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크리스천’ 아닌 ‘에브리데이 크리스천’ 길러내는 베이스캠프
상태바
‘선데이 크리스천’ 아닌 ‘에브리데이 크리스천’ 길러내는 베이스캠프
  • 손동준 기자
  • 승인 2023.05.04 10: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탐방] 영락교회 금요 직장인예배를 가다

반세기 역사 자랑, 인근 직장인들 위한 주중 교회 역할
10명 규모 성경공부로 시작, 전성기엔 500명까지 참석
50주년 직후 코로나로 2년 중단, 차츰 회복하며 정상화
서울 중구 빌딩 숲 한가운데 자리한 영락교회. 교회 인근에는 여러 기업들이 자리하고 있다. 50여년 전 처음 시작한 영락교회 직장인예배는 중구 직장인들의 오아시스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서울 중구 빌딩 숲 한가운데 자리한 영락교회. 교회 인근에는 여러 기업들이 자리하고 있다. 50여년 전 처음 시작한 영락교회 직장인예배는 중구 직장인들의 오아시스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오늘 00손해보험에서 네 분이 우리 직장인 예배에 처음 나오셨습니다. 이분들을 격려합시다. 출근해서 컴퓨터를 켤 때부터 은혜와 복이 넘치고 성취감을 주시도록, 사명지에서 고객을 응대하며 수고함에 보람이 많도록 함께 축복하며 기도합시다.”

매주 금요일 서울 중구의 빌딩 숲 한가운데 자리한 영락교회(담임:김운성 목사)에서는 직장인들을 위한 ‘정오예배’가 열린다. 이 예배는 반세기 넘도록 이어져 내려오며 사막 같은 직장생활에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기자가 찾아간 날도 어김없이 120명 가량의 직장인이 모여 한 시간가량의 짧지만 뜨거운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직장인예배를 담당하고 있는 영락교회 황재영 목사와 봉사자들을 통해 직장인예배의 역사와 의미를 들어봤다.

 

중구 직장인들의 오아시스

‘당신을 위한 금요직장인예배, 생명의 양식이 있습니다. 금요일 점심은 하나님과 함께 드세요’
예배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찾은 영락교회 정문에 직장인예배에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다. ‘금요일 점심은 하나님과 함께’라는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문구처럼 예배를 마치면 참석자들은 함께 교회 식당으로 내려가 간단한 점심을 함께 나눈다. 메뉴는 김밥과 라면, 국수 등이다. 이날은 샌드위치도 함께 제공됐다. 거창한 메뉴는 아니지만 준비한 정성이 느껴져 특별하게 더 맛있었다. 

예배 장소인 영락교회 선교관 입구에서 찾아오는 이들을 맞이하는 봉사자들과 담당 교역자들의 환한 얼굴도 편안함을 더했다. 예배를 여는 찬양부터 주중의 딱딱했던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 말씀에 앞서 진행된 축복의 시간, 황재영 목사가 신우회들의 소식과 처음 예배당을 찾은 이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모두에게 익숙한 CCM ‘축복의 통로’를 함께 부르는 데 처음 참석한 예배임에도 아주 오랫동안 함께 해온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주변을 돌아보니 직장 신우회 단위로 삼삼오오 참석한 이들도 있었지만, 기자처럼 홀로 예배의 자리로 나온 이들도 적지 않았다.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이 얼마나 귀중한 시간인지 생각하니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론 길어야 1시간 30분 가량일 점심시간을 쪼개 하나님 앞으로 나왔을 이들의 마음이 어쩌면 ‘갈급함’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마음을 눈치라도 챈 걸까. 황재영 목사의 설교 메시지에도 하나님의 동행하심에 관한 내용으로 가득했다. 올해 부임한 황 목사는 “일터에서 지친 크리스천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설교를 준비했다”며 “앞으로도 금요직장인예배를 통해 영락교회가 위치한 중구의 여러 직장들을 섬기고 그곳의 크리스천들을 일으켜 세우는 역사가 계속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40년 전 금요 직장인예배 모습. 참석자들은 예배 직후 선교관 옆 공원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친교를 나눴다.
사진출처:영락교회 

 

한국 직장인 예배의 효시

교회에서는 ‘삶의 예배’를 강조하지만, 막상 삶의 현장 속에서 신자들이 예배자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기란 그리 쉽지 않다. 특히 끊임없는 ‘실적’의 압박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이라면 더 그렇다. 직장인 예배는 일터에서 주어진 업무와 직급에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크리스천’이라는 정체성을 고수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자리다. 그뿐만 아니라 일터의 직장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쉼터이자, 나아가 직장 신우회 활동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든든히 감당해 왔다. 

