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보다 기적을 행한 예수님께 집중하는 신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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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보다 기적을 행한 예수님께 집중하는 신앙으로”
  • 곽인섭 목사(서울백석대학교회담임, 백석대학교대학원 교목실장)
  • 승인 2022.12.14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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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영적생명운동② - 예수생명신앙

영적 생명 없이 신앙생활을 하면, 기쁨이 없습니다. 열심히 하는데 공허합니다.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니고데모 라는 사람을 통해서 넘어서야 할 신앙생활 두 가지와 추구해야 할 신앙생활의 모습인, ‘예수생명신앙’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넘어서야 할 첫 번째 신앙생활은, 규칙신앙 또는 도덕신앙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요 3:1)”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분리된 자들’이란 뜻을 가진 말인데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다른 나라들의 지배를 받은 이유가, 말씀의 규칙들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 규칙들을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니고데모는 지도자였습니다.

특히 말씀의 규칙들을 지키는 것, 바람직한 도덕과 윤리를 지키는 것이 우리 사회의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같이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라…성경에 나오는 규칙들을 지키는 것을 신앙생활의 핵심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정 부분은 맞지만, 핵심은 아닙니다.

넘어서야 할 두 번째 신앙은 기적 신앙입니다. 요한복음 2장과 3장은 표적이라는 말로 연결이 됩니다.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요 2:23)”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 3:1~2)”

표적은 놀라운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규칙신앙으로 살아온 바리새인이자 유대인의 지도자인 니고데모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기적들을 보고 흔들리는 마음을 견딜 수 없어서 발길을 예수님에게로 옮기는 것입니다. 기적 신앙이 있습니다. 기적 신앙은 소중한 체험입니다. 축복입니다. 그러나 핵심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신앙의 모습이 있습니다. ‘예수생명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에 충격을 받고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는 기적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 대신,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말 그대로, ‘거듭, 다시 태어난다’는 것만이 아니라, ‘위로부터 난다’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는 ‘새로운 생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생명은 위로부터 옵니다. 위로부터 오신 예수님을 진실하게 믿을 때 우리 마음에 생기는 ‘새로운 생명’이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생명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것이 ‘예수생명신앙’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엄청난 것입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 영원한 생명, 새 생명을 주시는 분을 내가 받아들이고,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생명신앙’을 가지고, 추구하는 성도들은 인생관 자체가 다릅니다. 겉으로는 똑같이 규칙을 지키고, 좋은 일 하고, 기적을 믿고 사모합니다. 그러나 초점과 뿌리가 다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규칙을 지키고 선한 일을 합니다. 기적이 놀랍고 감사하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기적에서 멈추지 않고, 기적의 주인되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일, 선한 일보다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기적보다 예수님께 집중합니다.

그러나 예수생명신앙 없이 규칙을 지키면, 성경의 많은 규칙에 숨이 막힙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없습니다. ‘예수생명신앙’ 없이 기적만 바라면, 어린애 같은 신앙에 멈추어 버립니다. 또 다른 기적, 더 극적인 기적을 요구합니다. 예수님과 상관없는 기적과 축복, 즉 일만 잘 되면 되는 것입니다. 돈만 벌면 되고, 건강만 회복되면 볼일 다 본 것입니다.

니고데모와 같은 고민을 가진 바리새인은 많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또한, 이전에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우심으로 해결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그 기적 이야기만 합니다. 그런데 이전의 기적 이야기만 하는 그 마음 한쪽에는 두려움과 불안함이 있습니다. ‘왜 지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예수님과의 생명의 교제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예수생명신앙’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정직하게 기도하면 됩니다. “주님, 제가 규칙 속에서 더 이상 숨어 있지 않겠습니다, 이제는 과거의 기적체험으로 오늘의 불안한 내 영혼을 감추지 않겠습니다. 주님을 구합니다. 주님께 제 영혼을 내어 드립니다.” 이렇게 하면 살아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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