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의 ‘선한 목자’ 그림, 영혼의 안식 구하는 마음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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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의 ‘선한 목자’ 그림, 영혼의 안식 구하는 마음 담겨
  • 이상규 교수
  • 승인 2023.04.19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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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 (136) - 카타콤과 기독교 신앙의 상징(13)

양과 비둘기, 목자 등은 카타콤에서 빈번하게 발견되는 이미지인데 여기서 한 번 더 소개하고자 한다. 아래의 것은 키르허 박물관(Museum Kircherianum)에 보관되어 있는데, 본래 에르메테(S. Ermete) 카타콤에서 발굴된 것이다. 그림을 보면 중앙에 선한 목자가 서 있고, 양 옆에는 두 마리의 양이 그려져 있다. 또 목자의 등에도 한 마리의 양이 있다. 우측의 올리브 나무 위에는 비둘기가 그려져 있다. 두 마리의 양은 두 사람의 영혼을,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한다. 이런 점은 카타콤에서 발견되는 다른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흥미로운 점은 이 그림에 기록된 독특한 형태의 글씨이다. 예술적인 글씨 형태인데, 우리 시대의 캘리그라피라고 할까? 캘리그라피라는 말은 ‘아름다움’이라는 의미의 칼로스(κάλλος)와 ‘쓰기’라는 의미의 그라페(γραφή)의 합성어인데, 3세기 당시에도 이런 글씨체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글씨가 후대의 관찰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존 버곤(John William Burgon, 1813~1888)에 의하면 이런 글씨체는 바티칸 도서관에 보관되어 버질(Virgil)의 글씨체와 매유 유사하다고 말한다. 버곤은 영국성공회 고교회파 감독으로서 위대한 학자였고 1876년에는 치세스터 성당의 주임사제가 되었는데, 창세기의 모세저작권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성경의 무오성을 강변했던 인물이자 카타콤의 미술품과 모자이크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한 학자였다. 필자도 그의 연구에 큰 도움을 입고 있다. 그런데 버곤은 4세기경의 버질의 세 필사본에 대해 말하면서 이중 한 편의 글에는 버질의 초상화가 포함되어 있고, 또 거기에는 목자도 그려져 있는데 카타콤에서 발견된 선한 목자상과 매우 유사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그림 속에 기록된 라틴어는 무슨 뜻일까? 다소 해독하기 어렵지만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KALEMERE DEUS REFRIGERET SPIRITUM TUUM UNA CUM SORORIS TUAE HILARE. “오 칼레메레여, 하나님께서 네 자매 히라라의 영혼과 더불어 네 영혼을 새롭게 하기를 원하노라”(O Kalemere, may God refresh thy spirit, together with that of thy sister Hilara)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시련의 시기를 살아가면서 양을 돌보는 선한 목자에게 영혼의 안식을 구하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그려져 있다.
선한 목자상은 카타콤 미술에서 가장 흔한 그림인데, 보통 잃은 양을 찾아 나선 목자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아래의 그림이다.

이 그림에도 두 마리의 비둘기와 목자 양편에 두 마리의 양이 그려져 있다. 카타콤에서 발굴된 것이지만 이 그림도 키르허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백석대 석좌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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