영락교회 직장인예배는 고 한경직 목사의 은퇴 4년 전인 1969년 9월 5일 첫발을 내디뎠다. 한국교회에서는 처음 열린 직장인예배였다. 박조준 목사의 인도로 처음에는 10여 명이 성경공부를 하는 모임으로 시작했다. 당시 교회 주변에는 쌍용을 비롯한 주요 기업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곳에 다니는 직장인들이 점심 후 교회 정원에서 쉬다 가곤 했다. 한경직 목사는 1961년경 고려합섬 신우회를 지도하고 있었는데 박조준 목사의 제안으로 인근 직장인을 위한 성경공부를 시작한 것이 시초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석자들이 지속적으로 늘면서 예배의 형태로 변화했고, 후발주자로 남대문교회(1978년), 종교교회(1980년), 서소문교회(1983년), 정동제일교회(1984년), 새문안교회(1985년) 등도 직장인예배를 시작했다. ‘최초’란 수식에 걸맞게 영락교회 직장인예배 참석자 수는 1980년대 500명까지 증가했다. 그러나 1997년 IMF 금융위기로 직장사회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직장인예배도 영향을 피해 가지 못했다.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많은 이들이 직장을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직장인예배 참석자들 가운데서도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예배 참석 인원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IMF의 여파는 길었다.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태 이전의 모습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9년 창립 50주년을 계기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나 싶었지만, 이듬해 터진 코로나는 기대를 무색하게 했다. 2년 가까이 예배가 중단된 것. 2021년 연말에는 예배가 재개됐다. 그간 예배에 목말랐던 봉사자들과 주변 직장인들은 창립 1주년이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전통을 쌓아가기 위해 모이기를 힘쓰고 있고 차츰 예배자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영락교회 금요 직장인예배의 백미는 직장인찬양대와 회중들이 함께 부른 찬양 순서다. 금요 직장인예배는 예배자들의 ‘참여’에 큰 관심을 두고 순서를 정하고 있다.
영락교회 금요 직장인예배의 백미는 직장인찬양대와 회중들이 함께 부른 찬양 순서다. 금요 직장인예배는 예배자들의 ‘참여’에 큰 관심을 두고 순서를 정하고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은혜

미국산타클라라대학교 석좌교수 조호제 장로는 지난 1978년 ㈜쌍용에 근무하던 시절 영락교회 금요 직장인예배에 참석하던 맴버다. 조 장로는 당시를 회상하며 “업무로 힘들어하던 제게 금요(직장인)예배는 항상 기다려지며 사모하던 은혜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조 장로는 특히 “‘어떤 직장에 있든지 그 자리에서 자족의 비결을 배워 감사한 마음으로 충성을 다하라’는 당시 한경직 목사의 가르침이 지난 40년간의 미국 생활에 큰 힘이 됐다”고 했다.

2019년부터 매주 이 예배에 참석하고 있는 직장인 최수연 씨도 “매주 금요일 점심시간마다 하나님의 크고 높으심 앞에 예배할 수 있다는 것,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감격스럽다”며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예배가 멈췄을 때 비로소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최 씨는 또 “크리스천 동료들과 함께 예배에 참석하며 은혜를 나누고 믿지 않는 동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며 “저를 비롯해 여러 동료들이 신앙을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고 감사를 전했다. 

한편 이날 예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직장인찬양대의 찬양 순서였다. 이날 부른 곡은 찬송가 141장 ‘호산나 호산나’였다. 적은 인원의 찬양대원들이 예배당을 꽉 채우는 수준급 발성과 화음을 선보인 점을 빼면 여느 성가대의 찬양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데 1절과 2절을 다 부른 뒤 3절을 시작하려는데 지휘자가 돌연 회중석을 향해 돌아서는 것 아닌가. 놀란 기자와 달리 다른 이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지휘자의 움직임에 따라 3절을 부르기 시작했다. 

주일 예배에서는 해보지 못했던 신선한 경험이었다. 취재로 참석했지만 어떤 현장보다 확실한 은혜가 있었다. 직장인찬양대 지휘자 이의용 장로는 “이렇게 함께 찬양을 부르면 예배를 ‘보는’ 시간이 아니라 ‘드리는’ 시간임을 자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며 “가뜩이나 각자 다른 교회에서 온 예배자들이 짧은 점심시간에 드리는 예배이다 보니 서로 소통하고 관계를 갖기가 쉽지 않은데 찬양을 함께 올려드리면서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는 의미도 있다”고 소개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