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의 토지 매입, 헤세드와 고엘로 이어지는 구원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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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의 토지 매입, 헤세드와 고엘로 이어지는 구원사적 의미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3.04.19 1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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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예언서 해설 (66) - “네가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렘 32:15)

예언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지를 힘있게 전하기 위해 종종 상징행위라 불리는 특별한 일을 수행하곤 했습니다. 예레미야가 허리띠를 물가 습한 곳에 두어 썩게 내버려둔 일(13장), 독신으로 지내며 통상적 사회생활을 멀리한 것(16장), 토기장이가 만든 옹기를 깨뜨린 일(19장), 멍에를 메고 다니며 예루살렘 함락을 예고한 것(27장) 모두가 유다가 겪을 유배의 상황을 설명해주기 위한 예언적 퍼포먼스였습니다. 이들 상징행위들은 유다와 이방 나라들의 악행을 꾸짖는 비난의 신탁, 언약 백성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함을 강조하는 호소, 그리고 이루지 못할 일에 인생을 소모하는 것 같다며 괴로움을 토로하는 ‘고백’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고 역동적인 예언의 메시지와 교차하며 예레미야서의 호소력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수많은 상징행동들 중에서도 사촌인 하나냐의 토지를 물러 준 일은 유난히 돋보입니다. 시드기야 왕의 심기를 건드린 예언으로 옥에 갇힌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예레미야의 사촌인 하나멜이 아나돗에 있는 토지를 대신 물러 달라고 청해올테니 그 토지의 값을 치러주고 정식으로 등기수속을 마치라는 말씀이었습니다(32:6~7). 

예레미야는 말씀대로 토지 매매계약을 공증했습니다.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예레미야는 결국 토지의 명의를 하나멜 앞으로 돌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예레미야의 토지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유다 회복의 약속을 믿는 믿음을 토지거래라는 행위를 통해 증거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토지를 담보로 한 채무를 대신 청산해주고 원소유자가 그 명의를 유지시켜 주는 일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까운 친족이 베풀 수 있는 특별한 사랑으로 여겨졌습니다. 친족을 향한 법적 의무를 뛰어넘는 이 인애(히브리어로는 헤세드)를 수행하는 이를 고엘(goel) 즉 구원자라고 불렀습니다. 구약 룻기에 보면 엘리멜렉의 대가 끊기고 기업이 다른 이의 명의로 넘어가게 된 상황에서 고엘이 등장합니다. 친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홀시어머니를 돌보겠다고 헌신한 모압인 며느리 룻의 헤세드에 감동한 보아스가 그 토지를 무르면서 룻과 결혼까지 하는 각별한 인애를 베풀었고, 그 결과로 태어난 아들이 다윗의 조상이 되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이어졌던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토지 매입은 그처럼 헤세드와 고엘의 정신을 잇는 구원사적 의미를 갖는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바벨론의 손에 넘기신 것이 미움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백성의 거룩함과 영성을 회복하기 위한 사랑에서 나온 것임을 알려주시기 원했던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상징 행동들이 유다의 패망을 예고했던 데 반해, 예레미야가 하나냐의 밭을 산 것은 70년 후 유배가 끝나고 유다가 다시 회복될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상징이라는 점에서도 특별합니다. 예레미야는 이 행동을 위해 향후 70년간 임대도 하지 못할 땅에 자신의 사재를 투척했습니다. 70년 후 귀환의 날에 자신은 이 세상에 있지 않을 줄 알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약속에 자신의 전부를 걸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이 쓰는 ‘상징 행동’이라는 단어가 예레미야의 이 헌신이 갖는 뜻을 담기에는 너무 빈약하게 느껴집니다. 밭을 산 행동은 상징이 아니라 실체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음은 진실했고 그의 희생은 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 목이 터져라 외치는 일이 헛되게 느껴졌다면, 다시 밟아볼 일이 없는 땅을 사기 위해 재산을 던진다는 것 역시 어리석어 보이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그의 선포는 헛되지 않았고, 그의 헌납도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당장은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은 땅에 떨어지지 않고 열매를 맺습니다.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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