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샘물] 잊지 못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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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샘물] 잊지 못할 사람들
  • 이복규 장로
  • 승인 2023.01.19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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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규 장로/서울 산성감리교회 장로, 서경대학교 명예교수
이복규 장로(서울산성감리교회, 서경대학교 명예교수)
이복규 장로(서울산성감리교회, 서경대학교 명예교수)

살다 보면, 잊히지 않는 사람이 있다. 두고두고 생각나는 사람이다. 다시 만나고 싶고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내가 오래 살았던 아현동에서 만난 두 분이 그렇다.

우리 교회가 있는 서울 마포구 아현2동에는 도로에 인접한 분식점이 몇 개 있었다. 지금은 개발되어 고층아파트가 들어서서 입주하는 중이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그랬다. 그 가운데 한 분식점 아주머니가 지금도 생각난다. 중학교 때 가난한 친척집에 있으면서, 수제비를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지, 밀가루 음식을 즐기지 않아 자주 갈 일은 없었지만, 그 아주머니를 잊을 수 없다.

언젠가 황사가 극성을 부리던 봄날, 휴교 조치까지 내린 때였다. 고1이던 큰아들이 밤참을 먹고 싶대서, 11시쯤 그 분식점을 찾아갔더니 문이 닫혀 있었다.

다음날 열려 있기에, 들어가서 물었다. 왜 어제 열지 않았는지 묻자 대답하였다.

“가뜩이나 먼지 든 음식을 파는데, 황사가 그렇게 심한 날 어떻게 문을 열어요?”

아줌마는 분식을 포장하면서 혼잣말처럼 말을 이었다.

“저승에 가면, 사람들에게 먼지만 먹이고 왔다고 할 거야.”

저승이란 말을 쓴 것으로 미루어 교회에 다니는 분은 아니겠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감동했다. 이렇게 양심적으로 가게를 운영하다니, 여느 종교인보다도 나은 듯해서 그랬다. 한번 꼭 다시 만나고 싶다.

또 한 분이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분식점 아래 삼거리에 대호약국이 있었다. 그 약국의 약사님은 얼굴에 파란 흉터가 있는 분이었다. 오광근 선생님으로 기억한다. 하얀 약사복에 명찰을 붙이고 있었다.
그분은, 약을 사러 가면, 여느 약사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부분은 어떻게든 약을 많이 팔려고 안달한다. 바짝 마른 내가 지나가면 불러들여, 살찌게 해주겠다며 비싼 약을 먹인 약국도 있다. 살찌고 싶은 욕심에 그 약 먹었다가, 살은 쪘지만, 거기 넣은 스테로이드 성분 때문에, 하마터면 큰일 날뻔한 적도 있다. 그렇게 현저하게 문제가 있는 약국이 아니더라도, 1일분 약을 달라면 무조건 3일분을 안겨주기 일쑤인데, 그분은 그러는 법이 없었다.

“그거 조금만 참으면 낫습니다. 약 먹을 필요 없어요. 그냥 가세요.”

대개 이런 식이었다. 한번은 큰아들 녀석이 무릎이 아프다고 호소하기에, 무슨 큰 병인가 싶어 데리고 갔더니, 이러는 것이었다.

“이거 성장통입니다. 애들이 한참 성장하면서 뼈가 미처 몸의 성장 속도를 따라오지 못해 일시적으로 생기는 통증입니다.”

그래서 약 좀 달랬더니 이랬다.

“약 먹일 필요 없어요. 그냥 가세요. 가만 두면 저절로 나아요.”

원 세상에, 이런 약사가 있다니, 감동했다. 잊을 수 없는 약사다. 약을 팔기 위해 사는 분이 아니다. 아픈 사람을 도와주려고 사는 분이다. 이분이 교회 다니는지 아닌지도 모르지만, 존경한다. 지금 어느 약국에 계신지는 모르나, 오늘도 아마 자기 약국에 찾아온 손님들한테 씩 웃으면서, 이러고 있지 않을까?

“약 먹을 필요 없어요. 조금만 참으면 저절로 나아요.”

이 두 분, 그 후로 만난 적 없지만, 여전히 내 뇌리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과거는 현재의 기억 속에 있다”라고 한 어거스틴의 말처럼, 그분들은 내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있다. 좋은 기억의 주인공들이다. 교회를 다니다 그만둔 지인들한테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교회에서 만난 사람과의 좋지 않은 기억 때문에 발길을 끊었다는 말이다. 심지어 목회자한테 받은 상처도 있다. 다시 그런 사람 만날까봐 교회 못 나가겠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아현동 분식점 아주머니, 대호약국 약사, 이 두 분을 내가 못 잊듯,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나를 만난 사람마다 오래 기억하며 고마워하는 크리스천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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