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연합신문과 함께 한 모든 시간이 은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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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연합신문과 함께 한 모든 시간이 은혜였습니다”
  • 손동준 기자
  • 승인 2023.02.0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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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통해 소개된 인물들이 말하는 ‘감사’
사역자에겐 ‘날개’…예술가에겐 ‘활동의 장’

기독교연합신문이 세상에 나온 지 어느덧 35년이 흘렀다. 지금껏 발행한 신문도 지령 1657호에 달한다. 기독교연합신문은 ‘사람 냄새’ 나는 미디어를 지향하는 터라 매 호수마다 간증을 비롯한 각종 사람 사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최소 한 면 이상은 깊이 있는 ‘사람 이야기’로 꾸며진다. 이 말은 지금껏 최소 1657명의 이야기가 지면을 통해 소개됐다는 뜻이다. 이 가운데는 우리 신문이 ‘최초’로 소개한 보석 같은 사람들도 즐비하다. 그런가 하면 예술가들의 작품활동 장으로도 우리 신문은 크게 쓰임 받았다. 소설과 시, 그림, 서예, 캘리그라피 등 장르를 막론한 여러 작가들이 신문을 풍성하게 빛내 주었다. 

창간 35주년을 맞아 우리 신문이 소개하고 우리 신문과 함께 성장해 온 이들을 다시 만나봤다. 이들은 하나같이 “기독교연합신문과 함께한 모든 시간이 은혜였노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눈물 날 정도로 고마운 신문
신문 소개된 후 ‘공신력’ 인정 받아
| 최새롬 목사·학원복음화 선교사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학원 복음화 인큐베이팅’ 사역의 열매는 계속 이어졌다. 최새롬 목사는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학교의 허락을 받고 예배를 세우는 이 운동이야말로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한 필수적인 사역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최새롬 목사 / 학원복음화 선교사

2000년대 중반부터 지역교회와 함께 학교현장에 예배를 세우는 학원복음화인큐베이팅 사역에 헌신해 온 최새롬 목사. 초창기에 온누리교회와 할렐루야교회 등 대형교회 소속으로 사역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학교현장에서 일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지만, 막상 교회 밖으로 나오자 ‘공신력’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교회 소속으로 일할 때는 일선 학교에서도 그 배경을 보고 저를 만나줬는데 그것이 사라지자 ‘당신이 누구냐’고 묻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저를 소개하고 증명하기 위해 이전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더군요. ‘공신력’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느낀 계기였습니다.” 

그런 최 목사에게 한 줄기 빛처럼 손을 내밀었던 곳이 바로 기독교연합신문이었다. 스승인 백석대 신대원 교수가 교단지인 기독교연합신문에 최 목사를 소개한 것. 그때가 2017년 무렵이었다. 신문에서는 최 목사의 사역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특히 그의 사역지인 ‘학교현장’의 절박한 상황을 알리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기사를 본 기독교방송국 PD가 그를 프로그램에 섭외했고, 점차 각종 기독교 매체를 통해 그의 사역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기독교연합신문에 소개된 후에는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기사 링크를 보내드립니다. 기독교연합신문에 소개된 자체로 공신력을 인정해주시니 너무 감사한 일이죠.”

가장 큰 변화는 지난해 소속 교단인 예장 백석총회가 최 목사를 ‘1호 학원복음화 선교사’로 정식 파송했다는 점이다. 소속 노회에서 올린 ‘학원복음화 선교사 신설’ 헌의안이 총회를 통과하면서 가능했던 일이다. 

이 제도를 통해 최 목사는 마치 ‘군목’처럼 교단이 인정하는 사역자로 활동할 수 있게 됐다. 이 밖에 교단 내 유일한 학원복음화 선교사로서 후배 목회자들을 양성하는 강사로도 활동하게 됐다. 다가오는 봄학기부터는 백석대 신대원에서 ‘학원선교사 과목’을 가르친다.

“꿈꾸는 것만 같습니다. 아무래도 교단 어른들께서 우리 신문(기독교연합신문)을 눈여겨보시는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정말로 무명의 사람을 신문사가 발굴해서 사역이 건강하게 이어지도록 응원해주고 관심 두고 기사를 실어주셨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한편 최 목사는 “지난해 매주 2,500여 명의 청소년들을 만났다. 심각한 것은 이들 가운데 90%가 교회를 안 다닌다는 사실”이라며 “교회에 아이들이 없다고들 하는데 학교엔 600만명의 아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선을 조금만 돌려서 학교를 바라봐 달라”며 “이 아이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로 돌아오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감소’가 아니라 오히려 ‘부흥’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끝으로 “기도가 절실하다”며 “이 일에 동참할 방법이 많다. 스태프로, 간식과 차량으로 한국교회가 함께 해준다면 사역이 활발해질 뿐 아니라 많은 열매로 이어질 것”이라고 관심을 요청했다.

 

가족처럼 친근한 신문
작가의 작품세계 맘껏 펼친 ‘활동의 장’
| 박경희 권사·소설가

박경희 작가
박경희 권사 / 소설가

베테랑 방송작가 출신으로 업계에서 인정받다가 지난 2004년 ‘월간문학’에 단편 ‘사루비아’로 등단하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박경희 작가. 박 작가에게 기독교연합신문은 ‘고향 뒤뜰의 백합처럼 정겨운 곳’이다. 2000년대 후반 ‘신춘소설’ 청탁을 받으며 시작된 만남은 15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연말이나 성탄, 신년 특집을 발행할 때면 박 작가의 단편이 지면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오래전 ‘신춘 소설’ 청탁을 받던 날, 설렘을 동반한 걱정에 밤잠을 설쳤습니다. 인터넷에 들어가 열심히 기독교연합신문을 찾아 읽었습니다. 지식과 정보는 물론 문화 소식도 풍부했습니다. 꽉 찬 듯 여백이 살아 있는 신문에 실릴 소설이라 생각하니 부담이 컸습니다. 초고를 써 놓은 뒤, 썼다 지우기를 수십 번은 했습니다. 꽃을 피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박 작가는 당시를 떠올리면서 “원고를 보내고 며칠 후 ‘신춘소설’이 전면에 실린 지면을 보며 가슴이 벅차올랐다”고 말했다. 지인으로부터 “권사님 소설을 신문에서 읽었는데 감동적이었다. 재밌었다”는 칭찬을 받고는 “부끄러우면서도 어깨가 들썩거렸다”라고 회상했다. 박 작가는 “작가로서 존재감이 살아나는 순간이었다”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기독교연합신문은 가족처럼 친근한 매체가 됐다”고 했다. 

