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의 영화읽기]공권력과 인권, 무엇이 우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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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의 영화읽기]공권력과 인권, 무엇이 우선일까?
  • 최성수 박사(문화선교연구원 칼럼니스트, 캄보디아 선교사)
  • 승인 2023.05.03 1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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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수오 마사유키, 드라마, 12세, 2007)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갈릴레이의 일화를 연상케 하는 제목의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는 지하철 치한으로 몰린 한 청년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면서 벌인 법정 투쟁을 다루고 있다.

2007년에 일본에서 개봉된 후 일본아카데미상 11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여우조연상, 미술상, 편집상을 수상했고, 일본의 영화전문지에서 2007년 영화 베스트 10에서 1위를 차지했고, 관객이 뽑은 올해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될 정도로 평단과 관객 양측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2007년 일본 개봉 후 전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영화가 5월 국내 재개봉을 확정했다. 영화는 “10명의 죄인을 놓친다고 해도, 한 명의 죄 없는 사람을 벌하지 말라”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내용은 이렇다.

유죄 선고 확률 99.9%

특별한 직업 없이 살아가던 청년 가네코 텟페이는 회사 취직을 위한 면접을 보러 가는 날에 늦잠을 자는 바람에 서둘러 콩나물 전철에 승차하게 된다. 역무원이 승객들을 안으로 쑤셔 넣으면서 문이 닫히는 바람에 가네코 옷이 끼인 채 출발하였고, 가네코는 그것을 빼내려고 몸을 움직였다. 그 앞에 서 있었던 여학생은 그의 이상스런 움직임을 자신을 성추행한 것으로 여겨 소매를 붙잡는 바람에 그는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가네코는 자신이 결코 하지 않은 일에 대해 굳이 변명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는지 수사 과정에서 대단히 소극적으로 대처한다.

나중에 정식으로 선임된 변호사가 경고하기 전까지 형사가 자신의 진술과 다르게 조서를 작성한 것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담당 형사는 물론이고 처음 유치장에 갇힐 때에 배정된 국선 변호사 역시 그가 잘못을 시인하고 합의하면 약간의 벌금형으로 사건은 마무리될 것이라고 회유한다. 그러나 가네코는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합의할 생각이 전혀 없음을 거듭 밝히는데, 왜냐하면 합의한다 함은 자신이 잘못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10회에 걸쳐 진행된 공판에서 무죄를 입증할 여러 증거들이 제시되었음에도 가네코는 유죄로 판결을 받아 모두를 놀라게 한다.

재판의 목적은 공권력 수호인가 인권보호인가

영화 제목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는 마지막 판결문을 낭독할 때, 가네코가 했던 말 중의 일부다. 판결에 결코 승복할 수 없음을 내비친 것인데, 그는 판사의 유죄판결에 대해 이렇게 말하며 항변한다.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다. 너는 나를 심판하지만 나는 지금 너를 심판한다. 나를 심판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나는 결백하다.”

판결은 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다분히 국가의 공권력을 중심으로 사건을 보는 관점에 따른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사건의 진실을 확인하고 개인의 정당한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국가의 입장에서 사건을 보고 또 공권력의 권위를 지키려는 목적으로 판결을 내렸다는 말이다. 영화는 좁게는 일본의 사법제도를 비판하고 있지만, 좀 더 넓게 본다면, 일본에 만연해 있는 국가 중심의 사고를 비판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정권에 따라 검사의 판단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판사의 판결 역시 달라지는 것은, 만일 법 해석의 차이에서 비롯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다만 공권력 수호를 위해 판단하는 경우라면 그것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불이익을 당할 것인가. 법은 공권력을 옹호하며 대변하기 전에 공권력도 잘못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사건의 진실에 의거해 또 법을 바르게 적용하여 판단해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인권을 우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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