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차를 피하는 세상, 차가 사람을 피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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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차를 피하는 세상, 차가 사람을 피하는 세상
  • 이의용 교수
  • 승인 2023.03.08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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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용의 감사행전(34)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부주의로 사고를 내면 가중처벌을 받게 된다. 김민식 어린이가 안타깝게 희생을 당한 후 생긴 법이다. 그래서 ‘민식이법’으로 불린다. 이 법이 처음 시행될 때, 스쿨존인 걸 미처 모르고 달리다가 속도를 위반하여 나도 몇 번 벌금을 낸 적이 있다.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나는 이 법이 참 좋다고 생각한다. 어린아이들의 생명을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횡단보도를 질러 우회전할 때 지켜야 할 법이 시행되고 있다. 신호등이 있는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려면 두 개의 횡단보도를 거치게 된다. 전방 신호가 적색인 경우에는, 첫 번째 횡단보도 신호가 녹색이면 일시정지 후 조심해서 우회전을 할 수 있다. 적색이면 천천히 우회전을 하면 된다. 전방 신호가 녹색인 경우에는, 두 번째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있을 때엔 일시정지 후 우회전을 해야 하지만, 보행자가 없을 때에는 천천히 우회전을 하면 된다. 두 번째 횡단보도가 적색이면 천천히 우회전을 하면 된다. 

그런데 내용이 너무 복잡해서 횡단보도가 있는 곳에서 우회전을 할 때마다 여간 조심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인지 횡단보도 교통사고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문제는 신호등이 없는 곳에서다. 좁은 길이나 주차장 같은 곳에서는 차가 흉기가 될 수 있다. 특히 속력을 내서 달리는 차는. 실제로 그런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요즘 학교폭력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학교에서 강자가 약자를 폭력으로 괴롭히는 게 ‘학폭’이다. 이런 폭력은 군대, 직장, 심지어 종교집단에서도 일어난다. 지역 차별이나 인종 차별도 폭력이다. 권력자들이 법이나 인맥을 이용해 힘없는 국민을 괴롭히는 건 학폭과는 비교할 수 없는 범죄 행위다.

노인들은 무단횡단을 자주 한다. 다리가 아파 서서 기다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걸 알아낸 어느 공무원이 ‘장수의자’란 걸 만들어 앉아서 기다리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도록 했다. 그러자 무단횡단이 줄어들었다. 이게 바로 약자를 위한 배려다. 특정한 색깔을 감지하지 못하는 색맹, 색약자들을 위해 안전 표지판을 만드는 것도 약자를 위한 배려다. 여러 해 전, 서울대 신문방송학과 학생들이 폐지를 주워 운반하는 노인들의 손수레에 광고판을 만들어 달아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들은 동네 음식점들로부터 광고를 수주해서 노인들이 계속 광고료를 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 덕분에 노인들 수입도 좋아지고, 음식점들 매상도 많이 올랐다고 한다.

 

약육강식의 ‘동물의 왕국’을
‘생명의 세계’로!


세상에는 약자가 많다. 신체가 약한 이들, 정신력이 약한 이들, 가난한 이들, 권력이 없는 이들 등…. 약육강식의 ‘동물의 왕국’ 같은 사회에서는 폭행을 당하거나, 강도를 당하거나, 왕따를 당하거나, 사기를 당하면 가해자가 아닌 당한 사람 잘못이 된다. 그래서 더 큰 힘을 기르려, 더 큰 권력을 잡으려, 더 많은 돈을 벌려고 경쟁을 한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꿈꾸는 세계는 이런 ‘동물의 왕국’이 아니라 ‘생명의 세계(하나님의 나라)’다. 생명의 세계에서는 어머니가 아이를 돌보듯이 강자가 약자를 돌본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기본적으로 익혀야 할 태도 중 하나는 약자를 보살피고 돕는 일이다. 

그리스도인은 우회전을 할 때, 신호등 없는 곳에서 운전을 할 때 어떻게 약자인 행인을 보호할 것인지 늘 주의해야 한다. 법이나 신호등은 그걸 해결해주지 못한다. 지금 미국 샌디에고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차가 사람을 피하지 사람이 차를 피하는 경우는 볼 수가 없다. 클랙슨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대신 ‘스톱(STOP)’ 표지판을 자주 보게 된다. 횡단보도를 지나거나 우회전을 할 때에는 무조건 ‘일단 정지’부터 한다. 행인이 있건 없건 자동차들은 바퀴를 세우는 데 익숙하다. 그리고 행인이나 다른 차에게 양보하고 기다려주는 데 익숙하다. 모든 도로, 거리와 쇼핑센터의 주차장이 스쿨 존 같다. 그래서 느리지만 안전하다.

우리도 복잡한 우회전 법규를 좀 단순하게 바꾸면 좋겠다. “신호등이 어떤 색이든 행인이 보이면 무조건 차를 멈추자!” 얼마나 쉬운가? 신호등만 보지 말고 사람을 좀 보자! 약자인 사람이 강자인 차를 피해야 하는 세상을, 강자인 차가 약자인 사람을 피하는 세상으로 바꿔나가자! 난폭한 과속 질주로 힘없는 국민들을 힘들게 하는 권력자들도 일단 멈추고, 약한 국민을 좀 보살펴주길 바란다. 그래서 이 약육강식의 ‘동물의 왕국’을 ‘생명의 세계’로 이뤄나가자!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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