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교사의 아버지
상태바
한국 선교사의 아버지
  • 최순호 장로(원천교회)
  • 승인 2023.04.12 1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머니와 함께하는 행복한 성지순례 3
이기풍 목사 순례기념관(1)

한반도 남단.

바닷바람에 매화향 짙은 전남 여수 금오도 우학리교회 이기풍 목사 순교기념관을 찾았다.

여수 금오도 비렁길 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금오도 가야 한다. 10시 30분 배를 타겠다고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했는데 이미 여객터미널 앞은 금오도로 들어가려는 차량이 긴 꼬리를 물고 있었다.

“어머니, 신분증 좀 주세요”

“신분증은 왜?”

“음.. 배를 타려면 신분증이 있어야 해요”

차를 세우고 100m 달리기를 했다. 터미널 안은 이미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대기 순서 2번입니다”

희망을 가질만한 번호였다. 하지만 바로 앞 대기번호 1번만 승선하고 배를 타지 못했다. 부두에 앉아 떠나가는 배를 보며 어머니와 모처럼 망중한을 즐겼다. 12시 30분에야 금오도로 출발하는 배에 올랐다.

금오도는 섬 전체를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인 비렁길로 유명하다. 바다를 끼고 호젓하게 걷는 쉼의 길 끝에 한국선교사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이기풍 목사의 선교기념관이 있다. 어떻게 남도의 끝자락에 한국기독교를 대표하는 인물인 이기풍 목사의 선교기념관이 있을까?

어머니와 함께하는 국내 성지순례 여행을 떠나면서 항상 유튜브를 검색해 내용을 카톡으로 공유를 한다. 6년 전 처음 스마트폰을 사드릴 때는 무슨 스마트폰이냐고 돈 드는데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셨는데 요즘엔 손자들하고 카톡도 하시고 유튜브로 요리비법 검색까지 아주 스마트한 삶을 살고 계신다.

“어머니 이기풍 목사님 공부는 하셨어요?”

“어릴 적에 목사님 이야기를 좀 듣기는 했는데 이번에 제대로 공부를 했지”

한국기독교 눈물의 성상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 가운데 이기풍이라는 인물이 있다. 이기풍은 젊은 시절 평양을 주름잡던 깡패였다. 1868년 11월 21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어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이기풍이라는 깡패를 만날 수 있을까. 역사 교과서에 들어 알고는 있지만 희미한 기억 속에 먼지가 펄펄 날리는 신미양요의 원인을 제공했던 제너럴셔먼호 사건이 일어난 것이 고종 3년인 1866년이니 이기풍은 그 시절 태어났다.

평양은 역사적으로 고조선의 수도였고 고구려의 후기 수도였다. 수도의 지위를 잃은 이후로는 고려시대 3경 가운데 하나였고 조선시대에는 수도인 한성 다음으로 큰 대도시였다. 한반도 북쪽의 자존심이자 심장이라 할 수 있다. 이기풍은 이곳에서 주먹으로 먹고사는 깡패 두목이었다. 한마디로 무서울 게 없는 무소불위의 사람이었다.

금오도 우학리교회
금오도 우학리교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