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이 일상이 되는 목회, 섬김이 최고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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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이 일상이 되는 목회, 섬김이 최고 행복”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3.01.19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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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제일교회 박덕수 목사 / 아산시기독교연합회장

고2 때 만난 하나님, 평생 목회를 이끄셔
“아산시 복음화 총력, 교단이 든든한 우군”

“예전에는 예배당 십자가 뒤에 붉은색 커튼이 걸려 있었잖아요.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는데 제 마음으로 쏙 들어오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 10분 정도 기도한 것 같은데 2시간이 훌쩍 지나있더라고요. 그 순간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충남 아산시 목양제일교회 박덕수 목사는 어머니의 신앙생활을 따르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농사를 그만두고 온 가족이 상경한 터라 가정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단칸방에 부모와 삼형제, 삼촌까지 살아야 했고 동사무소에서 식량을 타서 먹을 정도로 어려웠다. 힘든 환경에서도 티 없이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곁에 교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 목사는 교회에서 학생회장, 지역연합회장까지 하며 목회 리더십을 키워갈 수 있었다. 

박덕수 목사는 하나님만 바라봤기 때문에 어려운 환경에 무너지지 않고 나눔과 섬김의 목회를 이어올 수 있었다. 

포기할 수 없는 신학의 길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고등학생에게 담임목회자는 자연스럽게 목회자의 길을 추천했다. 하나님을 만나고 뜨겁게 신앙생활을 했던 학생 박덕수 역시 목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흔들림 없이 사명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갔다. 

어머니의 신앙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성결교회를 다니던 어머니와 달리 박 목사는 어릴 적부터 웬일인지 늘 장로교회에 출석했다. 장로교 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대학 신학부를 졸업 후 당시 방배동 기독신학대학원에 진학하게 됐다. 

신학을 공부하는 내내 학비는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신대원 시절 낮에는 운전면허시험장에서 일하고 야간반에서 공부해야 했다. 구내식당 밥 대신 늘 라면을 먹어야 했던 박 목사는 지금도 라면을 싫어한다고 한다.

“학비가 없어서 휴학을 반복해야 했지만, 신학의 길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사명이니까 그럴 순 없었습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신대원에선 목회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해 일찍 부교역자로 나가게 됐습니다.”

부교역자로 시무하던 교회에서 담임목사님 허락 하에 교제를 시작해 원자력병원 간호사였던 아내를 만났다. 신대원 3학년 때는 큰아들이 태어났다. 아내 수입도 있어서 물질적으론 여력이 생겼지만, 여전히 힘든 시간이었다.

특히 어머니 신앙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원래 신학공부를 반대했다.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길 바랐던 아버지는 일체 학비를 지원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신학공부를 마치는 데까지 10년이나 걸렸다. 

“아버지가 장손이라 제사를 지냈는데, 전도사고시 합격 후 제사 대신 예배를 드리겠다고 선포해버렸습니다. 작은아버지에게 뺨을 맞을 정도로 파장이 컸지만,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안 하셨어요. 제 뜻에 따라 다음부턴 담임목사님을 모시고 추도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목회자의 길을 가는 자식을 믿고 인격적으로 인정해 주었다. 그리고 집사 직분을 가진 신앙인으로 살다 천국 백성이 될 수 있었다. 

박덕수 목사는 작년 11월 아산시기독교연합회 신임 대표회장으로 추대됐다. 박 목사는 목회자들의 화합과 사역 활성화를 위해 발로 뛰겠다는 각오다. 

드디어 개척, “아내에게 퇴직 요청” 
박덕수 목사는 늘 긍정적인 목회자다. 다른 사람들이 힘들겠다고 걱정하는 순간에도 정작 본인은 행복하다. 개척 목회도 어려운 줄 모르고 지나왔다고 그는 고백한다. 

박 목사는 신대원 졸업을 하고는 기도했던 대로 곧장 개척에 나섰다. 개척자금은 아내의 퇴직금 2천만원이었다. 목회는 부부가 같이해야 한다고 생각해 퇴직을 요청했다. 

“제 역할도 중요하지만, 사모의 역할도 목회에선 큽니다. 나는 발로 뛰는 목회를 할 테니 나를 위해 기도하며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아내가 따라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배짱이 있었습니다.”

박 목사는 현재까지 한 곳에서 목회를 이어오고 있다.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50만원으로 시작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초년 목회자는 제법 큰 50평으로 교회 문을 열었고, 일년 반만에 전세로 전환해 6년 만에 분양을 받도록 열심히 목회에 집중했다. 

특히 그는 새벽기도에 힘을 쏟았다. 명절 때라도 교인이 올 것 같아 교인 한명 없이 혼자 예배를 드린 적도 여러 번이었다. 첫 교인이 문을 열고 왔던 긴장되고 떨리는 순간을 박 목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 1호 교인이 든든한 교회의 일꾼으로 성장한 것도 감사하다. 경제 사정이 어려워 교회에서 더 베풀어야 하는 교인들이 많았지만, 그는 지금까지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며 행복한 목회를 잇고 있다. 특히 베푸는 목회가 핵심 방향이다. 

“우리 교회에 오면 다들 편안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를 봐도, 우리 사모를 봐도 편안하다고요. 작은 것 하나라도 생기면 교인들에게도 나누고 이웃 주민들에게도 나눕니다. 저에게 통장하라고, 동대표도 하라고 하시는데 저를 좋아해서 하시는 말씀이죠. 앞으로도 가진 것을 흘려보내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420개 교회와 아산시 복음화 향해”
박덕수 목사는 작년 11월 아산시기독교연합회 신임 대표회장으로 만장일치 추대됐다. 2년 동안 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며 헌신했던 박 목사의 모습을 지켜봤던 회원들은 크게 기대하고 있다. 

“아산시 420개 교회가 지역 복음화를 위해 꼭 힘을 모아야 합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연합회 사역이 위축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교회들의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발로 뛰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임원들과 함께 직접 달리면서 나갈 것입니다.”

연합회 사역을 이끄는 박덕수 목사에게 든든한 우군이 있다. 바로 대표회장을 역임한 같은 교단의 양문교회 이승수 목사, 광혜교회 온재천 목사다. 또 총회 소속 40여 교회 역시 박덕수 목사를 적극 지지하고 돕고 있다. 

아산에선 연합회 사업에 유난히 참여도가 높고 끈끈한 교단으로 백석총회가 정평이 나 있다. 과거에는 교단에 대한 몰이해로 이단 소리까지 들었던 백석총회 목회자들에게는 격세지감이다.

박덕수 목사는 “지역 목회를 살리기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교단에서 맡은 사역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더욱 부지런해고자 한다”는 각오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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