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칼럼]잘 사는 것이 바로 잘 죽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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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잘 사는 것이 바로 잘 죽는 것
  • 라제건 이사장(각당복지재단)
  • 승인 2023.03.0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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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당복지재단]삶과 죽음을 생각하다②
각당복지재단 라제건 이사장
각당복지재단 라제건 이사장

한 거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103년의 세월을 뒤로 한 채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1990년 여름,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김옥라 박사님은 ‘죽음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사랑하는 사람을 이렇게 떼어놓고 고통스럽게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죽음에 대한 화두를 공개적으로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고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를 각당복지재단 산하에 설립하였습니다. 그 후 삼십일년의 삶을 죽음교육에 혼신의 힘을 쏟다가 2021년 여름 그토록 사랑하던 남편 곁으로 떠났습니다.

‘잘 사는 것이 바로 잘 죽는 것이다’ 김옥라 박사께서 늘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입니다. 남편과 사십여 년을 함께 살던 대지의 한 켠을 뚝 떼어 헌납하여 각당복지재단 회관을 건축하였습니다. ‘전 국민이 죽음교육을 받을 때까지’ 이것이 그분이 남기신 유업입니다.

부산 피난시절 걸스카우트를 시작하며 배우기 시작한 자원봉사에 대한 이해는 감리교여선교회 세계회장을 거쳐 각당복지재단을 설립하기까지 이어졌습니다. 자원봉사를 바탕에 둔 죽음준비교육은 지금도 조용히, 그러나 활발하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죽음준비교육 보다 ‘웰다잉’이라는 단어가 더 널리 쓰이는 것 같습니다만 ‘삶과 죽음’을 하나로 인식한 김옥라 박사님의 인식은 그대로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김옥라 박사님은 잘 사는 것이 바로 잘 죽는 것이라는 평소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며 떠나셨습니다. 신장의 기능이 떨어져가는 중에도 투석은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미리 작성해 두었습니다. 한밤중에 방에서 낙상으로 고관절 골절이 되어서도 아침이 될 때까지 무려 네 시간을 윗층에서 살고 있는 아들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 고통을 참고 견디었습니다.

극심한 고통을 견딜 수 없어 뼈를 고정하는 수술을 하실 때도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그대로 편히 떠나실 수 있도록 의료진에게 부탁하였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정신이 조금씩 혼미해져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겨드린 후에는 정신이 돌아와 ‘이제 살아났어요. 고맙습니다’라며 어린 아이 같은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시다가 며칠 뒤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본인이 겪은 남편과의 사별로부터 출발해 모든 사람을 죽음으로부터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살아있는 시간동안 보람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기위해 온 힘을 쏟았던 김옥라 박사님은 남들을 돕고 사는 삶이 자신을 위해 가장 잘 사는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떠나셨습니다. 이제 그분의 가르침을 받았던 많은 분들이 삶과죽음에 대한, 웰다잉에 대한 이야기들을 열심히 전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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