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나는 이들은 ‘특별한 한 사람(Only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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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나는 이들은 ‘특별한 한 사람(Only One)’
  • 이의용 교수
  • 승인 2023.03.22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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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용의 감사행전(36)

기업에 있을 때 어느 사장님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왔더니 함께 일하는 여직원이 커피 맛이 어땠느냐고 물어본다. 맛에 좀 둔감한 바여서 그냥 좋았다고 해주었다. 알고 보니, 내가 사장실로 향한 후 사장 비서가 나의 커피 취향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더라는… 손님의 커피 취향을 미리 알아보고 잘 대접하려는 배려가 참 고마웠다. 

한번은 손님 몇 분을 모시고 커피숍에 갔다. 주문을 받는 직원이 쟁반에 여러 커피잔을 들고 오더니 내 것부터 놨다. 손님들에게 먼저 드리라며 내 잔을 옆자리로 슬며시 밀어놨다. 그러자 직원은 내 잔을 다시 거두고는 손님들에게 차례차례 잔을 드렸다. 그리고는 아까 그 잔을 내 앞에 다시 내려놨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으니, 손님 한 분 한 분을 생각하며 커피를 탔기 때문이란다. 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랜만에 손님 대접을 제대로 받은 것 같아 우리 모두는 기분이 참 좋았다. 여러 사람 중 한 사람(One of Them)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Only One)이 된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내 서재 책꽂이에는 아이들이 써준 카드가 전시돼 있다. 생일 때 손주들이 만들어준 거다. 요즘엔 이런 정감있는 손편지를 받아보기가 어려워졌다. 성탄절이나 부활절, 설날이나 추석, 생일에 우표가 붙은 카드를 받아본 지는 정말 오래되었다. 카톡 메시지가 그 자리를 완전히 차지해버렸다. 비록 카톡이지만 처음엔 제법 긴 문자가 담기더니, 언제부터인가 몇 자 되지 않는 글자마저 사라졌다. 그 대신 기성복 같은 그림카드가 그 자리를 대신해버렸다. 만든 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카드를 ‘재활용’하다 보니, 똑같은 그림이 오간다. 문제는 거기에서 나를 향한 뜻, 마음을 전혀 읽을 수가 없다는 것. 어떤 이는 매일 아침마다 누군가 만든 그림이나 글, 심지어 가짜 뉴스를 성실히 보내주는데 정말 ‘공해’가 아닐 수 없다. 용량이 큰 동영상은 더욱 그렇다. 거기엔 그와 나의 사연은 한 자도 없다. 보내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이런 ‘영혼이 없는 카드’보다는 단 한 줄이라도 ‘우리’의 사연을 담았으면 좋겠다.

 

서로 ‘이름’을 불러주자!

아주 오래 전에 어느 대규모 교회가 총동원 전도에 나선 적이 있다. 어느 주일에 전 교인이 전도지를 들고 시내로 나가 나눠줬다. 그로부터 몇 일 후 환경미화원 단체가 교회로 몰려왔다. ‘전도지 쓰레기’ 때문이다. 나중에 들으니 환경미화원들을 초청해 사과를 하고 선물을 주며 위로해주었다고 한다. 어느 목사님이 전도지를 잘 만들고 싶다며 조언을 해달란다. 그래서 이런 제안을 해주었다. 우선, 전도 대상자를 명확히 하자. 그리고 그 사람만을 위한 단 한 장의 전도지를 인쇄하자. 그 사람의 이름도 넣고. 전도지를 받은 이가 도무지 버릴 수가 없게 가장 고급스럽게. ‘아무에게나’, ‘보거나 말거나‘ 건네주는 전도지를 도대체 누가 보고 감동하겠는가. 세례식이나 시상식, 수료식 같은 것도 ’단체로‘ 하지 말고 한 사람씩 하면 어떨까.

세익스피어는 대화를 할 때에도 상대방을 ‘오직 한 사람’으로 대하라고 당부한다. “자기 자신의 말은 활발하게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동안을 휴식시간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없도록 하라. 자기가 말할 때는 생기있게 보이지만 상대방이 말할 때는 뚱한 표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총명할지라도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사기를 저하시킨다. 오직 상대방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라. 눈이나 귀가 다른 사람을 향하지 않도록 하라. 집중은 대단히 힘든 일이지만 상대방에게는 최고의 서비스다. 내가 상대방과 전적으로 함께 있음을 느끼게 하라.”

우리 주님께서는 한 영혼의 가치를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셨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 친히 이름을 부르시며 전적(全的)으로 함께 하신다. 우리도 우리가 만나는 이들을 ‘특별한 한 사람(Only One)’으로 대하자.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이 설명해준 대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 그에게로 가서 나도 / 그의 꽃이 되고 싶다. / 우리들은 모두 / 무엇이 되고 싶다. /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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