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신발 신고 그의 입장에 서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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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 신발 신고 그의 입장에 서보라
  • 이의용 교수
  • 승인 2023.03.15 10:2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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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용의 감사행전(35)

유승호가 아역으로 출연했던 영화 <집으로>. 엄마가 상우를 산간 오지의 친정집에 맡긴다. 그래서 생전 처음 만난 외할머니. 할머니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할머니는 손주 상우에게 정성을 다하지만,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여러 사건이 일어난다. 상우는 그런 할머니를 적대시하며 버릇없이 대한다. 드디어 엄마가 데리러 올 날이 다가오자, 상우에게는 걱정거리가 생기기 시작한다. 자신이 떠난 후 혼자 남을 할머니. 말을 못 하니 전화도 할 수 없는 할머니. 아프기라도 하면 어쩔 것인가 하는….

그래서 편지를 쓸 수 있게 할머니에게 글을 가르쳐본다. “아프다”, “보고 싶다”. 그렇지만 그게 쉽지 않다. “전화도 못 하는데 편지도 못 쓰면 어떡해”라며 안타까워서 어찌할 줄 모른다. 결국, 아플 때 보낼 편지 “아프다”와 보고 싶을 때 보낼 편지 “보고 싶다”를 그림으로 그려 편지 봉투에 넣고 주소까지 써서 남겨준다. 그냥 우체통에 넣기만 하면 되게. 

그리고 데리러 온 엄마를 따라 버스에 오른다. 멀어져가는 할머니를 향해 울면서 손을 흔들어 댄다. 이 장면의 영상은 지금도 감동적이다. 할머니를 적대시하던 어린 상우가, 듣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할머니의 입장이 되어 대책을 마련하려 애쓰는 모습은 ‘공감’과 ‘역지사지’, ‘배려’가 무엇인지를 잘 설명해준다.

옛날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음식점이 많았다. 그런 음식점 신발장엔 어김없이 이런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신발 분실 시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냄새나는 신발을 비닐 주머니에 싸서 들고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한번은 그게 귀찮아 그냥 들어갔다가 누군가 내 구두를 신고 가버려 다른 사람의 구두를 신고 돌아와야 했다. 남의 구두를 신어보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영어로 ‘put oneself in someone`s shoes’라고 한다. 내 발에 맞지 않는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싣고, 그의 입장에 서보는 게 역지사지다.

간디가 기차에 오르다가 신발 한 짝을 떨어뜨렸다. 그런데 기차가 이미 떠나 떨어뜨린 신발을 주울 수가 없었다. 그러자 간디는 남은 신발 한 짝을 얼른 벗어 밖으로 던졌다. 일행이 놀라 이유를 묻자, 간디는 이렇게 답했다. “그래야 신발을 주운 사람이 신발을 제대로 사용할 게 아닌가.” 내가 좋아하는 그의 어록 “My life is my message!”가 바로 이런 뜻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선다는 게 이런 것이다.

 

남을 돕는 데에도
깊고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청량리역 부근 답십리 굴다리에는 ‘밥퍼 공동체’가 있다. 이곳에는 아침마다 150여 명의 노숙자, 무의탁 노인들이 100미터가 넘게 줄을 선다. 밥을 타려고. 많은 이들이 식사 비용을 기부해주고, 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현장에서 식사를 준비해 나눠주고 있다. 벌써 35년이나 됐다니 기적적인 일이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 동대문구청이 건축법 위반으로 다일공동체를 고발하여 봉사활동을 중단할 위기에 처했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밥퍼 공동체는 단순한 ‘무료’ 급식처가 아니다. 자율적이기는 하지만 최소한의 급식비를 받는다. 일금 100원. 일종의 ‘자존심’ 유지비다. 그들 스스로 ‘걸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배려를 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입구에서 나눠준다) 남을 돕는 데에도 이렇게 깊고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어느 슈퍼마켓, 1만 원권을 든 허름한 젊은 부인이 분유통 판매대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가격표엔 ‘11,000원’이라 씌어 있었다. 부인은 더 싼 분유통이 없는지 여기저기를 살폈다. 이걸 바라본 점원이 다가오더니 분유통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통 하나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분유통 하나가 약간 찌그러졌다. 점원은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찌그러진 통을 집어 들더니 그 부인에게 권했다. “이거 만 원에 가져가실래요?” 부인은 고마워하며 계산대로 향했다. 만 원을 받은 점원은 슬며시 자기 지갑에서 천원을 꺼내 함께 입금했다. 남을 돕는 데에도 이렇게 깊고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라면 상자들을 가져가 쌓아놓고 전달하면서 도움을 받는 이들과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다. 이런 걸 ‘빈곤 포르노’라고 하던가. 남을 돕는 데에도 깊고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사진에 찍히는 이들의 처지를 생각해 봤으면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고 필요를 채워주는 것-그것이 우리 주님이 가르쳐주신 사랑이고 배려다.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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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흥조 2023-03-19 06:41:56
고운 글, 감사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