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감성에 빠진 M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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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감성에 빠진 MZ
  • 임주은 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
  • 승인 2022.12.2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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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한 경제 불황 속에서도 꾸준히 호황을 누리며 가맹점 수를 늘려온 산업 시장이 있다. ‘인생네컷’(2017년 경 만들어진 브랜드)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셀프 포토부스’ 매장이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했던가. 사실 셀프 포토부스는 90년대 말, ‘스티커 사진’으로 이미 선풍적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카메라로 촬영하고 현상한 후에 사진을 받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린 터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결과물을 빠르게 받아볼 수 있는 스티커 사진이 획기적인 신문물로 여겨진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하며 스티머 사진의 인기는 사그라들었고, 지금은 휴대전화에 고화소 카메라가 달려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다시 아날로그 감성의 사진들이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과거의 전유물이 요즘의 트렌드가 된 건 셀프 포토부스만이 아니다. ‘필름 카메라’와 ‘LP판(바이닐 레코드판)’을 구매하려는 10~20대가 급증하며 요즘에는 없어서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과연 아날로그의 어떤 매력이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청년들을 다시 끌어당긴 것일까?

편리함보다는 ‘추억’

턴테이블을 사용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LP판으로 음악을 듣는 것이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 편리함이 최선이라고 믿는 이 시대에, 번거로운 아날로그 감성이 끼어들 수 있던 이유는 바로 ‘추억’이다. 요즘 대중문화 산업에서 가수들이 한정판 LP 바이닐을 발매하곤 하는데, 10대들에게 엄청난 인기라고 한다. 좋아하는 가수 혹은 음악을 실물로 소장하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셀프 포토부스에서 사진을 찍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기억에 남길 만한 시간,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청년들은 ‘찰나’를 기록하려는 것이다. 최근 결혼식장에서 방명록 대신 ‘웨딩 포토 부스’를 설치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결혼식에 방문한 하객들이 이름을 남기는 대신, 즉석 사진으로 남기며 하객들에게도, 신랑·신부 측에도 더 큰 추억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완성도보다는 ‘감성’

사실 Z세대 경우는 필름 카메라를 거의 사용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LP판으로 음악을 들었던 경험은 더더욱. 그렇기 때문에 요즘 청년들이 과거의 전유물을 구매하는 행위를 두고, 단순히 ‘향수’나 ‘복고’로 해석하기는 무리가 있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오히려 ‘신선함’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을 때 나는 ‘찰칵-’ 셔터 소리, ‘드르륵-’ 필름 감는 소리, 그리고 사진에 드러나는 자글자글한 노이즈들. 레코트판 표면을 긁는 듯한 ‘지지직-’ 소리가 첨가된 음악까지. 이런 오감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청년들에게는 생경하면서도 감성적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얼마 전까지 사진과 음악의 완성도를 떨어트린다고 여겨지는 방해 요인들이, 이제는 감성을 자극하는 요인이 되었다는 점이다.

소장가치의 의미를 아는 MZ

편리함과 효율성 대신 추억을, 완성도보다는 감성을 중시하는 요즘 트렌드. MZ세대는 기꺼이 소장가치에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수만 촬영할 수 있는 점, 필름 현상소에 맡겨 비교적 오랜 시간과 복잡한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 결과물은 우리로 하여금 ‘희소성’을 느끼게 해 준다. 또 좋아하는 음악을 그저 미디어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LP판을 구해 소장하며, 직접 손으로 만지고 음악을 켜는 행위들은 우리로 하여금 물리적인 감각을 동원하게 만들고, ‘물성’의 가치를 깨닫게 해 준다. 일상의 모든 것을 편리하게, 효율적으로 디지털화하며 살아가는 MZ세대들에게도 희소성과 물성이 주는 의미는 크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을 완전히 잊어버리지 않도록,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받아들이고, 재생산하여 또 다른 트렌드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즘 감성의 교회

“요즘 애들은 그런 거 싫어해요~ 요즘 감성에 맞춰야죠!”

교회 학교에서 프로그램을 준비할 때, 사역자와 교사들끼리 이런 내용의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된다. 교회는 분명 하나의 진리와 신앙을 가르치는 곳임에도 그 방식에는 시대별·세대별 문화 차이가 있다. 그런데 사회에서 일어나는 트렌드 현상들을 보고 있노라면, Z세대가 전통이나 과거의 전유물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히려 자신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것이지만 신선하게 여기며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때도 많다. 그러나 그것은 강요나 주입식의 방식이 아닌, 수용자들이 자체적으로 선택하며, 재해석·재생산의 과정을 충분히 거칠 때 가능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소중하게 지켜나가야 할 신앙의 전통들이나 교회의 분위기들을 다음 세대가 수용하고, 더 나아가 그들만의 방식대로 교회 문화를 재해석·재생산해낼 수 있도록 가르침과 동시에 여유를 줄 수 있어야 한다.

팬데믹을 지내오면서 한국교회는 예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디지털화해야만 했다. 안전을 지키기 위해 온라인상에서 많은 것들을 만들고 해내 온 교회들이 대단하다. 하지만 동시에, 교회 안에서 성도들로 하여금 희소성이나 물성을 느끼게 하는 자극들이 감소된 것도 사실이다. 성경책을 펼치고 얇은 종이를 ‘바스락-’ 거리며 넘기는 소리라든지, 괜히 마음이 웅장해지면서 또 숙연해지는 오르간 소리라든지, 주님의 몸과 피로 준비된 성만찬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라든지, 성도들과 함께 추억을 나눌만한 사역들에 참여한다든지. 오히려 이 기간 동안 우리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신앙심을 자극하는 교회의 물리적인 것들의 소중함과 그리움을 깨닫게 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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