 동시 극단적으로는 악령의 성욕적 유전만이 아닌 사신(蛇身)의 피를 받아 해와와 배암과의 결합한 결과로서 보리만큼 성서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김백문이 주장한 성적 타락설과 사신의 피를 거룩한 피로 바꿔야 한다는 피가름의 원리는 통일교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JMS 집단을 비롯한 재림주 이단종파를 이끌어 가는 원리가 되고 말았다. 가장 심각한 것은 성적 타락설과 피가름 원리가 이단 신흥종교에서 성폭행 사건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단이 위험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계시와 예언으로 현혹하고 거짓 교리로 세뇌한다. 그렇게 이단에 빠진 사람들이 각종 피해를 입는 것이다.
목원대 김흥수 교수는 초기 이단에 대해 “성서무오설에 도전하는 자유주의적 성서해석과 신령파들의 계시 주장이 이단 시비의 주요한 발단이 되었다”고 보았다. 1930년대에는 원산파와 새주파를 시작으로 1945년 김백문이 신비주의 이단 사상을 전승했으며, 1950년대에는 통일교와 전도관이 등장하면서 재림주 이단 사상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후 1960년대에 신흥종교가 급증했고 1980년대 들어 귀신론, 재림설, 구원론 등 각기 다른 이단들이 자신들의 교리를 앞세워 등장했지만 반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