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도 ‘진지한 믿음’으로 묘사… 루시안 향한 오해 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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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도 ‘진지한 믿음’으로 묘사… 루시안 향한 오해 풀려
  • 이상규 교수
  • 승인 2023.04.1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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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 (148) - 헬라로마사회에서의 기독교 비판(4)

<페레그리노스의 죽음>이라는 책에서는 기독교 공동체가 고향을 등지고 떠돌아다니던 페레그리노스라는 사기꾼을 어떻게 그 일원으로 받아들였는지, 시리아에서 투옥된 그를 어떻게 기독교 공동체가 후원했는지, 그리고 그가 공동체의 규범을 어겼을 때 어떻게 축출했는지를 언급하고 있다. 그가 기독교와 접촉했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고 그들과 같이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165년 올림픽 경기 기간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책에서 기독교와 관련된 언급은 전체 45개 절로 구성된 이 책의 11, 12, 13과 16항, 곧 4개 항에 지나지 않는데, 그것도 직접적으로 기독교 자체에 대한 언급이라기보다는 페레그리노스라는 인물의 생애를 언급하는 중에 사례로 언급했을 뿐이다. 그 기록 중 가장 중요한 13절의 일부분은 다음과 같다.

“이 비천한 자들(기독교도들을 가르킴, 필자 첨가)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이라고 확신함으로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바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첫 번째 입법자가 한편으로 그리스의 신들을 부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십자가형을 당한 그 소피스트를 경배하고, 그의 율법을 따라 삶을 영위하면서 그들 모두 서로를 형제라고 믿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떠한 확실한 증거도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공평하지 않는 모든 것을 경멸하며, 모든 것을 공공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바친다”는 말은 “많은 이들이 자원하여 자신들을 넘겨준다”는 뜻인데 순교를 마다하지 않는 삶의 태도를 의미하고, ‘십자가형’이란 어자적으로 “말뚝에 찔리는 형벌”을 의미한다. 또 루시안이 말하는 소피스트란 바로 예수를 가리킨다. 이 글을 통해 이교도 풍자 작가 혹은 희극적 대화록(comic dialogues)의 창시자로 불리는 루시안의 기독교 인식을 알 수 있는데, 이 기록은 오랜 세월 동안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글이 직접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공격을 목적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루시안의 기독교 언급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한때 호주에서 가르쳤고 후에 캐나다 캘거리대학교 고전학 교수로 일했던 배리 발윈(Barry Baldwin)는 루시안은 기독교에 대해 중립적으로 때로는 동정적으로 기록했다고 평가했다(Studies in Lucian, Toronto, 973, 102ff.). 실제로 루시안은 기독교를 가리켜, 13절에서 아무런 증거도 없이 믿는 자들이기에 ‘불쌍한 자들’(κακοδαίμων)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믿음을 빌미로 돈을 챙기는 이들에게 이용당하는 점에 대한 유감을 표시한 것이다.

또 페레그리노스가 “기독교인들의 놀라운 교리를 공부했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놀라운’(τὴν θαυμαστὴν) 이라는 수식어 또한 경멸의 뜻으로 볼 수 없다. 루시안의 이 책 12절에서는 페레그리노스가 시리아에서 투옥되는데, 모종의 기독교 관련 활동을 하다가 투옥된 것으로 보인다. 루시안은 그의 투옥 경위를 자세히 기록하기보다는 그의 투옥을 ‘재앙’(συμφοράν)으로 보았고,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옥바라지를 했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도 루시안은 기독교도들이 갇힌 자를 어떻게 돌보았는가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를 경멸했다고 보기 어렵다. 도리어 루시안은 그의 책 13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순수하고 진지한 믿음을 가진 이들로 묘사한다.

20세기 중반에 와서 루시안 연구자들은 ‘페레그리노스의 죽음’은 기독교 비판과 무관하다는 점에 동의함으로서 루시안에 대해 씌워졌던 무신론자라는 굴레를 제거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계에서는 아직까지도 루시안은 기독교를 비판하고 공격한 이방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백석대·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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