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낮은 자리에서 만나는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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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낮은 자리에서 만나는 예수
  • 이정익 목사
  • 승인 2022.12.1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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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익 목사 /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이정익 목사.
이정익 목사.

모세는 죽기 직전 유언삼아 후대인들에게 유지를 남겼다(신 17:14~17). 말(군마)을 많이 두지말고 황금을 많이 갖지 말고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는 것이었다. 말을 많이 두면 말의 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멀리할까 염려함이요 황금을 많이 두면 허황됨으로 길을 잃게될 것을 염려함이요 아내를 많이 두자면 이방인과의 혼인까지 주저하지 않게 되어 마침내 신앙의 혼합을 염려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같은 모세의 당부는 일반 백성들을 위한 당부라기보다 장차 가나안에 들어가서 왕이 될 사람에게 주신 당부의 메시지로 여겨진다. 이 세 가지 금지 요소는 당시 뿐 아니라 오늘날도 모든 인간들로 하여금 허황되게 만들고 자칫 길을 잃게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오늘 현대인들은 모두 크게 성공하려고 한다. 성공하기 위해서 모두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동분서주한다. 그 결과 성공이 너무 간절하여 수단과 방법과 타협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또 성공하는 길이라면 예수를 멀리할 수도 있고 마침내는 예수를 버릴 수도 있다. 내가 성공할 수만 있다면 이방여인도 맞아들일 용의도 있다. 모세는 이 같은 인간의 속성을 너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성공은 참 좋은 것인데 이 점이 위험천만이다. 사람이 그렇게 해서 성공하면 하나님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나만 크게 부각된다. 그리고 우월감에 빠져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가 이렇게 해서 성공하였다고 강조하며 과시하게 된다. 그의 머릿속에는 더 이상 하나님은 없다. 오직 나만 존재할 뿐이다. 신앙인에게는 이것이 참으로 위험한 것이다. 그것은 성공과 하나님을 교환한 것이기 때문이다.

헨리 나우웬은 하버드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을 때 모든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가 가는 곳마다 그의 성공을 칭송하였다. 그러는 동안 그에게 예수는 흐려졌고 내가 초점이 되었다. 그러자 그점을 심각하게 고민하던 그는 마침내 학교에 사직서를 내고 지적장애인 시설로 들어가 그들의 도우미가 되었다.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그래서 질문하기를 왜 그 좋은 교수직을 포기하고 이렇게 누추한 자리로 내려와 있는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한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 칭찬과 성공 소리만 듣다보니 예수가 보이지 않더라 이제 낮은 자리로 내려와 예수를 만나려 한다.”

오래 전에 장애인 시설을 방문한 적이 있다. 건물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일그러진 아이들의 얼굴과 뒤틀린 아이들의 몸이었다. 그 아이들과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이 밥 먹는 모습은 전쟁이었다. 숟가락에 담긴 밥이 온전하게 입으로 들어가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밥알이 떨어지면 곁에 앉아있는 도우미 보모들이 그 밥알을 주워 자기 입에 넣는 것이었다.

그 순간 헨리 나우웬이 생각났다. 나우웬이 저 자리에서 예수를 바라보았겠구나, 낮은 자리에서 만나는 예수. 우리는 언제쯤 그 자리에서 예수를 만날 수 있을까. 지금 대림절 기간인데 지금이 적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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