당시에도 이미 존재감을 알리던 작가였지만 신문 게재 이후 작품활동이 날개가 단 듯 왕성해졌다. 신문에 게재했던 짧은 글이 수정·보완을 거쳐 책으로 출간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출간 권수로 당시 10여권 쯤 발표했던 작가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소설까지 25권을 더 냈으니 기독교연합신문의 역할이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신문사의 이현주 기자께서 신간이 나올 때마다 서평을 써주셨는데, 어느 신문의 글보다 정성스럽고 애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작가로서 존재감을 세워줬다고 할까요.”

박 작가는 기독교연합신문의 장점으로 ‘중립적인 시선’과 ‘충실한 팩트’, ‘기독 문화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꼽으면서 “중년으로 접어든 기독교연합신문이 앞으로 더욱 발전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중도의 길을 걸되, 냉철한 회초리가 되어야 할 때는 거침없이 목소리를 내는 신문이 되어 달라”며 “썩어 부패한 세상을 밝히는 정의로운 신문이 되기를” 기원했다.

한편 박 작가는 최근 안창호 선생의 딸 ‘안수산 여사’의 삶을 그린 역사·청소년 소설 ‘언제든지 스마일’을 펴냈다. 지금껏 조명되지 않았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 만큼 북 토크 등 독자들을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박 작가는 끝으로 “기독교연합신문과의 만남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복”이라며 “특별한 관계가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기독교연합신문에서 들어오는 원고 청탁은 언제든 새로운 작품으로 정성껏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순례길의 동반자 기독교연합신문
절망적인 때에 하나님이 맺어준 만남
| 최철규 집사·만화가

최근 신앙 에세이 '나의 길, 나의 천로역정'을 발간한 최철규 집사를 만났다.
최철규 집사 / 만화가

6년에 걸쳐 그린 ‘만화 천로역정’(생명의말씀사, 2019년) 1부를 발표한 뒤 그 해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된 만화가 최철규 집사. 그의 천로역정 1부는 출간한 지 5년이 지났음에도 최근 12쇄를 찍는 등 꾸준한 판매고를 기록하며 명실공히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지금은 제법 알려진 작가이지만, 2015년 가을 경기도 광주에서 만난 최 집사는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만나’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다고 할 정도의 절박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이현세의 수제자’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스승의 작품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안정적인 수입을 거두며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었을 테지만, ‘천로역정’을 그리겠다는 거룩한 다짐을 지키기 위해 돈이 되는 작품활동을 멈춘 채 가족들까지도 순례자의 삶으로 내몰았던 그다. 경제적 어려움에 치명적인 손가락 부상까지, 다른 사람 같으면 절망에 빠져있을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담담하게 ‘은혜’를 말하던 최 집사의 모습이 눈에 생생하다. 

아직 작품이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지만, 기독교연합신문은 그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미 그의 삶이 천로역정 속 주인공 ‘크리스천’ 그 자체였기에 기사를 보고 많은 이들이 “감동 받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손가락 부상으로 작품활동도 어려웠던 그에게 방송 출연 요청이 들어온 것도 그 무렵이었다. 방송을 본 익명의 후원자가 ‘딱 필요했던 만큼’의 후원금을 보내오기도 했고, 부상 회복 후에는 노후한 컴퓨터를 새로 교체할 비용을 누군가가 몰래 보내준 덕에 무사히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천로역정 1부를 탈고한 후에는 뜻하지 않은 유명세도 치렀다. 작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리면서 출판사 요청으로 천로역정 제작 과정을 담은 신앙 에세이까지 발표했다. 지금은 천로역정 2부 제작을 위해 활동을 잠시 멈췄지만, 국내 최대 연합 기도회 ‘다니엘기도회’ 강사로 초청받을 만큼 간증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최 집사는 기독교연합신문이 자신을 ‘발굴’했다며, “그야말로 감춰져 있던 사람을 처음으로 세상에 소개한 매체이자 천로역정의 동반자”라고 감사를 표했다. 

한편 천로역정 2부를 그리는 지금의 경제적 상황은 8년 전 처음 만났을 때보다 분명 좋아졌지만, 그의 마음만은 순례자의 모습 그대로다. 최 집사는 “등 따숩고 배부르면 사람이 안일해지고 그로 인해 최선을 다할 수 없다”며 “하나님께서 천로역정을 그릴 최적의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 주셨다”고 했다. 1부 인세로 겨우 경기도 외곽에 아파트 전세를 구했는데, 하필이면 계약 당시 아파트 전세가가 최고점이었다. 은행 금리가 올라가면서 달마다 이자 내기에도 벅찬 상황이 됐다. 하지만 오히려 감사를 말하는 최 집사. 그는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워낙 좋지 않은 걸 사람이 무슨 수로 막겠느냐”며 “끝까지 하나님만 붙잡으며 2부를 완성할 수 있도록 기독교연합신문 독자분들께서도 함께 기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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