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겨울 전기장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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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겨울 전기장판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3.03.31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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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로 몸이 움츠러드는 겨울은 해마다 죽지도 않고 또 찾아 자취생을 괴롭힌다. 원룸방을 작은 요새 삼아 한숨소리조차 새나가지 못하게 모든 틈을 틀어막아보지만 바닥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냉기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삼겹살 한 끼에도 벌벌 떠는 대학생에게 보일러는 사치. 이때 전기장판 하나 틀어놓고 영혼의 단짝 솜이불을 겹겹이 두른 채 콩벌레마냥 몸을 말고 있으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전기장판을 발명한 이를 칭송하며 나만의 작은 낙원에서 시린 계절을 버티곤 했다.

꽃봉오리가 고개를 내미는 봄의 초입에 때 아닌 전기장판 이야기를 꺼내느냐고 할 수 있겠다. 이유는 기독교 공동체가 자칫 잘못하면 전기장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쳐서다. 전기장판의 따뜻함에 취해 있다 보면 바깥에 나갈 생각일랑 안개처럼 사라진다. 당장의 온기를 전해주는 선물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온기에 안주하게 되면 나태라는 족쇄가 몸을 옥죈다.

언제부턴가 교회의 교육부서가 착한 아이들의 온실이 된 것만 같아 안타깝다. 소위 좀 논다는 아이들도 경계 없이 발을 들일 수 있었던 교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내가 믿는 신앙에 궁금증을 갖고 ?”라는 질문을 던지던 아이들은 진작에 전기장판을 끄고 솜이불을 걷어찼다. 수많은 교회의 모습을 일반화할 순 없겠으나 지금의 교회엔 어릴 때부터 부모님 손에 이끌려 주일이면 교회에 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말 잘 듣는 아이들이 대부분인듯 하다.

기도도 열심, 묵상도 열심, 봉사도 열심이지만 무균실을 벗어난 것처럼 교회 밖 세상에는 면역력이 취약하다. 분명 내가 아는 교회는 착한 목사님과 언니, 오빠, , 누나들이 있는 곳이었는데 세상에선 기독교를 향한 날선 비판이 쏟아진다. 이성과 논리에 바탕한 물음에 어릴 적 교회에서 배운 것들을 끄집어내 보지만 이내 말문이 막힌다.

다소 자극적인 묘사일까. 하지만 분명 한국교회에서 관찰되는 단면 중 하나다. 결국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 살아야 한다. 세상 속에 있는 교회 역시 착한 아이들만을 위한 온실이 아니라 모든 것을 수용하는 바다와 같은 공간이 됐으면 한다. 교회 말 잘 듣는 교인을 복사해내는 곳이 아니라 세상의 풍파와 끝없는 회의 가운데서도 끝끝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한 사람의 신앙인을 길러내는 곳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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