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샘물] 내리사랑, 치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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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샘물] 내리사랑, 치사랑
  • 임문혁 장로
  • 승인 2023.02.0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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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혁 장로
임문혁 장로

김 장로님이 핸드폰을 열어 손주의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이 끊어질 줄 모르신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다며 이목구비가 뚜렷한 게 정말 잘 생기지 않았느냐고 동의를 구하신다. 사람들이 손주가 할아버지를 빼닮았다고 한다며 입이 귀에 걸리신다. “손주 자랑을 하려거든 만 원을 내고 하시라”는 박 장로님의 은근한 놀림에도 김 장로님은 개의치 않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이어 가신다.

나도 처음 손주를 보았을 때 그 녀석이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웠는지 모른다. 나를 보고 방긋 웃을 때는 가슴이 환해지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설익은 발음으로 ‘하버지’하고 부를 때, 뒤뚱뒤뚱 걸어와서 내 품에 안길 때 이 녀석을 위해서라면 내 생명도 아깝지 않게 내놓을 수 있겠다 싶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다 예뻤다. 무조건 사랑스러웠다.

내가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나는 내 할아버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내 손자를 예뻐하고 사랑하듯이 내 할아버지도 나를 그렇게 예뻐하고 사랑하셨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우리 할아버지는 좀 엄한 분이셨다. 그래서 겉으로 그렇게 드러나게 정을 내보이시거나 살갑게 대해주시지는 않으셨다. 나도 할아버지를 좀 어려워하고 가까이 다가가지를 못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겉으로 표현을 하지 않으셨을 뿐 속으로는 얼마나 사랑하고 귀여워해 주셨을지 미루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셨을 뿐 늘 나를 자애로운 시선으로 지켜보시고, 아껴주시고, 맛있는 과자도 주머니에 담아와 손에 쥐어주시곤 했다. 식사도 할아버지 상에서 함께 하고 할아버지 상에만 오르는 귀한 고기반찬도 내 숟가락 위에 얹어주셨다. 잠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잤다. 어려서 일찍 천자문과 붓글씨 쓰기를 가르쳐 주시는가 하면 예의범절도 하나하나 가르쳐 주셨다.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엄하게 꾸짖으시고 때로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기도 하셨다. 그런 때 나는 그런 할아버지가 무섭고 두렵기도 했다.

나는 내가 할아버지가 된 지금에 와서야 할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며 후회하고 있다. 왜 그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고 부르며, 얘기도 하고 말씀도 듣고 그러지 못했을까. ‘난 할아버지가 좋아요!’ ‘사랑해요 할아버지!’ 그러면서 애교도 부리고, 무얼 좀 사달라고 떼도 좀 쓰고 그러지를 못했을까 후회가 된다.

어른들로부터 아래로 흘러내리는 사랑을 우리는 ‘내리사랑’이라 부르고, 자손들이 웃어른들께로 올려드리는 사랑을 ‘치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사랑도 내리사랑이 많고 자연스럽지 치사랑은 내리사랑을 당할 수 없다고들 말한다. 맞는 말이다. 자손들이 부모님의 은혜에 십분의 일만큼만 해도 큰 효자라 하지 않던가.

김 장로님의 손주 자랑값으로 맛있는 커피 한 잔씩을 얻어 마시고, 오후 예배를 드리면서 나는 다시 늦게야 또 깨닫는다.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전형적인 ‘내리사랑’이구나. 김 장로님이 손주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내 할아버지가 날 사랑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거로구나. 꼭 필요한 것을 가르치시고, 귀찮은 훈련도 시키시고, 잘못하면 때로 엄하게 꾸짖으시고, 회초리도 드시지만 속 깊이 자애로운 눈길도 바라보시며,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구나. 그것도 모르고 나는 하나님이 엄하시고 두려운 분이라고만 생각하며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주변만 빙빙 돌았구나 싶어 후회막심이다.

하나님도 할아버지와 같은 ‘하’자 줄인데, 한없는 내리사랑이신데, 내가 십분의 일만 치사랑으로 올려드려도 하나님은 열 배로 기뻐하실 텐데 그러지를 못했구나. 이제 앞으로는 자주 찾아뵙고 대화 나누며, 우리 막내 손녀가 그러듯이 ‘저도 하나님이 좋아요!’ ‘하나님 사랑해요!’ 애교도 좀 부리면서 살아야겠다.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아름답게 살아, 하나님이 핸드폰 열고 내 사진 열어 보이시며 자랑하실 수 있도록!  빳빳한 만 원짜리 꺼내시며 ‘오늘 커피는 내가 사지!’ 그러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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