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어리 소금’에서 ‘가루 소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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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어리 소금’에서 ‘가루 소금’으로!
  • 이의용 교수
  • 승인 2023.04.12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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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용의 감사행전(39)

서울 여의도를 거쳐 퇴근을 하던 중이었다. 아침부터 비가 엄청나게 쏟아져 다들 퇴근을 서둘러서인지 도로가 많이 막혔다. 비만 오는 게 아니라 천동도 쳤다. 그러더니 가로등도 꺼지고 인근 건물의 불빛도 꺼졌다. 신호등도 꺼졌다. 내가 통과해야 할 사거리는 아직 십 수 미터 남아 있었는데 차들이 멈추고 말았다.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 앞이 어떤 상황인지 내려 확인하기도 어려웠다.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살펴보니 신호등이 꺼진 사거리는 차들이 뒤엉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교통경찰은 보이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렸는데, 갑자기 앞의 차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주 느리게... 드디어 사거리가 내 눈앞에 들어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비를 흠뻑 맞으며 분주하게 전등을 흔들며 신호등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물에 빠졌다가 나온 사람처럼 옷과 얼굴, 머리가 훔뻑 젖은 채... 그런 그의 ‘권위있는’ 지시에 많은 운전자들은 묵묵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나도 순서가 되어 사거리를 통과했다. 참 고마웠다. 그러나 집으로 향하는 내내 마음이 너무도 불편했다. 그분에게 너무도 미안했다. 왜 나도 함께 교통정리에 나서지 못했을까. 아니, 내 차의 우산이라도 꺼내 그를 씌워주지 못했을까...

얼마 전, 전주역 택시 승차장에서 줄을 서 있었다. 비가 많이 오니 줄이 길었다. 내리고 타는 이들이 우산을 펴고 접느라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비옷을 입은 ‘한 사람’이 일일이 택시 문을 열어주고 닫아주었다. 덕분에 택시의 흐름이 평소보다 더 빨랐다. 내가 탄 택시 기사에게 그가 누구인지 물어봤다. 모범택시 기사인데 비만 오면 한결같이 나와서 봉사활동을 한다며 그도 고마워했다. 연락처를 알아봐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아직 받지는 못했다. 비가 오는 날 거기를 가면 만날 수 있으려나...

승용차 운전을 하다 보면 위험한 곳, 막히는 곳에 서서 교통정리를 하는 모범택시 운전기사들을 자주 보게 된다. 매연을 마시며 그런 일을 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늘 고맙게 여기며 손을 흔들어주며 지나가곤 한다. 그런가 하면 군복 차림의 해병동우회 봉사자들도 자주 보게 된다. 지역사회의 행사 등으로 도로가 막힐 때에는 어김없이 나타나 질서를 회복시켜준다.


내가 바로 그 ‘한 사람’이 되자!

십여 년 전, 대전역에서 서울행 KTX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 앉아 있던 한 할머니가 갑자기 안절부절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사연을 물으니, 약을 넣은 가방을 방금 택시에 놓고 내렸단다. 노인 혼자서 다시 병원에 가서 처방 받고 약을 지어 기차를 예약해서 서울로 가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더구나 금요일이라 KTX에 빈 자리도 없었다. 기차가 들어올 시각은 다가오는데...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보기로 결심을 하고, 우리 둘의 예약부터 취소하려고 매표소로 향했다.

그때 방송이 울려나왔다. 다급한 목소리로 “택시에 약 가방을 놓고 내리신 할머니가 계시면 역무원에게 오라”는...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노인을 그 자리에 두고 매표소 앞으로 달려가니 택시 기사가 약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함께 노인에게 달려가 약 가방을 건네주었다. 그는 우연히 뒷자리에서 약 가방을 발견하고는 급히 차를 돌려 역으로 달려왔단다. 자기 어머니 생각이 나서... 노인은 고마워 어찌할 줄 몰라 했다. 그때 기차가 들어왔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었다.

안타깝게도 요즘 우리 사회에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더불어 살려는 시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심정지로 쓰러진 사람에게 달려가 심폐소생술로 살려내는 ‘한 사람’, 아이 손을 잡고 다리에서 뛰어내리려는 이를 구하는 ‘한 사람’의 버스 운전기사, 그리고 그를 도우며 기다려주는 승객 ‘한사람들’, 교통 사고 현장에 몰려들어 차를 번쩍 들어 생명을 구하는 ‘한 사람들’, 폐지 실은 리어카를 뒤에서 밀어주는 어린 학생 ‘한 사람들’, 보이스 피싱 사기범을 잡아 노인의 돈을 되찾아주는 의로운 ‘한 사람’, 뺑소니 차량을 따라가 더 큰 사고를 예방하는 택배 기사 ‘한 사람’도 있다. 

소금은 맛도 내지만 부패도 막는다. 덩어리 소금은 아무리 크고 단단해도 그 역할을 하기 어렵다. 잘게 부숴져 가루(흩어진 교회)가 돼야 한다. 가루 소금이 되어 세상 속에 들어가야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다. 목회자도 교인들도 ‘더 큰 덩어리 소금(모인 교회)’ 이루기에만 골몰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자. 어떻게 하면 세상 속에 흩어져 세상에 맛을 더해주고 부패를 막아주는 ‘한 사람’이 될 것인지 고민해 보자. “나부터!”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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