챙겨주고 섬겨주고… 술자리에서도 구별된 크리스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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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겨주고 섬겨주고… 술자리에서도 구별된 크리스천으로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2.12.14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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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술자리 가도 될까요?

멀어만 보이던 열한 고개를 나도 모르게 넘더니 마지막 고개도 벌써 중턱이다. 몇 주 뒤면 이제 충분하다는 눈치에도 아랑곳 않고 나이의 한 페이지를 넘긴다. 연말이란 무엇인가. 누군가가 이번 달을 12월로, 또 다음 달을 1월로 정하지만 않았어도 그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을 하루하루다. 하지만 수천 년이나 이어져 온 그 약속 탓에 우리는 다시 연말이라는 이름의 결산을 맞는다.

연유야 어찌됐건 사람들은 연말이라는 약속을 성실히 이행한다. 이때다 싶어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지는 술자리는 술을 멀리하려는 크리스천들에겐 적잖은 부담이다. 밥줄에 묶인 사회인의 숙명에 술잔을 들다가도 어릴 적부터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술 취하지 말라는 구절이 귀에서 메아리친다. 거절하기 어려운 연말 술자리, 어찌하면 좋을까. 사회생활과 신앙생활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곤혹스런 크리스천을 위해 준비했다.

선교사로부터 시작된 금주문화

사실 연말 술자리 참석을 이야기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근본적인 담론이 있다. ‘기독교인이 술을 마셔도 되는가라는 해묵은 논쟁이다. 이젠 익히 알려졌듯 오랜 논쟁의 근원은 구한말 서구 선교사들이 조선에 발을 디디고부터 시작됐다.

서구권 선교사들이 보기에 조선은 신기한 나라였다. 흙으로 담을 올리고 짚으로 지붕을 가린 집에서 언제나 넉넉지 못해 굶주리고 살면서도 잔치만 벌렸다하면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셨다. 청교도 전통에서 자란 대다수의 미국인 선교사들에게 한국인들의 이런 모습은 당장 고쳐야할 폐습으로 여겨졌다.

윤은순 교수(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내한 선교사들은 금주와 금연을 기독교인이 되는 첫걸음이라고 여겨 엄격하게 이를 강조했고 한국 기독교인들도 이를 자연스레 받아들였다면서 이들은 술과 담배가 성전된 몸을 더럽히는 해악물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우리도 초기 한국교회의 금주전통을 이어가는 것이 바람직할까. 답을 찾기 위해서는 성경에서 술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가 중요할 터. 결론부터 말하면 술은 선악과처럼 금지된 음식은 아니다. 성경에는 술을 마시고 있는 성경 속 인물들의 모습이 꽤나 많이 등장한다. 심지어 예수님은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7:34)라고 공격받으시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의 논쟁에서 먹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고 하셨고 나아가 모든 음식물은 깨끗하다고 선언하셨다. 즉 술을 포함한 어떤 음식물이라도 그 자체로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술 해악 조심하되 정죄는 말라

그러나 이것을 흥청망청 술을 먹어도 좋다는 면죄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성경은 술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술의 폐해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방선기 목사(직장사역연구소)잠언 기자는 술의 해악을 말하면서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라고 경고한다. 또 술로 인해 모든 판단력이 흐려질 것을 지적하기도 한다. 한국의 직장에서 보편적인 회식문화를 보면 잠언 기자의 경고가 그대로 맞아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특히 부어라 마셔라는 구호로 대변되는 우리나라의 먹고 죽자식음주문화에는 제동이 필요하다. 선교사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던 특유의 음주문화는 지금도 유산처럼 잔재해있다.

손성찬 목사(이음숲교회)초기 선교사들이 지적했던 사회적 해악이 아직 해소되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다. 흔히 말하듯 개가 되도록 마셔도 누구하나 제지하지 않는다. 길바닥에 토를 하며 쓰러져 있어도 괜찮다. 우리가 얼마나 음주에 관용적인 사회인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라면서 과도한 음주는 건강을 잃게 한다. 더구나 필름이 끊긴다는 것은 인격을 상실시키고 옳고 그름을 분별해야 할 임무가 부여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자리를 포기하는 큰 실책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술의 해악을 강조하며 한국교회의 금주 전통을 지나치게 내세워 술 마시는 이들을 정죄하는 일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상갑 목사(산본교회)술과 담배가 구원의 조건은 아니다. 그래서 저는 술, 담배를 하시더라도 교회에 오셔도 된다고 말한다면서 , 담배를 권하는 것은 아니다. , 담배를 하더라도 정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 담배는 정죄한다고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대로 인정하면서 은혜에 집중하면 우리 안의 문제들은 사그라든다고 강조했다.

 

술자리에서 보여주는 구별된 삶

술에 대한 논의가 어느 정도 정리됐다면 다시 12월의 달력에 초점을 맞춰보자. 문제는 내가 술을 마시지 않거나, 혹은 절제하면서 조금만 입에 댄다고 할지라도 연말이라는 명분이 덧씌워진 술자리가 여기저기서 우리를 불러댄다는 점이다. 무작정 거리를 두고 술자리를 피하며 직장생활을 할 수도 없는 노릇. 꼭 직장이 아니라 할지라도 연말을 기해 모이는 친구들과의 자리에 술이 빠지는 일은 드물다.

방선기 목사는 술자리에 함께 하되 구별된 모습을 보이며 사람들을 섬길 것을 조언했다. 그는 절제하지 않는 음주문화에 크리스천이 마냥 섞여서 어울릴 수만은 없다. 술자리에 함께 가되 구별된 모습을 보이고 사역하는 자세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자신은 회식보다 집에 가서 책 읽는 것이 훨씬 좋지만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으며 동료들과 어울리다 집까지 데려다준다는 분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 크리스천들의 착한 행동을 우리 동료들은 마음에 새겨둘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삶의 자리까지 나아가는 성육신의 삶이라고 전했다.

이의용 교수(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는 크리스천의 모습으로 술자리에 있기 위해서는 의지와 대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세상엔 공짜가 없다. 내가 술을 안 마시기 위해선 주변인들에게 크리스천임을 밝히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신앙적인 의지가 필요한 일이라면서 술자리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돼라. 취한 동료들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술을 먹지 않는다고 안주를 많이 먹었다면 돈을 더 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술 취해서 나오는 실수를 바로 잡아주는 등 멀쩡한 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된다고 조언했다.

모든 모임의 끝이 결국 술자리로 귀결되는 우리나라의 문화를 바꾸는 일도 필요하다. 이의용 교수는 고등학생까지 공부만 시키고 노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인식시키다보니 노는 방법을 잘 모른다. 그래서 결국 놀다보면 술자리로 가게 되고 술 안마시면 할 게 없다는 말이 나온다면서 술 없이도 즐겁게 놀 수 있는 문화를 크리스천이 선도해갔으면 한다. 가족동반 모임을 많이 만드는 것도 건전한 놀이문화를 만드는 일에 도움이 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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