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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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
  • 이의용 교수
  • 승인 2023.04.19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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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용의 감사행전 (40)

이의용 교수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수년 전에 본 기사다. 이집트에 있는 어느 시리아 식당이 평일에 문을 닫았다. 바로 옆에 다른 시리아 식당이 개업을 했기 때문이란다. 시리아 사람들은 같은 업종의 상점이 옆에서 개업을 하면 길게는 사흘 동안이나 문을 닫는다고 한다. 개업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어느 책에서 본 이야기인데 출처를 잊었다. “역 앞에 복숭아 파는 여인들이 여럿 있다. 손님이 한 여인에게서 복숭아를 사려 하자, 그는 옆의 여인을 가리키며 ‘저 사람은 오늘 마수걸이도 못했으니 저 분 물건을 사주세요’라고 부탁을 했다.”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우리 동네에는 꽃을 파는 할머니와 튀김을 파는 아저씨가 나란히 서서 장사를 한다. 날이 저물어 장사를 접고 귀가 준비를 하던 튀김 장사가 꽃 파는 할머니에게 만원 짜리 한 장을 건네줬다. 할머니는 한사코 안 받으려고 했고, 아저씨는 기어코 주머니에 넣어주려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졌다. ‘안 받아! 내가 왜 이 돈을 받아?’ 할머니가 말했다. 그러자 아저씨가 답했다. ‘에이, 할머니, 오늘 장사 공쳤잖아요. 전 그래도 튀김 좀 팔았으니 괜찮아요. 집에 갈 때 그냥 가지 마시고 찬거리라도 사서 들어가세요.’ 할머니는 못 이기는 척하며 1만원을 받아 주머니에 넣는다.”

코끝을 찡하게 하는 이야기다. 요즘 우리는 이런 ‘인정(人情)’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돈에 , 성공에 가려 ‘사람’을 놓치고 산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때로는 손해도 보면서 사는 것인데, 나부터 손해보는 걸 두려워 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가끔 감사학교를 연다. 감사학교를 하면서 ‘내 풍선 찾기’란 게임을 한다. 첫 번째 게임. 참석자 모두가 자기 풍선을 크게 분 후 거기에 자기 이름을 쓴다. 그걸 한 곳에 섞어 놓는다. 그런 후 달려가서 자기 풍선을 빨리 찾아오게 한다. 가장 먼저 찾아 온 사람에게 상을 준다. 두 번 째 게임. 이번에는 5명을 한 조로 편성해 단체경기를 한다. 조원 전체가 자기 풍선을 빨리 찾아오기다. 조원이 다 찾아야 이긴다. 어떤 결과가 나올까? 자기 풍선만이 아니라 동료의 풍선도 서로 찾아아 주게 된다. ‘협력’의 힘을 경험해보는 것이다. 개인 경기보다 단체 경기가 훨씬 더 빠른 시간 내에 모두가 자기 풍선을 찾을 수 있음도 알게 된다. 서로 도우면 모두가 더 빨리 찾을 수 있다.

정신장애 어린이들의 체육 대회 장면을 담은 영상을 가끔 본다. 달리기 경주를 하다가 한 아이가 넘어졌다. 그 순간, 달려가던 아이들이 모두 멈춘다. 그리고는 돌아가서 그 아이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손을 함께 잡고 달려간다. 관중석의 부모들이 감동하여 기립박수를 보낸다. 


인간은 서로 얽혀 있는 존재, 서로 돕고 관용하며 살아야

어느 탐험가가 남아프리카에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달리기 시합을 했다. 1등을 한 아이에게 사탕을 한 바구니 주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경쟁하지 않고 함께 걸어갔다. 이유를 물으니 함께 나눠 먹으면 될 걸 뭐하러 경쟁을 하느냐며 반문을 했다고 한다. 

이런 걸 우분투(Ubuntu) 정신이라고 한다. ‘우분투’란 남아프리카 반투어로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I am because you are.)”-즉 공동체 정신, 인류애를 뜻한다. 우분투 정신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건국 이념이자, 만델라 평화운동의 뿌리가 되었다. 우분투 정신의 핵심은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서로 얽혀 있는 존재이므로 서로 돕고 관용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분투 정신은 이웃 사랑, 이타적 사랑을 강조한 우리 기독교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우리말의 ‘우리’에는 여러 뜻이 있다. 영어로 음이 비슷한 ‘We’와 뜻도 비슷하다. 또한 ‘울타리’처럼 범위나 경계를 설정하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남이가?” 하는 말처럼. ‘우리’를 뒤의 뜻으로 사용하다 보면 ‘우리’의 바깥은 관심 밖 ‘남’이나 싸워야 할 ‘적’이 되기 쉽다. 기독교의 ‘이웃’이나 ‘우분투’는 그러한 ‘우리’를 초월해야 한다. 

오늘 ‘우리 교회’가 그 범위를 너무 좁게 인식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 되어야 할 교회 바깥 사람들도 우리를 ‘끼리끼리의 모임’으로 인식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교회’라는 ‘우리’의 울타리를 헐어야 한다. ‘우리로 들어오라’고만 외치지 말고, 우리의 울타리를 헐고 나가야 한다. 

나아가 이웃을 존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양보하고 이웃을 용서하며 살아야 한다. 왜?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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