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에 앞서 성경 잘 가르쳐 ‘분별의 능력’ 키워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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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에 앞서 성경 잘 가르쳐 ‘분별의 능력’ 키워줘야
  • 박찬호 교수(백석대 조직신학)
  • 승인 2023.04.1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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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교수의 목회현장에 꼭 필요한 조직신학
6) 어떻게 교리를 가르칠까?

필자는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직접적으로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교회에서 설교시간에 교리를 가르치는 것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스스로도 설교 시간에 교리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자체를 전하려고 노력한다.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교리를 설교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면 의아해하는 모습을 간혹 접하곤 한다. 교회의 중직자나 청년부의 리더들이라면 모를까 일반 교인들을 대상으로 예배 시간에 교리교육을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구역의 공과를 성경 자체가 아니라 교리적인 내용을 다루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대학청년부 모임에서 교리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교리교육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대학교에서 젊은이들을 전도하는 대학생 선교단체가 있다. 대학생 선교단체의 간사들은 전도하고 성경을 가르치다가 신학의 필요를 느끼게 되어 신학교에 입학한다. 신학을 공부하며 사역의 과정 속에 고민이 되었던 것이 해결이 되기도 하고 자신의 사역에 날개를 달았다고 기뻐한다. 그런데 어떤 신학생의 경우는 이와는 상황이 전혀 다른 경우도 있다. 성경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신학교에 들어와서 신학을 배워서 성경으로부터 더 멀어지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말하자면 그런 신학공부는 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해가 될 수도 있다.

아시아 국가 중에 필리핀은 예외적으로 기독교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이다. 필리핀은 16세기 중엽부터 스페인의 지배를 받아 인구의 80% 정도가 가톨릭신자인 나라다. 1898년 스페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필리핀은 미국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자연히 개신교 선교의 새로운 장이 활짝 열리게 되었지만 거의 100여년에 걸친 미국 개신교의 필리핀 선교는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그 이유는 미국의 개신교도들이 주도하였던 필리핀 선교가 필리핀 현지와는 별반 상관없는 서구신학의 논쟁을 소개하는 것에 치우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장로교회가 신앙고백의 표준으로 삼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는 태어나자마자 어린 시절에 사망하는 유아들의 구원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왜냐하면 유아사망률이 매우 높았던 당시로서는 이 부분에 대한 신학적인 대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는 신자의 위로가 어디로부터 오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을 한다. 하지만 웨스트민스터소요리문답은 인생의 제일되는 목적을 묻는 질문으로부터 시작을 한다. 혹자는 이 부분을 지적하며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이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에 비해 추상적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이 목회적인 관심으로 당시의 성도들의 고민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게 바른 비판이라고 볼 수는 없을 듯하다.

교리를 가르쳐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우리는 긍정적으로 대답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교회에서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교리를 가르치되 교리적으로 세뇌하는 것이 아니라 교리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성경을 통해 확인하고 설득시켜야 한다. 오늘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잘못된 이단적인 행태들을 너무나 많이 목도하고 있다. 어이없는 황당한 내용에 세뇌가 되어 온 가정이 망가지는 경우를 얼마든지 우리는 주변에서 목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리를 가르쳐야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교리를 가르칠 것인가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 더 많은 시간 자신의 삶을 노출시키도록 성도들을 목회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성경을 잘 배워 삶에 적용하는 과정을 통해 교리적인 분별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무작정 교리를 가르치는 것보다 몇 배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리고 성경의 분량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점에서 목회자와 성도 양편에서 함께 노력해야할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히 5장 12절)”라는 비판이 혹여 한국교회를 향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정답을 암기하게 하는 식의 교리교육은 바른 교리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성경 전체를 잘 가르쳐 건전한 분별력을 가지게 하면 좋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신학을 하면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 보다 신학적인 소양을 갖춘 평신도 지도자들이 많이 배출되는 것은 한국교회를 위해서 매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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